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마누라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알타리와 열무

아하누가 2024. 7. 6. 01:31


 

1,


“어? 내가 먹다만 거 어디 갔지?”


어느날 점심식사 시간. 아내와 식사를 하다가 세번쯤 베어 물어둔
알타리김치 한토막이 없어져 버렸다.
알타리무에 아무리 발이 달렸다고 해도 세번이나 베어 물었으니
자신에게는 엄청난 중상일텐데 그 몸으로 어디 멀리 도망갔을 리는 절대 없었다.

 

“여보! 내가 먹다 만 알타리 김치 당신이 먹었지?”

 

형사 콜롬보 할아버지 보다 더 예리한 관찰력과 추리력을 발판으로
아내에게 취조하듯 물으니 아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에...

 

 

나는 알타리무 김치를 좋아한다.
특히나 입맛이 없을 때 먹는 알타리김치는 시원하기만 할 뿐 아니라
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상큼한 입맛이 뱃속 가득 포만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알타리의 무 부분과 파란 무청 부분이 만나는 부분으로
약간 질긴 느낌을 아그작아그작 과감히 씹어 먹으면 더 시원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것이 불행인지 아니면 다행인지 아내 또한 알타리에 관한 한
비슷한 입맛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내가 무 부분부터 먹기 시작하면
눈을 떼지 않고 기다리다가 결정적인 부분만 남게 되면
가차없이 가로채서 훔쳐먹는 행위를 반복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무 생각없이 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앞서 몇번 그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생각이 들었다.


“참나... 남자가 알타리 무 한개 가지고 뭘 그래요?”

 

아내는 자신의 치사한 반칙 행위는 인정치 않고
그 모든 사실을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양보를 요구하는 전략이 가득 담긴 말을
하고 있었다.
한개가 아니라 전에도 그랬다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건 이미 지난 일이라 지금처럼 현장범으로서의 확증이 없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먹으려고 하는 김치를 훔쳐먹는 사람이 어딨어?”
“난 안 먹고 버리려는 건줄 알았지.....”

 

아내는 갑자기 양보를 요구하는 정치적 해결로는 통하지 않겠다는 사실을 인식했는지
맞장을 뜨려는 강공책으로 전술을 수정한 것 같았다.


나도 강공으로 맞섰다.
분명 잘못을 한 사람은 내가 아니었고 만약 사과를 꼭 해야할 상황으로
발전되더라도 사과할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은
굳이 가정의례준칙이나 지방자치단체 규정, 또는 판례를 들추지 않아도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열무김치 하나 때문에 벌어진 싸움이라는 발단의 문제만
쫀쫀한 남자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합리적으로 잘 해결하면
승산이 상당히 높은 경우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특유의 단순무식 작전으로 일관했고
더 이상 합법적이고 법리적인 논리가 통하지 않게 됨을 느끼고는
급기야 특기라고 할 수 있는 물리적인 저항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차츰 위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저항의 단계를 넘어
조금 더 공격적으로 바뀌었고 조금전 까지만 해도 밥을 사이좋게 먹던 부부가
갑자기 웬수지간으로 변하여 치고 박는 유혈전이 벌어지게 되고 만 것이다.

남들은 부부끼리 어떤 식으로 싸움을 하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우리 부부는 싸울 때 거의 격투기를 연상시킨다.
격투기 중에서도 아마추어 레슬링의 그레꼬로만형을 연상하면 된다.
스케일 작게 서로 토라져서 말 안하고 버티는 싸움을 무척 싫어한다.

 


그렇게 그날은 밥을 먹다 말고 베어둔 알타리김치 때문에
금메달도 걸려있지 않은 레슬링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알타리 김치를 먹을 때 꼭 자기것만 먹기로 합의를 했다.
각자 무에다 자기 이름을 쓰자고 하고 싶었지만
알타리무에 써질만한 필기구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고
이거 잘못 말했다가는 아주 치사한 놈 될 것 같아 애써 참고 있었다.

 


* * *

 


알타리 김치는 맛은 좋지만 매우 위험한 음식이다.
잘못 먹으면 레슬링 경기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그래도 알타리 김치가 좋다. 가끔씩 밥먹다가 기분도 새롭게 할 겸
또한 운동량을 늘려 소화도 시킬겸 레슬링도 한번쯤 해볼만 하다.
다만 누군가 반칙을 하거나 또는 둘중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밀릴 경우
이를 말리거나 판정을 내릴 심판이 있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다.

 

 

 

2.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요”


무섭게도 태양이 내리쬐는 한 여름의 일요일. 점심을 준비하던 아내가 묻는다.
딱히 입맛도 없는 계절인지라 별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뭐... 밥에 물말아서 오이지랑 먹지 뭐...여름철엔 그게 최고잖아?”

 

그냥 알아서 해석하려니 하며 던진 말인데 아내는 간밤에 꿈자리가 뒤숭숭했는지
아니면 아침에 화장실에서 그날의 배설처리가 실패로 끝났는지
괜한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뭐가 최고에요? 물 말아서 밥 먹는덴 열무김치가 최고지!”

 

아니? 열무김치가 최고라니?
열무김치는 약간 뜨거운 밥을 고추장에 비벼 먹을 때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이지
찬밥을 물에 말아 먹을 때 어울리는 음식은 아닌 것이다.
더욱이 열무는 가끔 물김치로도 담구어지기 때문에 이미 물에 말은 밥과의 관계는
한번 더 멀어진 셈이다.


또한 물을 필요로 하는 염분의 농도를 생각할 때
오이지는 열무김치보다 훨씬 짠 음식이지 않은가?
물론 오이지도 가끔 물에 둥둥 띄여서 먹을 경우도 있긴 하지만
지금은 고춧가루가 탐스럽게 버무려진 그 오이지를 말하는 거라고 우기면 되니
별로 문제 될 건 없다. 따라서 이는 분명한 도전이다.

 

“아니 물에 말아먹을 때는 오이지가 최고지, 어째서 열무김치가 최고라는 거지?”

 

아내는 주로 반박할 논리가 없으면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지금의 이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아내는 계속 물 말아먹을 때는 열무김치라는 소리만
반복하고 있었다. 우길 걸 우기고 양보할 걸 양보하라고 해야지,
말도 되지 않는 열무김치를 감히 오이지에 비교하다니 이는 정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또 레슬링을 했다.
지난번 알타리김치 때의 그레꼬로만형보다 조금 더 과격한 자유형을 택했다.
물론 후반부에는 킥복싱과 유사한 종합 격투기의 신종목도 창조하게 되었다.
그 뒤로 죄없는 오이지와 열무김치는 서로 앙숙이 되었다.
따라서 오이지와 열무김치가 한 밥상에 올라올 때 우리 부부는 그것을 이렇게 말한다.


 

“오 열 동 주”

 


* * *


 

어렸을 때는 조금 더 많이 먹으려고, 조금 더 맛있는 음식 먹으려고
형제들과 싸운적이 있었다.
먹을 것 가지고 싸우는 일은 어린애들만 하는 건줄 알았는데
싸움의 발단만 조금 달라졌을 뿐 먹을 것 가지고 싸우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니면 아직 어른이 덜 된 걸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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