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언제나 장난감을 찾는다.
시대가 첨단 전자 장비의 시대니 만큼
우리 아이도 주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겜보이나
컴퓨터 등 전자오락기가 대부분이다.
그것은 장시간 놀이가 가능하고 혼자서도 놀 수 있으니
어른들 입장에서는 편한 면도 있지만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무척 불안한 놀이며 또한 장난감이다.
하지만 주변의 또래 아이들이 너도나도 즐기고 있으니
무작정 말릴 수도 없는 골칫덩어리이기도 하다.
그런 딜레마 속에 얼마 전 좋은 장난감을 찾아냈다.
비록 그것이 전자오락의 장난감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나름대로 좋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가 많은 장난감이라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바로 권투 글러브였다.
권 . 투 . 글 . 러 . 브 -
이름만 들어도 남성다운 역동감이 느껴져
심성이 유약한 우리 큰 녀석 같은 아이에겐
더 없이 좋은 아빠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전기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에게서만 나오는 힘을 동력으로 삼아야
놀이가 가능한 장난감이다.
이러한 탁월한 품목의 선택을 하고는 몹시 흡족하여
당분간 전자오락을 방치해주었다.
그런데 권투글러브에는 커다란 문제점이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상대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고
그 상대는 놀이를 하는 당사자인 큰 녀석의 입맛에 맞게 주먹을
몸으로 잘 막아주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컴퓨터 게임은 컴퓨터가 바로 상대가 되지만
권투글러브는 권투글러브가 상대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하는 수 없이 내가 그 상대가 되어야 했다.
아내에게 하라고 시켰더니
자신의 힘을 조절 못하는 아내가 날린 주먹을 맞은 녀석이
뒤로 나동그라진 뒤로
엄마하고는 권투할 생각도 안하고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이는
나만 잡고 늘어지게 된 것이다.
녀석이 컴퓨터 대신 몸을 움직이는 권투를 한다는 것은 반가운 사실이지만
매번 스파링파트너가 되어야 하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주먹에 맞고 쓰러질 때도 온갖 괴로운 표정을 지어야 했고
괴성에 가까운 비명을 질러야 했으며
쓰러진 뒤에도 진한 에로영화에나 나옴직한
묘한 신음 소리를 내며 괴로운 척해야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 권투고 나발이고
얼른 이 비참한 생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 자꾸 머릿속을 오갔다.
그리고 나서 며칠만에 나는 또 한번의 기발한 묘안을 찾게 되었다.
이 묘안은 매우 뛰어난 판단으로,
운동은 운동대로 유지하고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풀며
전자오락기기에서 멀어지는 시간을 최대한 격리할 수 있는
매우 탁월한 발상이었다.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는 내가 스스로도 대견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며칠전부터 내 역할을 둘째 녀석에게 넘겼다.
두 녀석이 권투글러브를 끼고 뛰어다니니 볼만하다.
조금 더 어린 놈이 일방적으로 얻어맞지만 그거야 '그들만의 세상'이니
일일이 간섭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다.
다만 아내의 잔소리가 조금씩 심해지고 있지만 그거야 늘 당해왔던 것이니
늘 하던 인내력으로 버티면 된다.
* * *
항상 딸이 없어 섭섭했는데 두 녀석에게 권투글러브를 끼워주니
아들 두 놈 키우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아이들이 전자오락에서 멀어지는 기분도 나쁘지 않다.
이제 권투가 싫증이 날 즈음이면 바둑을 가르쳐줘야겠다.
그리고 두 놈을 붙여봐야겠다.
그 재미도 괜찮을게다.
얼른 이 녀석들이 커야 이 아빠가 당대의 고수인 유창혁, 이창호의
고등학교 선배 - 비록 친분은 없고 단지 졸업 명부상이지만 - 라는 사실을
말해 줄텐데.....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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