남자 셋 여자 한 분

손가락 깨물기

아하누가 2024. 6. 25. 00:11


아이를 키우는 사람과 아이가 키워보지 않은 사람의 생각 차이가

확연히 구분되는 상황은 매우 많다.
아이를 키우든 안 키우든 세 살짜리 아이에게 손가락을 물린 사람은 
누구나 그것이 얼마나 아픈지 안다.
그러나 왜 세 살짜리 아이가 손가락을 깨물면 엄청나게 아픈지는
아이를 키워본 사람만이 안다.

 

세 살짜리 아이는 스스로 힘의 강약을 조절하는 능력이 없다.
힘을 적당히 조절할 줄 알아야 하는데

불행히도 세 살바기 아이에겐 그런 능력이 없다.
그냥 입에 물리는 순간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힘으로
인정사정 없이 물어버린다.
세 살 아이가 무슨 힘이 있겠냐며 순순히 손가락을 입에 물려주는
삼촌, 삼촌 친구, 옆집 초등학생은 뼈가 저릴 정도의 아픔을 느끼고
곧 자신의 경거망동한 행동을 후회하게 된다.
손가락일 경우 뼈가 시리지만

어깨나 엉덩이는 멍이 들고 팔뚝은 주로 피가 맺힌다.

세 살 아기들은 무서운 녀석들이다.

 

 

우리집 둘째 의연이도 세 살이다.
이가 튼튼하게 자리잡기 시작하면서부터

무언가 보이기만 하면 물고 늘어졌다.
아프리카의 하이에나도 아닌데 물고 늘어졌다.
자신이 남의 손가락을 깨물면 매우 아파하는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시도 때도 없이, 신체 부위를 가리지 않고 깨물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힘의 강약조절은 전혀 할 줄 몰라

그 아픔은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왔으며
하루 하루가 지날 때마다 녀석의 힘은 점점 강해지고 요령도 발전하여
TV시청이나 꾸벅꾸벅 조는 틈을 이용해

기습적인 깨물기 테러를 감행했다.
물리는 일이 무서워 주변 경계를 항상 단단히 해야지
안 그러면 큰 봉변을 당하게 되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그러던 녀석이 얼마전부터 깨무는 일을 중단했다.
이제 그 것으로 느낄 수 있는 심리적 쾌감이 단순반복의 지겨움에 의해
다 소진되었던 모양이다.

이제 안심하고 넋이 빠진 채 TV를 볼 수도 있고
일요일 아침에 축구하고 돌아와 빈둥거리며 낮잠도 잘 수 있다.

다행이다.

 

 

* * *

 

 

그러나 다행일 줄 알았던 그 행복한 생각은 잠시였다.
깨무는 일이 중단된 지 며칠 뒤,

녀석은 어디서 배워왔는지 똥침을 시도했다.
한번 당하고 난 이후 나는 항상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
언제 어디서 달려올지 모르는 녀석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물리는 일에서 졸업한 줄 알았는데

더 무서운 공격을 해오니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다.
더욱 불행한 사실은 녀석이 여전히 힘에 대한 강약의 조절능력은 없어
항상 최대의 힘으로 똥침을 감행한다는 사실이었다.

내일은 놀이방에 찾아가 선생 및 인근 주민을 상대로 수사를 벌일 예정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쳐준 사람을 찾아 복수를 해야겠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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