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셋 여자 한 분

나 저방에서 혼자 잘꺼야!

아하누가 2024. 6. 24. 01:33



"나 저 방에서 잘 거야!"

 


갑자기 집안에 놀라움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7살 먹은 큰아들 후연이가 잘 시간이 되어서 꺼낸 말이다.
우리 집은 방이 두 개밖에 없어

큰방에서 이불을 펴고 네 식구가 뒤엉켜 잔다.
침대를 치우고 나서 이불을 깔고 개는 행위가 조금 귀찮긴 했지만
그래도 가족끼리 진한 스킨쉽이 오가기도 하고
또 폭격 맞은 곳처럼 여기저기 널브러져 자는 모습도
제법 나쁘지 않아 계속 그 방식을 이어오고 있었다.

 

아이들 또한 밤에 아빠랑 엄마랑 뒤엉켜 자니 지들끼리 장난도 하고
불꺼놓고 옛날 이야기도 들으며 재미있게 보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큰아들 후연이가 모종의 결단을 한 듯

놀라움 가득한 말을 꺼낸 것이다.

 


작은 방은 컴퓨터가 있고 게임기가 있고

장난감이 잔뜩 쌓여있는 창고 같은 방이다.
그런 방에서 자겠다고 자리를 깔아달라니 언뜻 아무렇지도 않은 듯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단히 놀라운 변화였다.

우리 부부는 긴장했다.
저 녀석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갑자기 무슨 심정의 변화를 일으켜
이런 제안을 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해지기도 했다.

 

 

"너 왜 거기서 잘 건데?"
"그냥~"

 


궁금함을 묻는 질문에 녀석의 대답은 매우 단순했다.

 


눈앞에 벌어진 이 일을 두고 아내와 나는 머리를 맞대고
녀석의 심리적 변화와 물질적 요구,

또는 협박에 대한 의도가 담겨있는지의 여부,
이 일이 향후 월드컵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해 분석했으나
딱히 우리를 이해시켜 줄만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녀석이 혼자 자겠다는 것은 이제 그만큼 컸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부모에 대한 불만의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의 감정표현을 감출 줄 모르는 녀석이
그렇게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녀석은 왜 갑자기

혼자서 자겠다고 다른 방에다 자리를 깔아달라는 걸까.

그리고 잠시의 숙의 끝에 부부가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녀석은 동생이 하나 더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녀석이야 동생이 하나 더 생기면 장난감 하나가 더 생겼으니
기분이 좋을 지도 모르겠지만 제작 공정 및 기타 관리를 해야 하는 부모 입장은
그것이 녀석이 바란다고 간단하게 결정될 일은 아니다.
그리고 세상의 어느 부부가 가족계획을 하는데 있어
가족 계획으로 생긴 녀석의 의중을 반영하며 가족 계획을 하는가.
이미 프로젝트에 의해 태어난 놈의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는 것은
학계에 보고된 바도 없는 일이다.

 


따라서 그 심정은 갸륵하나

오랜 시간을 두고 연구 검토해야 할 사항으로 단정하고
어느덧 훌쩍 커버린 녀석의 성장에 만족하기로 했다.

이제 7살이 되더니 예전에 안 하던 짓도 하려는 모양이다.
어느새 철이 든 것 같은 녀석을 보니 기분이 흐뭇해졌다.
하지만 흐뭇함도 잠시 녀석은 혼자 누운 지 5분이 지나지 않아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 시작했다.

 

 

"다 일루 오란 말이야!!!!"

 

 

그리고 녀석은 모두 자기가 있는 쪽으로 안온다며 땡깡을 부렸다.
소주 두어병 마신 옆집 아저씨처럼 땡깡을 부렸다.
하는 짓이 귀여워 남은 식구들이 작은 방으로 옮겼지만

워낙 비좁고 불편한 곳이라 함께 있기도 불편했다.
우리는 불편한데도 녀석은 뭐가 좋은지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무언가 계속 떠들어댔다.
다 큰줄 알았는데 그게 우리 부부의 방심이었다.
녀석의 땡깡이 점점 심해지면서

녀석은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한 엄마에게 엄청 맞았다.
어쩐지 하는 꼴을 보니 맞을 것 같았다.
그리고 훌쩍거리며 작은 방에서 펼쳤던 이불을 가지고 큰방으로 철수했다.
그리고 녀석은 이런 사실들을 알았을 것이다.

 

 

1. 작은 방에서 잘 때는 남을 부르지 말아야 한다.
2. 엄마 주먹은 아빠하고는 또 다르다.
3. 나도 빨리 아이를 낳아야겠다.
4. 동생이 내가 맞을 때 웃었다.

 

 

 

* * *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녀석이 이제 조금 더 자라면 혼자 잠을 자려고 할 것이다.
벌써 그 일을 생각하면 섭섭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게 다 부모들이 겪어야 하는 일인걸.

 

 

오늘도 커다란 방에 각자 사방으로 나뉘어 여기저기 흐트러진 채 잠들어 있는
식구들을 본다.
시간이 지금보다 더 지나도 나는 지금의 이 모습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습이 내가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장면이라는 것도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아하누가

지금은 두 형제가 이층침대 한칸씩 자리잡고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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