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구...바보같이 그걸 떨어졌단 말이야?”
아내가 운전면허를 따던 무렵, 처음 치른 운전면허 필기 시험에 떨어졌다.
떨어진 사람의 공통점 한가지는 점수가 우연하게도
모두 합격선에서 한문제 모자라는 68점이라는 것으로,
아내 또한 떨어진 사람의 한사람이라 당연히 점수가 68점이 나왔다고 했다.
바보같이 그걸 떨어졌느냐고 핀잔을 주니 아내는 몹시 화난 목소리로 반문한다.
“글쎄 그게 쉬운게 아니라니까 그러네요.....”
하긴 그때까지 나는 아직 운전 면허도 없었으니 쉽게 할 말을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흔히 듣는 얘기로는 전혀 어렵지 않다는데 그걸 떨어졌다니
일단 놀림의 말부터 나가는 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그 뒤로 아내는 다음 필기시험에 바로 합격했지만
코스와 주행으로 나누어 보던 시험제도에서 무려 6번만에 합격을 했다.
그 여섯번의 불합격 기간 동안 나는 갖은 사악한 방법을 동원하며 심술을 부렸으며
온갖 수려한 표현력을 동원하여 아내의 억장을 살살 긁고 있었다.
그러다가 감정이 극도로 흥분한 아내가 수퍼사이언이 되면
집안 가구 및 가전제품들이 이리저리 위치를 이동하기도 했었다.
놀리는게 재미있어서 아내가 밥을 안차려주는 테러를 감행해도 재미있었으며,
잠버릇을 핑계로 두꺼운 허벅다리로 배를 눌러도 단전호흡이라도 한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맞아 들이고 있었다.
사람 놀리는게 얼마나 즐겁던지 나는 자동차 학원 수강료가 얼마가 드는지,
한번 시험볼 때마다 돈이 얼마가 드는지에 관심은 전혀두지 않고
아내가 계속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흉칙한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 * *
“하하....어디 두고 봅시다. 흐흐흐”
그러나 그뒤로 시간이 1년 가량 흐른 어느날. 나도 드디어 운전면허 시험을 보게 되었다.
이미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게 된 아내는 어디 두고 보자며
안그래도 서슬이 퍼런 칼날을 더욱 부지런히 갈고 있었다.
애써 태연한 척하다가 얼핏 예상문제집을 보니 생각보다 분량이 많을뿐 아니라
생소한 단어들도 많아 적잖은 고민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시험 전날. 아내가 잠들고 난 후부터 공부에 들어가 정말 동이 틀 때까지
열심히 열심히 공부했다.
진작 그렇게 공부했으면 아마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
노벨상도 받을 수 있었을 것만 같았다.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했는지 외국 대학은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안드로메다나 페가수스 대학같은 외계인 대학에도 충분히 합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아내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그렇게 공부하지 않아서 오늘 합격하긴 틀리겠노라고
예전에 내가 써먹었던 비슷한 유형의 단어들을 나열하며 걱정 섞인 놀림의 말을 했었다.
하지만 그런 아내의 걱정과는 달리 밤을 꼬박 세우며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합격선이 높은 1종 면허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뛰어난 성적으로
운전면허 필기 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합격률이 30%를 약간 웃돌았으니 떨어진 사람들이 훨씬 많은,
정말 쉽지만은 않은 시험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합격한 사람이 그런 것이 눈에 들어 올 리는 당연히 없었다.
저녁에 그 소식을 들은 아내는 ‘역시 우리 남편이 최고야’라며
단순하기 그지없는 본래의 성격으로 돌아가
오랜만에 가장의 권위와 신뢰를 담뿍 얻어내기도 했었다.
또 시간이 많이 흘렀고 지금 아내는 운전을 제법 잘한다.
약간의 접촉사고에도 말로 때울줄 알고 자동차가 안가면
지나가는 택시 세워서 손좀 봐달라는 말도 할 줄 안다.
여차하면 밀고 가면된다는 혼자만의 최후의 수단이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려와는 달리 운전을 아주 잘하고 있는 셈이다.
* * *
남자들의 눈에 비친 여자의 모습은 크게 두가지로 나타나곤 한다.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여자, 즉 아내, 동생, 애인 등은
무엇을 해도 답답하게 못할 것만 같고 그외에 아무 관련도 없는 여자들은
무엇을 해도 똘똘하고 빈틈없이 해낼 것만 같은게 바로 그것이다.
그 부분의 대표적 사례를 들어보라면 아내에게 또는 애인에게
운전을 가르쳐주는 데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뭐가 그리 멍청한지 도대체 답답하기 그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철저하게 남자들 생각일 뿐이다.
모든 것이 자신의 여자를 얕보는 심성에서 비롯된 것일테니 말이다.
그 순간 아무 관계없는 다른 남자는 우리 마누라를 아주 똘똘하고 야무진 사람으로
보고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지금 만나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여자가 세상에서 제일 괜찮은 여자라고
생각하며 사는 게 가장 현명한 일일 게다.
운전면허 시험에 10번째 떨어져보면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