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마누라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생일케이크

아하누가 2024. 7. 6. 01:39


 

“아, 예... 근데 아기가 몇 살이죠?”


 

아들 후연이가 태어난지 3년이 되는 날, 아내와 함께 집 근처 제과점에 갔다.
아기 생일이라며 앙증맞고 조그마한 케익을 하나 고르니 제과점 직원은
케이크에 꽂을 초를 준다며 아기가 몇살인지 묻고 있었다.
극히 정상적이며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질문을 받는 바로 그 순간
내 머리에는 너무도 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 * *

 


아내는 생일 케이크를 사러 가면 항상 생일을 맞는 사람의 나이를 59세라고 말한다.
특별히 ‘59’라는 숫자에 원한이 있다거나 또는 그 반대로
그 숫자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나이가 가장 초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숫자의 나이라는, 극히 속물적이면서도 평범한 생각 때문이다.
큰 걸로 다섯개, 작은 걸로 9개의 초를 주니 얼마나 알뜰하게 받는 셈인가.
물론 더 받으려면 69세라고 하던가, 또는 79세라고 하면 되겠지만 어쩐지 그 정도의 나이는
생일케이크에 촛불켜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아내의 생각이다.


따라서 아내는 59세라는 나이가 가장 생일 케이크와 잘 어울리는 최대치요 또한
케이크용 초를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적절한 나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언제든지 생일 케이크를 살 때면 반드시 59세라는 말을 반복하곤 했다.
얼핏 생각해도 초를 많이 받으려는 목적이라면 그 숫자의 나이는 아주
탁월한 결정인 셈이다.

 

난 가끔 그런 면에서 아내의 잔머리에 탄복을 하곤 한다.
그나마 같이 살았으니 나 또한 그 정도의 눈치가 생겼지, 눈치 없이 59세 라고 말하는
아내옆에서 ‘아버님은 61세 잖아?’ 라는 말을 혹시라도 했다가는
받아온 초에 불을 붙이고 에로영화 흉내는 비교 조차 안되게 허벅다리 한구석을
잔인하게 지져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런 아내가 이해가지 않았던 적도 없진 않았다.
케이크용 초를 더 많이 받아서 뭘 하려는 걸까?
정전 사태에 대비해서 미리 준비해 두려는 것은 아닐테고 그렇다고 가끔 밤에
촛불 켜놓고 분위기를 잡으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물론 아들 후연이에게 ‘형설지공’을 가르치려고 촛불을 켜놓고
책을 읽으려고 한 적도 없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아내에겐 그저 공짜로 주는 것은 한개라도 더 받으려고 한다는
힘센 마누라 특유의 본능적 정신자세만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조건 그냥 나눠주는 것은 그것이 몇개가 되든, 또는 쓸모가 있든 없든 받아 둔다.
그 집요함은 다른 누구와도 비교를 할 수 없는 정도여서
지나가는 길에 누군가 홍보용 티슈를 나누어 준다거나 또는 동네 수퍼에서 사은품으로
비닐랩을 나누어 줄 때면 10회 이상을 반복해서 왔다갔다 하곤 했다.


혹시 남들이 이 얘기를 들으면 어떻게 같은 자리를 10번 이상 지나다닐 수 있겠느냐는
의심을 할 수 있지만 이는 명확한 사실이며 또한 현실이다.
한번은 길을 걷다 외국 담배회사에서 홍보차 담배 두개피씩을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두개피를 받은 아내가 다시 돌아가더니 담배를 나누어주고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나 그거 20개피만 줘요”
“예?...아니 왜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묻는 담배 나눠주는 사람에게 아내는 너무도 당연한 듯 대꾸한다.

 

“아니, 그럼 내가 바쁜데 이길을 열번을 지나가야 겠어?”

 


* * *

 


그런 오랜 일들이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그려지면서 나는 아내의 지독한 살림 근성을
생각했고 또한 그 파렴치함을 생각했다.
설령 내가 사업을 크게 하더라도 홍보를 위해 길에서 무언가 공짜로 나누어주는
판촉행위를 하는 일은 절대 없으리라는 결심도 했고
그러면서도 왜 머리카락은 내가 빠지는지 알듯모를 의문도 들었다.
아무튼 좋다. 괜한 체면상 또는 성격성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을 못 얻고
나중에 아쉬운 느낌이 드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 아닌가?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그저 그런식의 긍정적인 해석으로 생각을 마무리 지으려는데
제과점 종업원이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아기가 몇살인데요?”


잠시 가졌던 오랜 생각을 접고 현실로 돌아오니 어느덧 아내는 늘 그랬던 모습으로
내 곁에 서있었다. 그리고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잔뜩 희망에 찬 미소를 짓더니
제과점 종업원에게 말했다.


 

“아기는 지금 36개월이에요.....”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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