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나 참 많이 늙었다

아하누가 2024. 7. 7. 00:59



어느날 강원도에서 세수를 열심히 한 뒤 거울을 유심히 바라본 적이 있다. 

사진 찍는 것은 좋아해도 사진찍히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터라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 본 적이 없는데 

무심코 바라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란 그리 싱싱해보이지 않는다. 

나이도 들만큼 들었고 세상도 살만큼 살았으니 

그동안 살아온 흔적들이 얼굴에 나타나는 거라고 속편하게 해석할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나이는 아닌 모양이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더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 인간 본연의 습성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얼굴이라는 거, 얼굴에서 드러나는 나이라는 거, 

이거야 말로 세상에 피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매에 장사없고 술에 장사없다고 하는 것마냥 세월의 흐름에 변하지 않는 얼굴 없고 

늙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차라리 나이에 어울리는 얼굴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는 말들을 

억지로라도 즐겨 사용해야 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오는 또 하나의 표현. 

얼굴에 드러난 나이보다 젊은 기분으로 사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자꾸만 기억해 내는 것이 거울보고 한숨 쉬는 것보다 훨씬 더 건강에 도움이 될 듯싶다. 

 

다행인지 불행진지 아직은 제법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산다고 자부하고 있고, 

그것이 사실이 아니든 혹은 나만의 착각이든 오래오래 지속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 듯싶다.

아직 영화도 보러가고 기타를 튕기기도 하고 여행에서도 뒷골목을 누빌 수 있으니 

얼굴에 쓰여진 나이보다 훨씬 젊게 사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러한 젊은 생각과 발상들이 시간이 더 지나면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날 테니 

지금 좀 늙어보인다고 실망하지 말고 하는 생활이나 곱게 유지하는 게

정신 건강에도 훨씬 좋을 듯했다. 

그런데 그것도 내 생각처럼 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 * *

 

마흔 네번째 생일이 지난 어느날.

집에 일찍 들어어와 있는데 아직 귀가 전인 아내에게 핸드폰 문자메시지가 왔다. 

 

"여보, 어디있어요? 보고싶어요. 호호호"

 

세월의 흐름을 역행하는 이 앙증맞은 아내의 표현에 감동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무심코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놈의 마누라가 뭘 잘못 먹었나.....?"

 

 

삼류 드라마에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대사는 너무나 명확하고 선명하게 하고 나니 

문득 강원도에서 거울로 바라본 내 얼굴이 생각났다. 

 

나, 참 많이 늙었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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