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번만 더 자면 돼?"
크리스마스 전날 밤.
큰 아이는 이제 한번만 더 자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고 가실 거라며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이미 며칠 전부터 카운트다운을 해가며
크리스마스의 선물을 기다리고 있던 큰 녀석은
몇번째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이 녀석은 아직 언어의 이해 및 전달 능력이 완성되지 않아
크리스마스가 뭔지 선물이 뭔지 구별을 못했는데
일년이 지나니 언어의 제어 및 학습능력이 놀랍게 발달했음은 물론
선물이 가지는 사회적 효과와
이에 따르는 개인적인 이익에 대한 계산능력도 탁월해져
선물이 어떤 건지 잘 알게 되었다.
따라서 선물이 가지는 기쁨을 알게된 녀석이 계속 조르고 있는 중이었다.
일주일전에 컴퓨터 게임을 수입하는 회사에 다니는 후배를 통해
'해리포터 게임 CD'도 한 장 얻어 두어 훌륭한 선물도 이미 준비된 셈이니
녀석에게 선물과 크리스마스에 대한
교육을 하는 내 입장도 제법 당당하며 또한 재미가 있었다.
일년 사이에 급속하게 발달한 녀석의 언어 능력을 근거로
나는 크리스마스와 커다란 양말이 가지는 상관 관계를 열심히 설명했다.
덧붙여 그런 선물을 받으려면 엄마 아빠 말 잘 듣고
동생하고 싸우지 말아야 한다는,
교과서적이며 또한 매우 전통적인 부모들의 단골 메뉴를
아낌없이 사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녀석 또한 모든 어린 아이들의 심리적 수준에 어울리게
선물 얘기만 나오면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말도 고분고분 잘 들었으니
이제야 말로 아이 키우는 재미가 흠뻑 느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 아까 걸어둔 양말이 어디 갔지?"
기껏 가르쳐주고는 그것도 모자랐는지
나는 녀석이 걸어둔 양말을 얼른 숨겨두고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녀석을 놀리고 있었다.
큰일이 난 것처럼 놀리는 것은 나의 생각이지만
녀석에게는 정말이 큰 일이 난 것이어서
녀석은 금방 당황하는 눈빛과 표정을 보이고는 이내 울먹이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더 울기전에 얼른 아까 숨겨두었던 곳을 가르키며 '여기있네~' 라고 하니
녀석은 이내 글썽이던 눈물을 멈추고 다시 환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리고 또 말을 건넸다.
"어? 저쪽 방에 불이 켜져 있네? 불 좀 끄고 올래?"
"싫어, 나 잘거란 말야!"
녀석은 몹시 귀찮은 듯 눈을 질끈 감았다.
그 표정은 얼른 잠을 자야 내일 아침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처럼도 보였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세 잡고 누웠는데
무언가를 귀찮게 시킨다는 짜증스런 표정도 섞여 있었다.
하긴 자려고 누웠는데 무언가 시키는 것처럼 짜증스러운 일도 없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짜증스러운 것은 짜증스러운 것이고
귀찮은 것은 귀찮은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이럴 때 선물과 산타할아버지를 적당히 섞으면
아주 훌륭한 메리트가 된다.
"그럼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 줄텐데?"
이 정도의 제안을 했으면 당연히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시키는 대로 해야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잠시 작은 혼돈이 생기는 사태가 발생했다.
"싫어, 나 그냥 잘거야!"
".......?"
잠시 혼돈스러웠지만 아직 '선물'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되어
선물이 가지는 사회적 이익을 강조한 강한 충격을 주었다.
"게임 CD인데?"
하지만 이미 몇 번 우려먹은 나의 놀림에 녀석은 지쳤는지
처음에 가졌던 선물에 대한 의지는 이미 나약해질 대로 나약해져 있었으며
산타할아버지가 가지는 묘한 매력도 이미 한참이나 사그라지고 있는 듯했다.
조금 더 강한 충격이 필요할 것 같아서 선물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해리포터 게임 CD 인데?"
이 정도면 귀찮아도 벌떡 일어나 득달같이 달려가 방의 불을 꺼야 하는 상황이라
생각했는데 녀석의 대답은 의외였다.
"나 CD 많아!"
"......?"
나는 당황했다. 이는 매우 급격히 반전된 상황이었다.
이 상황은 자칫 잘못하면 그동안 공들여 온 산타할아버지와 선물,
그리고 크리스마스와의 상관관계가 모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순간이다.
얼른 녀석을 살살 달래
처음에 가졌던 선물과 산타할아버지의 설레임을 갖게 하려고
무척 많은 땀을 흘렸다.
물론 건너 방의 불은 내가 껐으며
녀석이 선물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될 때까지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한번 바람 빠진 녀석에게
다시 선물의 설레임을 가져오는 일은 쉽지 않았으며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얽힌 나는 매우 당황한 상태가 되고 있었다.
얼르고 달래고 몇 번을 꼬시고 꼬시니
녀석은 예전의 설레는 얼굴로 돌아온 듯했다.
겨우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녀석이 말을 건다.
"아빠, 냉장고에서 '리틀짜리' 가져다 줄래?"
"어? 왜 내가 그거 가져다 줘야 하는데?"
그러자 녀석은 대한민국의 6살짜리 아이들로는 제법 짓기도 힘든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나 선물 안 받는다!"
"......."
선물을 미끼로 아이들을 놀릴 때는 적당히 놀려야 한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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