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빨리 와서 후연이랑 가위바위보 해봐욧!”
일을 마치고 집에 들아왔더니 아내는 잔뜩 흥분된 목소리로 유난히 호들갑을 떤다.
흥분하는 저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아들 후연이가 가위바위보를 할 줄 안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렇다면 이는
대단한 성장을 했다는 신호다.
가위바위보를 한다는 것은 우선 언어적인 학습능력과 제어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수학적 능력과 승패에 대한 판단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니
이제는 제법 사람 소리를 들을 만큼 커버렸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내의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었다.
“아니, 얘가 어떻게 가위바위보를 한다고 그래?”
못 미덥다는 말투로 아내에게 반문하니 아내는 못믿는 내가 오히려 불쌍하다는,
마치 사이비 종교를 선교하는 이상한 사람들의 표정이 되어 내게 말한다.
“아, 글쎄...정말이라니까요... 내가 방금 다섯번 했는데 두번이나 졌단 말이에요”
아내가 졌다는 말을 들으니 그때야 그게 사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도 못믿겠다는 말투로 말한 놈이 금방 촐삭거리며
그에 반응하는 것도 쪽팔리는 일이라 가장의 권위도 세울 겸
애써 관심없는 듯한 표정으로 욕실로 들어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식으로서 엄마에게 무언가 이기기 시작했던
어렸을 적 일들이 생각났다.
* * *
오랜 기억을 되살려보니 내가 엄마보다 키가 커진 때는 중학생이 되어서였다.
그때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크더니 영원히 엄마보다 작을 것만 같았던 키가
훌쩍 커버린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엄마보다 팔씨름도 세어지게 되었고
다른 힘에 있어서도 엄마를 앞질러 어느새 엄마가 들지 못하는 무거운 짐도 들게 되었다.
그것이 얼마 안된 일들인 것 만 같은데 어느덧 이제는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 되었으니
참으로 세월은 빠르기만 하다.
이 녀석 후연이도 하루가 다르게 커가며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나 아빠보다
더 뛰어나게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어렸을 적의 나와는 달리 이 녀석은 아마 고등학생쯤 되어야
팔씨름으로 엄마를 이길 것 같다.
그건 다 엄마 잘 못 만난 탓이다. 그리고 다른 것들도 하나둘씩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가위바위보는 이런 모든 것들의 시작일 뿐이다.
팔씨름이야 신체적인 우열로 승부가 가리워지지만 가위바위보란 다분히, 아니
모든 것이 다 운으로 결정되는 것 아닌가?
그러니 아들 후연이가 가위바위보를 해서 엄마를 이겼다는 이 시기는
이 녀석이 이제 사람으로 성장하는 시작이며 또한 커다란 전환기가 될 수도 있는 셈이었다.
“자, 후연아 그럼 아빠랑 가위바위보 하자!”
샤워를 마치고 방에 들어가 후연이에게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말을 건네니
이 녀석은 다른 말을 못알아 들어도 가위바위보라는 단어에는 눈을 반짝거리며
곧 가위바위보를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녀석의 폼은 상당히 도전적이었으며 가위바위보를 하려고 손을 뒤로 올리는 순간에도
많은 잔머리를 굴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가위바위보를 잔머리로 이겨보려는 생각은 지금의 나 또한 가끔씩 하게 되는 일이어서
이 아이에게 가위바위보를 가르쳐준 그 누군가도
그렇게 생각하는 표정으로 가위바위보를 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어린 아이로서는 당연히 지을 수 있는 표정이었다.
“가위 바위 보!!!!!”
“가위 바위 보!!!!!”
“가위 바위 보!!!!!”
“......”
* * *
가끔씩 아내를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한다.
아내라는 사람의 품성이 어떠하며 취향이 어떻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그저 무척이나 단순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첫번째로 떠오르게 된다.
단순한 정도도 사람 나름이겠지만 아내의 경우는 그 정도가 몹시도 심각하여
가끔씩 긴 한숨을 쉬게도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드는 또 하나의 느낌은 그런 아내의 성격이 세상을 복잡하게만 보는
나보다도 더 세상을 편하게 살아갈 것만 같다는 막연한 결론이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약간의 복잡함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더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
매사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현대의 사회적 현상에서 아직도 아내같은 사람이 주변에 있음을 확인한다는 사실은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단순한 성격도 요즘 같은 세상엔 장점일까?
아들 후연이와 가위바위보를 몇번 하고 나니
나도 아내처럼 세상을 조금 단순하게 보고 느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후연이는 가위바위보 할 때 가위만 낸다.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