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겆이 할래요? 아니면 방 청소 할래요?”
일요일 오후 모처럼 낮잠을 즐기려는데 성질 급한 아내가 청소기를 들고 들어와
양자택일을 요구하며 인상을 쓰고 있다.
개그맨들이 출연하는 데이트 프로그램의 ‘최후의 선택’ 시간도 아닌데
뭐 그리 대단한 선택의 기회를 주기라도 하는 것 처럼 기세가 등등하고 의기가 양양한 채로
서 있는 것이었다. 방송에 출연하면 출연료라도 주지, 이건 출연료는커녕
두 가지 다 노동력만 혹사해야 하는 불평등 선택이었다.
“그냥 두개 다 당신이 하면 안돼?”
몹시도 귀찮다는 듯이 대답을 했지만 방안의 분위기는 몹시도 강한 찬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이 바람은 열대 남국의 열기도 한방에 얼게 만들 것 같기도 했고
떡복이 먹고 흘리는 땀도 그 자리에서 얼어붙게 할 것만 같았다.
그런 분위기로 아내는 말을 이어갔다.
“그럼 나 혼자만 하라는 거예요?”
“그럼... 남자가 그런 일 하면 안돼...”
“허 기가 막히네... 왜 남자는 그런 일 하면 안된다는 거죠?”
아내는 흥분했다기 보다는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을 이어갔다.
물론 나 역시 옛날 어른들이 가지고 있던 가부장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진 않다.
다만 그런 작은 일들에 - 작다고 생각될 수도 있는 - 비중을 두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 생각에는 더 커다란 일을 못할 수도 있다는
전혀 근거없는 믿음도 있었고, 눈앞의 설겆이를 일단 피해보자는 영악함도 포함되어 있었다.
더욱이 최근 들어 TV를 볼 때마다 마치 매번 그러는양 설겆이를 하는 남편의 모습이
너무 자주 나와 은근히 불만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을 표현하기도 전에 아내의 말은 쏟아진다.
“아니, 생각을 해봐요. 나도 직장 다니지, 내가 후연이는 더 많이 보지,
그리고 밥도 많이 하고 청소도 내가 다 하지... 그럼 당신은 가정을 위해 뭘 해요!!!”
하긴 그렇다. 돈도 같이 벌고 사회 생활도 같이 하는데
집안 일마저 혼자서 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나름대로 이해가 충분히 가는 아내의 논리였다.
그러나 그런 논리에 순간적으로 대응하는 말초적 신경이 아주 발달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꾸했다.
“응? 나? 나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가정을 지키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런 상황에 그런 대답을 할 수 있는 나 자신의 놀라운 순발력에
스스로 감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얘기를 듣고 깊은 감동을 받을 줄 알았던 아내는
무언가 재미있는 코미디 프로라도 본양 호탕하게 웃어대며 비웃듯 혼자말을 했다.
‘음...외부의 적이라.... 외부의 적...’
그리고 여전히 찬바람이 불긴 했지만 별다른 다그침없이 순순히 설겆이와 방청소를 했다.
내가 아는 아내는 언제나 그런 식이다.
무언가 말을 할 때는 그것이 어떤 말이든 항상 비웃듯 듣거나 반박을 하지만
반드시 그 말은 꼭 기억하고 비교적 그대로 행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내의 성격은 그동안 남들보다 별 다툼 없이 지내온 가장 커다란 힘이었고
또한 가장의 권위를 그나마 세울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청소나 설겆이를 전혀 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다.
하긴 하되 집안 일 만큼이라도 기분이 내킬 때 하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나의 생각일 뿐이었고 생각난 김에 해치우지 못하면
아무 일도 못하는 것은 또한 아내의 성격이어서 가끔 그런 일로 다투기도 한다.
그 뒤로 그런 다툼이 있을 때면 ‘외부의 적’ 이론을 들먹이며
이에 대한 정당성을 찾곤 했다.
* * *
얼마전에 사회적으로 남자들의 군복무에 대한 가산점 문제 때문에 시끌시끌했다.
이를 보는 사회적 시각 또한 입장에 따라 다양하다.
그것이 상대적인 손해라는 여자들의 주장, 당연한 보상이라는 남자들의 시각,
그리고 여자도 군대에 보내야 한다는 극단적인 시각까지.
하지만 국가를 커다란 가정으로 본다면 남자와 여자의 역할은 분명 따로 있는 것 같다.
남녀의 평등이란 어느 경우에라도 존중되어야 함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지만
남녀의 기본적인 성적 구분마저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모호해져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나는 아내에게 자칭 감동적인 대꾸를 한 이후로 남자들의 군복무에 대한 가산점 문제를
반대하게 되었다. 외부의 적으로부터 가정을 지키는 일이 내가 주장하는 남자의 역할이라면
당연히 나라를 지키는 것도 남자들의 몫이란 생각이다.
물론 나라의 지키는 일이라는 것도 여러 가지 방법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지만
전쟁과 군대라는 내용으로 국한시키면 그 일에는 남자들이 적임이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남자들의 군복무에 대한 가산점은 이미 사회적인 인정으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군복무에 대한 혜택이 시간에 대한 보상이라면 모를까
역할에 대한 보상이라면 이미 그것에 대한 보상은 따로 주장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각자 맡은 일을 이행함에는 따로 보상이 필요없을 것 같다.
생각하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사고의 결론은 다를테지만 군대에 대한 생각은 그렇다.
따라서 군대를 모르는 여자들을 원망하거나 모른다고 무시해도 안된다.
오히려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군대를 안 가려고 하는 남자들이 더
문제가 있지 않을까.
외부의 적으로부터 가정을 지키는 일이 집안의 남자로서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한 것처럼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게다.
신문 지상을 통해 그리고 방송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대립을 관심있게 보다가
<힘센 마누라는 여자보다 아름답다>라는 비천한 글을 통해
조심스레 내 생각을 피력해본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