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맴맴매엠맴~”
아니, 아직 매미가 울려면 한참이나 남았을텐데 집에 들어오니
때 아닌 매미 소리가 진동한다.
이게 무슨 소린가 방안을 힐끔 들여다보니
아내는 <곤충의 세계>라는 그림책을 펼쳐 놓고 아들 후연이에게
마치 개그맨이라도 되는양 갖은 액션과 성대모사를 동원하여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매미가 나오는 페이지를 열고 한참이나 매미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엄마를 따라하는 후연이의 매미 소리는 어째 염소 울음 소리로 들린다.
그러다 가만히 보니 아내는 한 페이지에 하나씩 그려져 있는 벌레 이름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는게 아니라 한가지 특성만 골라 설명하는 중이었다.
“후연아, 이건 뭐야?”
“위잉 위잉~”
아, 저건 벌을 말하는 거구나. 하긴 뭐 아기한테 저렇게 가르쳐주는 것도
그리 나쁜 방법은 아니지.
아내는 그동안 자신이 가르친 대단한 업적을 내게 보여주려는듯
신이나서 계속 그림책을 펼치고 있다.
“후연아 이건 뭐야?”
“야비!”
응. 그건 나비를 말하는군. 말하고 나서는 양팔을 벌리고 날개짓하듯 동작을 취한다.
맞아, 나도 예전에 국민학교 다닐 때 ‘나비야~ 나비야~’ 많이 했었지.
재미도 없었는데 선생님이 자꾸 시켰었지.
“그럼 이건 뭐지?”
“짬짜이!”
음.... 잠자리는? 저건 어떻게 할까?
갑자기 잠자리가 가진 특징을 뭘로 설명할 지 궁금해졌다.
잠시 기다리니 아들 녀석은 손가락을 내 눈앞으로 가져와 빙글빙글 돌린다.
돌리려면 자기 눈에다 돌리지 왜 내 눈앞에서 손가락을 돌린담?
갑자기 어지러웠다. 아니, 이게 잠자리란 말인가?
그러고보니 옛 생각이 난다.
* * *
결혼전에 야외로 놀러가면 아내는 늘 잠자리를 잡았다.
잠자리라는 놈은 눈이 하도 많아서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면 정신을 못차린다나?
그러면서 아내는 잠자리가 어딘가에 앉기만 하면 번개같이 뛰어가
그 빙글빙글 전법을 이용해 수많은 잠자리를 유린하곤 했다.
잡는 아내는 신이 나서 주변의 꼬마 애들에게 잡은 잠자리를 나누어 줬고
나도 해보려고 여러번 시도했지만 잠자리는 초보자의 얕은 전술을 어찌 그리 잘 아는지
잘 잡히지 않고 하늘 높이, 높이 높이 올라 가기만 했다.
하도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더니 주변이 빙글빙글 돌고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던 내가 오히려 빙글빙글 돌 지경이었다.
어린 시절 아내는 강원도 산골에서 자랐다.
거기서 잠자리도 잡고 메뚜기 잡아 구워먹고, 개구리 잡아 먹고, 미꾸라지 잡아 끓여 먹고....
가만히 아내를 보면 요즘 어른들이 정력에 좋다며 개구리니 미꾸라지를 먹으려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가끔씩 나는 아내가 힘이 센 이유를 거기에서 찾곤 한다.
어린 시절 그것도 한참 성장기에 미꾸라지나 개구리를 밥먹듯이 먹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물방개까지 잡아 먹었다니 이야말로 몬도가네에나 나올 법한 얘기 아닌가?
도대체 물방개를 어떻게 먹냐고 물었더니 날개 떼어내고 다리 떼어내고
후라이판에 튀기면 맛있다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하곤 했다.
어쩌면 뱀도 잡아 먹었을 지 모른다.
아내 말로는 어머니 아버지가 일하러 나가시고 동생들 데리고 놀고 있는데
집 마당에 뱀이 들어 온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아내는 동생들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핑계삼아 삽을 들어 뱀의 대가리를 강타,
일격에 기절 시킨뒤 나중에 구렁이가 되어 복수하러 올지 모른다는,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가 생각나 삽의 옆날로 뱀을 처참하게 두동강을 낸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 뱀도 어지간히 재수없는 뱀이다.
근거없는 헛소문 때문에 시신도 못챙기고 진실도 못밝힌 채 장렬히 전사했으니 말이다.
거기까지만 애기를 들었는데 아마 그 이후 그 뱀도 구워 먹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아내의 모습이 뱀으로 잠시 변하기도 했다.
아마 지나가던 땅꾼이 그 장면을 봤으며 거액에 스카우트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런 아내와는 달리 난 서울 태생이다.
어린 시절, 냇가는 지저분한 개천밖에 없었으니 갈 수가 없었고
다행히 근처에 산이 있어 산에는 자주 가서 놀았다.
뱀이나 개구리를 보긴 했지만 감히 잡아 먹을 엄두도 못내었는데....
이제 우리 후연이는 어떻게 자랄까?
조금 더 크면 컴퓨터 앞에만 앉아서 놀려나? 아니면 게임기하고만 놀려나?
친구들을 만나면 산이나 냇가에 가는게 아니라 PC게임방에 갈테지.....
갑자기 아내가 자랐던 깊은 산골이 부럽게 느껴졌다.
적어도 아들 놈이 초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라도 그렇게 살고 싶은데 말이다.
그러니 역시 아들 교육은 그렇게 자란 아내가 제격인 것 같다.
아마 내가 그 책을 펼쳐줬었다면 잠자리는 헬리콥터로,
나비는 수영의 버터플라이 동작을 보여줬을게다.
* * *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아들 후연이는 계속 그 책을 이리저리 넘기고 있다.
이제 혼자 책을 넘길 만큼 컸다고 생각하니 대견스럽다.
이럴 바에야 저녁은 내가 대충 차려먹고 아내는 아들하고 노는게 더 낫다고 생각되어
아내에게 말하려는데 아들 후연이는 그림책 어느 페이지를 보고는
팔을 높이 쳐들고 괴성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뛰는 동작도 무척 민첩했으며 지르는 괴성도 아기가 하기엔 어째 심상치 않은 음성이었다.
아니? 저건 또 무슨 곤충이길래 저렇게 방정맞게 뛴단 말인가?
밥상을 차리는 아내를 뒤로 하고 슬며시 아들 녀석이 보는 그림책을 들여다보곤
곧 생각을 달리 하기로 했다.
그리고 가끔은, 아주 가끔은 아들 녀석에게 학술적인 면도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녀석이 펼친 그림책에는 이런 벌레가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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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당 벌 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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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