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마누라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알미늄 샷시

아하누가 2024. 7. 5. 01:23


 

“샷시 시공이 잘 됐나요?”

 

 

결혼하고 약 3년 가량 지났을 무렵 절친한 선배의 소개로
조그만 집을 한채 장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직접 살기에는 직장과 꽤 먼 거리에 있어 남에게 세를 주었는데
그집 베란다의 샷시는 원래 집주인이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집을 장만하고야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니 나도 어지간히 무관심하게 살았나 보다.
돈이 없어 버티다 버티다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선배로부터 소개 받은
한 시공업체에 의뢰해서 그 집 베란다에 샷시를 설치했다.
그리고는 저녁에 전화로 상태가 어떤지 묻고 있는 중이었다.

 

“샷시는 잘 매달려 있는데요... 근데요...”

 

그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말꼬리를 흐린다.
이유를 물어보니 한장짜리 커다란 유리로 샷시를 하다보니
천정쪽 기둥 모서리를 조금 깰 수 밖에 없었다는데 그 마무리가 매끈하지 못하여
페인트가 벗겨진 채 콘크리트 모습이 약간 흉하게 되었다고 전해주었다.

 

 


잠시 고민에 잠겼다.
원래 그런 일을 꼼꼼히 챙겨서 하는 성격은 전혀 아닌데다
그걸 따지는 일은 오히려 피곤하기만 하지 득이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하지만 이제 집주인도 됐으니 제법 꼼꼼히 챙길 것은 챙기고
따질 것은 따지며 살아가야 하는 것도 한편으론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 또한 역시 생각일 뿐이고 성격으로 보나 평소 사고방식으로 보나
절대로 그 시공업자에게 따지지는 못할 것만 같다.


“뭐래요?”

 

그때 마침 졸린듯한 눈을 한 채 다림질에 열중하고 있던 아내가 내게 물었다.
앗! 그렇다. 아내가 있었다. 내가 왜 아내 생각을 못했던가....
그리고는 아까 전화로 나누던 대화 내용을 10배 이상 부풀려 얘기를 하며
아내의 전투의욕을 북돋우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조금’은‘엄청’또는‘몹시’로 샷시 시공업자 관련 부분에서도
‘비양심’,‘불량’,’불성실’등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기 충분한 단어는 물론
갖은 인신공격용 용어마저 서슴지 않고 해대니
아내의 전투력은 순식간에 수퍼사이안급이 되어갔다.
졸리던 눈은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으며 손에 들고 있던 다리미로
마치 누구를 쥐어 팰 듯한 손놀림을 계속하며 비분강개하고 있었다.
얼마나 보기 흉하게 되었느냐고 물을 때도 나는 나의 어휘력으로 동원될 수 있는
가장 극악무도한 단어들을 나열했으며
못알아 들을만한 여러운 단어라고 생각되는 경우는 리얼한 예를 들어가며 설명을 했다.
주로 등장하는 예는 파렴치한 반 인륜적 사회범죄자들이었고
가끔씩 아내가 싫어하는 몇몇 사람의 이름을 떠오르게 하기도 했다.

 

“따르르르릉.....”

 

마침 알미늄 샷시 시공업자에게 전화가 왔다.
운도 없는 이 시공업자는 하필이면 이 순간에 공사을 마쳤으니 돈을 달라는 내용을
전해주었다. 약간 비겁했지만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하곤 아내를 바꾸어 주었다.
마치 다른 곳에서 온 전화처럼 자연스럽게 바꿔주느라 고생했다.
그 뒤의 내용이야 쉽게 상상할 수 있을테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그 대신 통화에 오가던 말중 아내의 말 몇부분만 발췌하여 나열하니 아마 이를 보고
사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니까... 그렇게 하고 돈을 받겠다 이 말이에요?
- 알아요..알아... 나도 돈 버는 사람이야, 돈 벌기가 그리 쉽나?
- 그거 말끔하게 정리하면 준다니까 누가 안준대요?
- 뭐라구? 그래서 지금 한판 하자는 거야?
- 그러다가 한푼도 못 받는 수가 있어!!!!

 


* * *


 

시공업자에게 있어 이 싸움은 처음부터 무리한 싸움이다.
상대도 상대인데다 돈을 받으려는 사람이 돈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어찌 이기겠는가?
결국 며칠 뒤 그 시공업자로부터 천정옆 기둥 모서리 부분을
말끔하게 정리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돈을 건네주기 전 우리 부부는
세를 준 그 아파트를 방문했다.
샷시도 제법 잘 된 것 같았고 문제가 되었던 기둥 모서리 부분도
말끔하게 시멘트로 발라 다시 그 위에 원래의 색깔로 페인트칠까지 되어 있었다.


그걸 보니 조금 미안한 생각도 들긴 했지만 보기 싫은 걸 보고 속상한 것보다는
낫다는 합리화된 생각으로 애써 미안한 감정을 잊으려 하고 있었다.
시공업자가 돈받으러 오면 건네주라며 세든 사람에게 가져간 돈을 건네주고
우리는 옆동에 사는 선배 - 아파트를 살 수 있게 소개해주고 시공업자를 소개해준 -
집을 방문했다.
선배집의 샷시는 우리집과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베란다 위 기둥 모서리가
흉하게 깨어져 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선배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원래 이렇게 해줘. 우리집 뿐 아니라 옆집, 앞집 다 이런데?”

 

그말을 듣고 우리 부부는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건지
비로소 알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있었다.


가끔, 아주 가끔, 아내는 인생의 훌륭한 스승이 될 때도 있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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