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셋 여자 한 분

가위 바위 보

아하누가 2024. 6. 24. 01:30


 

간밤에 집에 일찍 들어가니 큰 아들 후연이가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한다.
가위바위보라는 것을 알게 된 적이 약 3년전쯤 되었으나

그때는 그저 시늉만 할 뿐이었고
7살이 된 지금은 이기고 지는 규칙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지겹고 싱거워 하지 않을 줄 알았던 가위바위보를 하자니

뭔가 이상했다.
아직 내기의 개념이 없는 아이니

이기고 지는 것에 담긴 큰 이익은 모를텐데도
녀석은 자꾸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했다.
가위바위보를 왜 하려느냐는 내 질문이 미처 나오기도 전에

녀석은 내게 말한다.

 

 

"아빠가 이길꺼야?"

 

 

녀석이 승부욕이라는 것이 눈을 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녀석은 집에서 나와 축구만 해도 점수를 매기기 시작했고
컴퓨터 게임을 해도 지는데에 있어서는 매우 신경질적이다.
적당한 승부욕은 삶에 있어 좋은 자극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냥 좋은 기분으로 보고 있었는데 거기에 한가지 문제가 생긴 것이다.

 


승부욕이 강하다는 것은 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고
지지 않으려는 것은 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함이 기본인데
녀석은 일단 지는 것은 배제한 채

단지 이기기 위한 승부욕만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의욕적으로 살아가려면 지는 것도 알아야 한다.
지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스스로의 실력을 키우게 되는 커다란 동기로 승화시켜야 함이
진정한 승부욕이다.

 

 

짧은 시간에 그런 생각을 하는데 녀석은

가위바위보를 하는 또 하나의 규칙을 말한다.

 

 

"아빠가 보자기 내고 나는 가위 내는 거야!"

 

 

녀석의 승부욕은 내 생각보다 심해졌다.
이기기 위한 규칙까지 만들어가면서 가위바위보를 하자는 건
승부욕을 건전하게 키워주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이 녀석을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을 시키면 규칙도 잘 만들고
우기기도 잘할 것이라는 생각도 그 틈에 잠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녀석은 져야 한다.

그리고 지는 것을 알아야 하고 지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제 7살이 되었으니 현실에 적응해야 하고

세상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사실도 조금씩은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보자기가 아닌 주먹을 힘차게 낼 것이다.


그런 짧은 생각의 정리가 채 이뤄지지 않은 순간
녀석은 큰 소리로 가위바위보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가위바위보!"

 


녀석은 보자기를 내밀었다.
그리고 가증스럽게 웃으며 그 작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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