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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연예인

강원도 횡성 집 마당에 잔디를 심었다. 심은 잔디는 정성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방치 속에서도 꿋꿋이 잘 자라 어느 새 짧게 깎아야 할 때가 되었다. 일일이 노동력을 들여가며 낫으로 한자락씩 자르기엔 내 성의가 너무 부족하여 그나마 대량으로 벌초가 가능한 기구를 도입했다. 이른바 잔디깎는 기계다. 동력이 없으니 기계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고, 단지 바퀴가 달려 있어 밀고 다니면 잔디가 깎이는 도구다. 이러한 도구를 밀고 다니는 것은 영화속에서나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리는 것이어서 내심 기분이 좋아질 듯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잔디를 깎는 도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어서 영화속의 근사한 장면과는 전혀 가깝지 않았고 이 또한 낫으로 일일이 잔디를 깎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

하모니카

아무 생각없이 집안을 둘러보니 매우 고급스러워 보이는 하모니카 한개가 눈에 띈다. 어린이와 청소년 음악 교육에 관련된 사업을 하는 친구가 준 것인데 별로 그 용도를 발휘하지 못하고 단지 집안의 장식물로서, 또는 아이들의 관상용 교육도구로서만 존재를 확인하고 있는 불행한 하모니카다. 이 나이에 직접 하모니카를 불자니 조금 궁상맞아 보이고,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불기엔 하모니카는 아직 어려운 듯싶다. 아니, 컴퓨터 게임은 좋아해도 하모니카를 불어보려고 노력은 하지 않는게 현실이다.  사무실에 앉아 있다 문득 그 하모니카가 떠올라 인터넷으로 하모니카 홀더를 주문했다. 하모니카 홀더란 오래전 세상을 떠난 가수 김광석이 목에 걸고 키타치면서 노래도 부르던 바로 그것이다. 그나마 그렇게 부는 게 두손을 모으고 처..

나뭇가지의 교훈

강원도 횡성에 집을 짓고 주말마다 찾은 생활을 한지도 어느덧 일년이 지났다. 횡성에 가서 하는 일이란 계절마다 다르지만, 가장 많이 하는 일은 겨울에 난로에 지필 땔감을 준비하는 일이다. 간단한 것 같아도 몇 가지 과정이 있고 또 그것은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하니 결과물에 비해 작업량과 작업시간이 상당히 필요한 일이다.  산에서 주워온 나무를 쌓아두고 작은 가지는 작은 가지대로, 큰 나무는 톱으로 썰어 난로에 들어갈 크기로 맞추고 있었다. 밖에서 뛰어 놀던 두 아들이 다가와 묻는다.  "아버지, 그거 재미있어요?" 질문의 내용으로 보면 상당히 효자같지만 조금만 유심히 생각하면 마치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비아냥으로 들린다. 하긴 아이들 눈에 이런 일이 뭐가 재미있으랴. 그러니 아이들이 이렇게 묻..

맛있는 치약, 맛없는 치약

어느덧 큰아들 후연이는 우리 나이로 열살이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이제 옷도 갈아입을 줄 알고 혼자서 여기저기 잘 돌아다닐만한 나이다. 어느날 밤, 잠자리에 들기전 양치질하러 간다던 녀석이 화난 얼굴로 돌아왔다.  "이거 레몬맛 이상해요. 토할 것 같아요!" 손에 들고 있는 걸 보니 어린이용 치약이다. 보통때 쓰던 딸기맛이 아니었고 새로 산 연두색 레몬 맛이다.  "이런 맛도 있고 저런 맛도 있으니 이번엔 레몬맛으로 해보렴""싫어요. 맛이 이상하단 말이에요." 아이들은 원래 자신이 쓰던 것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강하다. 설령 그것보다 더 낫고 좋은 게 있을지라도 일단 고집을 부리게 마련이다. 이 늦은 시간에 다시 빨간색 딸기맛 치약을 사다줄 수는 없는 일이고, 무엇보다 아이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에..

투명인간

"아버지, 투명인간 쎄요?"   언제나 그렇듯 후연이는 새로운 형태의 캐릭터가 등장하면 그 주인공의 공격 및 제어 능력으로 그 특징을 가늠하려 한다. 이번엔 투명인간이다. 드디어 이 녀석이 공상과학 영화와 소설이 낳은 명품, 투명인간에 대해 알기 시작했다. 투명인간이라는 존재는 생활에서도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 뛰어난 응용력을 가졌으므로 누구나 한번쯤 상상하게 되는 고성능 캐릭터다. 녀석이 묻는 '세다'의 기준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몇 캐릭터의 공격 능력을 넘어서야 하고 생각치 못했던 가공할 방법의 무기나 공격 방법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 역시 녀석에게 장단을 맞추기 위해 엄청, 조금, 진짜, 대빵 등 다양한 부사를 동원하며 그 정도를 표현하곤 했다. 특히 어휘력의 한계로 인해 적절한 수식어를 찾지 못..

강아지 한마리

강원도에서 고기를 구워먹는데 뜬금없이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다. 발바리 새끼다. 어느 집에서 살았는지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살았던 듯 몸의 털도 뽀송뽀송하게 보이지만 그 반면에 두 눈은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인가가 밀집하지 않은 강원도 산골에서 이런 강아지는 보기 힘들다. 누가 키우던 거라면 그게 누군지, 누구네 집인지 금방 알 수 있는 작은 동네니 동네에서 나온 강아지는 분명 아니고 아마도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깜박 잊거나 또는 잃어버리고 간 모양이다.   굽던 고기 한 점을 건네주니 행여나 낯선 사람에게 잡힐세라 매우 조심스럽게 가져가 먼 구석으로 도망가더니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태어난지 그리 오래 되어 보이지 않는 이 강아지는 그때부터 그날 밤 내가 강원도를 떠나 서울로 올 때까지 따라다녔다...

아줌마와 아저씨, 그리고 바바리코트

사회 전반에서 아줌마들의 활발한 활동이 눈에 띈다. TV속에서 활동하는 연예인들도 그렇고, 주변만 들러보아도 경제활동을 하면서도 집안 일도 쑥쑥 잘 해결하는 아줌마들이 많아졌다. 어쩌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원래 아줌마라는 단어 속에는 강력한 내공을 담고 있지 않은가. 아줌마 -나는 이 단어를 예전부터 잘 알고 있다. 나이는 대략 중고생 자녀를 두었거나 혹은 그와 상응하는 나이이고 개인이나 혹은 가족의 이익을 위해서 체면 따위는 전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가 하면 미용실에 가는 돈을 매우 아깝게 생각한다는 공통적 특징을 안고 있다. 이런 아줌마들의 특징 때문에 한때는 사회적으로 누군가를 흉보는 대상의 대명사처럼 자리잡은 적도 있었지만 최근 들어 그러한 특징들이 놀라운..

16년의 달인

요즘 TV에서 하는 어떤 코미디 프로그램중에 '달인'이라는 코너가 있다. 한마디로 스스로 어떤 분야의 달인이라고 자찬하며 너스레를 떠는 내용인데,그 엉뚱함과 황당함이 제법 우습다. 나름대로 즐겨 보는 프로이기도 한데, 이 코너에는 재미있는 특징 한가지가 나온다. 달인이 되는, 즉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시점을 아주 명확하게 16년으로 규정한 것이다. 항상 시작 부분에서 달인을 소개할 때면 '16년간 무엇을 해오신....'이란 수식어로 소개하곤 하는 걸로 보아 적어도 이 코미디에서만은 16년이라는 시간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데 필요한 절대 시간인 셈이다. 그런데 이 16년이란 시간도 절대 시간이라고는 하나 나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은 상대적이다. 아마 32살이 된 사람이라면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정..

나 참 많이 늙었다

어느날 강원도에서 세수를 열심히 한 뒤 거울을 유심히 바라본 적이 있다. 사진 찍는 것은 좋아해도 사진찍히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터라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 본 적이 없는데 무심코 바라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란 그리 싱싱해보이지 않는다. 나이도 들만큼 들었고 세상도 살만큼 살았으니 그동안 살아온 흔적들이 얼굴에 나타나는 거라고 속편하게 해석할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그래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나이는 아닌 모양이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더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 인간 본연의 습성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얼굴이라는 거, 얼굴에서 드러나는 나이라는 거, 이거야 말로 세상에 피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매에 장사없고 술에 장사없다고 하는 것마냥 세월의 ..

투망의 철학

주말 마다 벌어지는 강원도 생활 중에 제일 재미있는 취미생활은 투망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일이다. 투망이란 문자 그대로 그물을 던져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말하는데 그 쏠쏠한 재미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흔히 시간가는 줄 모르는 놀이로 여러 가지를 꼽는다. 골프치는 사람들의 미칠듯한 중독성이 그것이고, 승마하는 사람들의 말타는 재미, 도끼자루 썩는줄도 모른다는 바둑의 재미 등이 그런 것들이다. 그런가 하면 전혀 바람직하진 않지만 도박에 빠진 사람들이 말하는 묘미와 중독성은 한술 더 떠 각종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 되기까지 한다. 이렇듯 중독에 가까운 묘미가 있는 놀이나 취미에는 저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희열이 있고 감동이 있으며, 특히 여기에 인생과 비교할 수 있는 철학이 빠져서는 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