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투망의 철학

아하누가 2024. 7. 7. 00:58



주말 마다 벌어지는 강원도 생활 중에 제일 재미있는 취미생활은 

투망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일이다. 

투망이란 문자 그대로 그물을 던져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말하는데 

그 쏠쏠한 재미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흔히 시간가는 줄 모르는 놀이로 여러 가지를 꼽는다. 

골프치는 사람들의 미칠듯한 중독성이 그것이고, 

승마하는 사람들의 말타는 재미, 

도끼자루 썩는줄도 모른다는 바둑의 재미 등이 그런 것들이다. 

그런가 하면 전혀 바람직하진 않지만 도박에 빠진 사람들이 말하는 

묘미와 중독성은 한술 더 떠 각종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 되기까지 한다. 

이렇듯 중독에 가까운 묘미가 있는 놀이나 취미에는 

저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희열이 있고 감동이 있으며, 

특히 여기에 인생과 비교할 수 있는 철학이 빠져서는 곤란하다. 

 

 

투망은 한가로운 여름날 개울가에서 더위도 있고 

가족끼리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상당한 장점이 있다. 

환경오염이나 생태계 훼손 문제만 유의한다면 매우 즐거운 취미임에 분명하다. 

흔히 물고기를 잡는다는 개념에서 낚시와 비슷하게 생각될 지 모르나 

낚시와는 전혀 다르다. 

특히 낚시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투망’이란 취미는 

듣기조차 거북한 상극의 문화다. 

낚시광들에게 있어 그물을 던져서 물고기를 잡는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천박한 문화로 인식되어 있다. 

비록 극단적이 표현이긴 하나 천박하다는 표현까지 등장한 데는 

낚시가 가지는 철학적인 면에 비해 투망으로 물고기를 잡는 행위는 

전혀 철학적이지 않다는 것이 낚시광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강원도 시골에서 서너해 가량 투망을 하다 보니 

이 취미와 행위가 낚시광들이 말하는 것처럼 

전혀 삶의 철학이 없는 것도 아닌 듯싶다. 

 

 

* * *

 

 

투망은 무거운 추가 달린 원추형 그물을 이용해 

얕은 물에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가두는 방법을 이용한다. 

던지는 것도 잘 던져야 가장 커다란 면적을 이룬 그물을 

목표지점에 떨어뜨릴 수 있다. 

우선 손에 그물을 쥐는 파지법이 제일 중요한데, 

파지는 기본이 나눠잡기다. 

고수가 되면 한손잡기도 가능하나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 아니면 할 필요가 없다. 

던지는 방법도 어깨에 걸어 던지는 법과 팔꿈치에 걸어 던지는 방법이 있다. 

개인적으로 팔꿈치에 거는 방법을 이용하는데, 

숙달 정도에 따라 효과는 비슷하다. 

목표지점에 가장 커다란 면적으로 펼쳐진 그물을 떨어뜨리면 되는 것이니 

반복적으로 던지는 데 있어 체력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방법이라면 

어떤 방법도 무난하다. 

이처럼 방법은 매우 간단하지만 이것을 잘하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이 주의사항을 유심히 살펴보면 

다른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중요한 철학을 깨닫게 된다. 

 

 

그물을 던지기 위해선 처음 그물을 손에 잘 쥐어야 한다. 

이것은 당연히 기본이고 투망의 생명이다. 

던지는 재미에 빠져 손에 쥐는 과정을 소홀히 한다면 

절대로 그물이 똑바로 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과정이 상당히 귀찮다. 

그물만 잘 펴지게 던지면 고기를 낚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런 과정을 소홀히 하게 된다. 

 

그물은 던졌을 때 잘 펴질 수 있게 

처음에 손에 쥘 때 한가닥 한가닥 정성껏 쥐어야 한다. 

마음이 급해서 혹은 던지는 즐거움을 빨리 누리기 위해 

그물을 성의없이 쥔다면 절대로 그물은 잘 펴지며 날아가지 않는다. 

한번 던지고 나서 설령 물고기 한 마리도 안 잡혔더라도 

다시 세심하게 그물을 정비해야 한다. 이것도 기본이다. 

기본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처럼 중요한 교훈은 없다. 

 

그 다음엔 던져야 할 곳을 잘 파악하는 눈이 필요하다. 

이것은 주로 경험에 의해 이루어진다. 

투망은 물의 깊이와 흐름의 속도에 따라 

그물 끝에 매달린 추가 내려앉는 시간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으므로 

얕고 물이나 빠르지 않은 개울에서 던져야 한다. 

흔히 깊은 물에 큰 물고기가 살고 있다는 생각에 깊은 곳에 던져보기도 하지만 

추가 내려앉은 시간 동안 잡히기를 기다려줄 물고기는 없다. 

닭대가리라고 놀리며 모든 우둔함의 대명사로 각광(?)받는 

닭의 아이큐가 8이라고 한다. 

그리고 물고기의 아이큐는 이보다 훨씬 아래인 2 정도라지만 

아이큐 2의 지능은 상식보다 훨씬 우수하다. 

절대로 물고기는 그물이 가라앉는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니 욕심내지 말고 투망으로 잡을 수 있는 물고기만 잡아야 한다. 

욕심을 내지 않는다는 것은 투망에서 뿐만 아니라 

인생의 성공과정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필수사항이다. 

또한 물깊이가 발목과 무릎 근처에 머무는 얕은 물이라고 얕봐서는 안 된다. 

대부분 투망으로 잡는 물고기는 그런 물에서 잡힌다. 

투망으로 잡을 수 있는 가장 큰 물고기도 그런 상황에서 잡힌다. 

얕다고, 작다고, 또 짧다고 얕보면 안 된다. 

발목 깊이의 개울에서도 엄청난 크기의 물고기(투망으로 잡을 수 있는)가 잡힌다. 

깊은 물에만 큰 물고기가 있을 것 같은 이런 고정관념은 투망을 하다보면 

여지없이 무너진다. 고정관념을 깬다는 것, 대단한 성공의 열쇠 아닌가?

 

즐겁게 노는 것 같은 투망이지만 가만히 따지고 들어가면 

더없이 중요한 인생의 교훈을 전해준다. 

세상 모든 일에는 배울 점이 있게 마련이고 삶의 철학이 담겨 있는 것이다. 

 

* * *

 

올해 들어 처음으로 투망으로 물고기를 잡았다. 

투망을 잘하는 방법에 대한 인식도 점점 변했다. 

처음에는 투망을 효과적으로 잘 던져야 물고기가 잘 잡힌다고 생각했었다. 

멀리 날아가야 하고, 잘 펴져야 하며, 목표지점에 정확히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해를 넘기고 그런 기술적인 방법에 익숙해졌을 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물고기가 많이 사는 곳, 

즉 던져야 하는 포인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지난 생각이다. 

 

오랜만에 그물을 들고 개울에 나갔더니 

이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고기를 투망으로 가장 잘 잡는 사람은 

잘 던지는 사람도 아니고, 던져야 할 곳을 잘 찾는 사람도 아니었다. 

평소에 그물을 잘 관리해서 튼튼하고 빈틈없이 그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몇 번 그물을 던지고 개울속 돌맹이에 걸려 몇 군데 튿어진 그물 틈으로 

큰 물고기들이 빠져나가는 걸 확인하니 속이 다 쓰리다. 

인생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평소에 준비되어 있어 사람일 것이다. 

 

투망에도 교훈이 있고 철학이 있다. 

 

 

 

 

 

 

2007년 5월 24일. 

강원도 횡성 다락방에서. 노트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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