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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바위보

“여보, 빨리 와서 후연이랑 가위바위보 해봐욧!” 일을 마치고 집에 들아왔더니 아내는 잔뜩 흥분된 목소리로 유난히 호들갑을 떤다.흥분하는 저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아들 후연이가 가위바위보를 할 줄 안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렇다면 이는대단한 성장을 했다는 신호다.가위바위보를 한다는 것은 우선 언어적인 학습능력과 제어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수학적 능력과 승패에 대한 판단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니이제는 제법 사람 소리를 들을 만큼 커버렸다는 얘기다.하지만 아내의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었다.“아니, 얘가 어떻게 가위바위보를 한다고 그래?”못 미덥다는 말투로 아내에게 반문하니 아내는 못믿는 내가 오히려 불쌍하다는,마치 사이비 종교를 선교하는 이상한 사람들의 표정이 되어 내게 말한다. “아, 글쎄...정말이라니..

싸인

“내가 조금 아는데 내가 가서 받아 올까요?” 권진원이라는 가수가 ‘살다보면’이라는 곡을 막 발표했을 무렵아내와 함께 콘서트에 간 일이 있었다.권진원이란 가수는 멤버 이전이었던강변가요제 입상(86년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부터 좋아했었다.당시 ‘지난 여름밤의 이야기’라는 곡으로 은상을 받았는데그곡이 매우 인상적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었다.마침 그날 콘서트에도 그 노래를 불러 잠시 오랜 추억에 잠기기도 했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니 갑자기 싸인이 받고 싶어졌다.연예인이나 운동 선수의 싸인을 받아본 일이 거의 없었으니막상 싸인을 받는다는 일도 그리 쉽지 않은 일처럼 느껴지던 참이었다.그런데 아내가 권진원이란 가수를 그전에 한번 만난 일이 있다며싸인을 받아오겠다고 하니 이 얼마나 반가우면서도 놀라운 사실인가.하..

원고료

“또 전화 오면 집으로 전화해달라고 그래!” 일요일 오후, 백화점에 간다던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내 핸드폰을 빌려주었는데 그 핸드폰으로 어떤 여자한테서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마침 모 라디오 방송국의 피디와 통화할 일이 있었던 참이었다.웬 여잔가 생각하던 아내는 전화를 건 여자가 방송국 PD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아내가 생각하는 직업의 선호도에 방속국 PD는꽤 상위그룹에 랭크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내는 곧 약한 모습을 보였고,PD만 아니었다면 재미있는 일도 벌어질 뻔했는데다행인지 불행인지 별일 없이 지나가 버렸다.“근데 왜 PD가 당신을 찾아요?” 백화점에서 돌아온 아내는 뭐가 그리 궁금한지 요목조목 캐물었다.아직 한번도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 나도 뭐가 뭔지 모르는데이것저것 캐물으며 그것도 모..

범칙금 통지서

“예 벌금을 안냈다구요? 그럴리가 없는데...?” 출근하자마자 기분 나쁜 목소리의 남자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몇 개월 전에 신호위반을 한 적이 있는데 그에 대한 벌금을 물지 않아자동차에 대한 재산 압류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물론 없었던 일이 갑자기 황당하게 생긴 것은 아니다.아버님과 고모님을 모시고 모르는 길을 찾아가다가 그만 깜빡 신호를 못보고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한국 경찰답지 않은 기민함으로기동대까지 쫓아와서 단속을 했었다.당시 차에는 아내도 있어서 아내가 강짜도 부려보고 애교도 떨어보고 했지만그 기동경찰은 거기까지 쫓아온 게 아까왔는지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그래서 하는 수 없이 딱지 한장을 떼었던 일이 있었다. “아마 잘못 보셨을 겁니다. 다시 한번 확인하시죠?” 기분 나쁜 목소리의 주인공..

알타리와 열무

1,“어? 내가 먹다만 거 어디 갔지?”어느날 점심식사 시간. 아내와 식사를 하다가 세번쯤 베어 물어둔알타리김치 한토막이 없어져 버렸다.알타리무에 아무리 발이 달렸다고 해도 세번이나 베어 물었으니자신에게는 엄청난 중상일텐데 그 몸으로 어디 멀리 도망갔을 리는 절대 없었다. “여보! 내가 먹다 만 알타리 김치 당신이 먹었지?” 형사 콜롬보 할아버지 보다 더 예리한 관찰력과 추리력을 발판으로아내에게 취조하듯 물으니 아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에...  나는 알타리무 김치를 좋아한다.특히나 입맛이 없을 때 먹는 알타리김치는 시원하기만 할 뿐 아니라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상큼한 입맛이 뱃속 가득 포만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알타리의 무 부분과 파란 무청 부분이 만나는 부분으로약간 ..

운전면허

“어이구...바보같이 그걸 떨어졌단 말이야?” 아내가 운전면허를 따던 무렵, 처음 치른 운전면허 필기 시험에 떨어졌다.떨어진 사람의 공통점 한가지는 점수가 우연하게도모두 합격선에서 한문제 모자라는 68점이라는 것으로,아내 또한 떨어진 사람의 한사람이라 당연히 점수가 68점이 나왔다고 했다.바보같이 그걸 떨어졌느냐고 핀잔을 주니 아내는 몹시 화난 목소리로 반문한다. “글쎄 그게 쉬운게 아니라니까 그러네요.....”하긴 그때까지 나는 아직 운전 면허도 없었으니 쉽게 할 말을 아니었던 셈이다.하지만 흔히 듣는 얘기로는 전혀 어렵지 않다는데 그걸 떨어졌다니일단 놀림의 말부터 나가는 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그 뒤로 아내는 다음 필기시험에 바로 합격했지만코스와 주행으로 나누어 보던 시험제도에서 무려 6번만..

아내의 얼굴

1. 가장 희망에 찬 얼굴 어떤 다이어트 식품에 대한 광고를 기획한 적이 있다.과일과 야채를 자연발효시킨 식품을 밥 대신 먹는 것으로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주어밥을 먹지 않아도 생활에는 지장이 없을 뿐 아니라오히려 인체내 노폐물을 말끔이 제거해줌으로써 다이어트는 물론체질의 개선에도 도움을 주는 제품이었다.다만 식사를 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공복감을 견디기 힘든 것 또한당연한 사실이었다.광고를 위해 그 제품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다보니(광고를 해주려면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꽤 괜찮은 제품이라는 확신이 들어그 회사 사장에게 내가 직접 해보겠노라고 했다.그 회사 사장은 무척 대견한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을 보며 나도 무언가 한건 했다는근거없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10일 이상 아무것도 먹지 않는..

잠자리

“맴맴매엠맴~” 아니, 아직 매미가 울려면 한참이나 남았을텐데 집에 들어오니때 아닌 매미 소리가 진동한다.이게 무슨 소린가 방안을 힐끔 들여다보니아내는 라는 그림책을 펼쳐 놓고 아들 후연이에게마치 개그맨이라도 되는양 갖은 액션과 성대모사를 동원하여하나하나 설명하고 있었다.그러니까 매미가 나오는 페이지를 열고 한참이나 매미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엄마를 따라하는 후연이의 매미 소리는 어째 염소 울음 소리로 들린다.그러다 가만히 보니 아내는 한 페이지에 하나씩 그려져 있는 벌레 이름을정확하게 가르쳐 주는게 아니라 한가지 특성만 골라 설명하는 중이었다. “후연아, 이건 뭐야?”“위잉 위잉~” 아, 저건 벌을 말하는 거구나. 하긴 뭐 아기한테 저렇게 가르쳐주는 것도그리 나쁜 방법은 아니지.아내는 그동안 자신이 가..

출산

“여보! 오늘부터 휴가라면서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첫 출산을 앞두고 배가 남산만해진 아내가결국 회사에 출산휴가를 낸 바로 그날의 일이다.직장에 다니는 아내는 출산 예정일이 무려 일주일이나 지났는데도자동차를 직접 운전하며 출퇴근을 했었다.그리고 출산휴가가 시작되는 날 아침에 눈을 어슴츠레 떴을 때아내는 이미 외출준비를 서두르고 있기에 서둘러 물었다.아내는 그리 대수롭지 않으면서도 시큰둥한 목소리로 내 기억에 가장 또렷하게,그리고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만한 황당한 대답을 했다. “응.....애 낳으러....” 아내는 자동차 열쇠를 들고 직접 운전해서 병원으로 가겠다고 한다.더 이상 기다리기 싫다는 얘기를 간밤에 했던지라아마도 오늘은 반드시 낳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와 특유의 급한 성격이 맞물려국내 출산 ..

알미늄 샷시

“샷시 시공이 잘 됐나요?”  결혼하고 약 3년 가량 지났을 무렵 절친한 선배의 소개로조그만 집을 한채 장만할 수 있었다.그러나 직접 살기에는 직장과 꽤 먼 거리에 있어 남에게 세를 주었는데그집 베란다의 샷시는 원래 집주인이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내집을 장만하고야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니 나도 어지간히 무관심하게 살았나 보다.돈이 없어 버티다 버티다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선배로부터 소개 받은한 시공업체에 의뢰해서 그 집 베란다에 샷시를 설치했다.그리고는 저녁에 전화로 상태가 어떤지 묻고 있는 중이었다. “샷시는 잘 매달려 있는데요... 근데요...” 그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말꼬리를 흐린다.이유를 물어보니 한장짜리 커다란 유리로 샷시를 하다보니천정쪽 기둥 모서리를 조금 깰 수 밖에 없었다는데 그 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