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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여

아침에 후배 직원이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하더니     이내 내게 말을 건넨다.         "음악 좋아하시죠? 이거 들어보실래요?"     "뭔데?"          "코나...라는 그룹 아세요?"     "코나?"          알긴 안다.     가수 이소라가 같은 소속사 가수라는 이유로     어느 노래인지 초반부에 이소라가 노래를 불렀던 곡도 알고,     내가 좋아하는 어느 팝송과 느낌이 비슷한 노래를 불러     특별히 기억에 남는 그룹이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잘 모른다.     후배가 틀어준 노래를 들어보니 제법 상큼한 느낌을 가진 노래였다.       "제목이 뭐래?"     "이거요?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요'요"                    제목을 ..

노자를 웃긴 남자

얼마 전 TV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끈도올 김용옥 교수의 노자 강의가 있다.매주 금요일 밤에 했는데 시간이 적당해서 잘 보던 TV프로그램이었다.         거침없는 화술은 물론 그전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동양철학을나름대로 알아듣기 쉽게 강의한다는데 흥미가 있었고그런대로 강의도 들을만 했다.모처럼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메시지 한 장만 달랑 남기고 도올은강의를 무작정 끝내버렸다.방송이라는 사정도 있고 개인의 사정도 있으니메시지에 적힌 내용말고도 속으로야 뭔 사정인들 있었을 테지.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동안 그 일은 마치 새까만 옛 일처럼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          *      ..

두 시간의 여행

우리나라 여성 듀엣 가수에 대해 요즘 생각이 많다.     워낙 먹고사는 일 하고 관련 없는 일에 신경을 유독 쓰는 성격이어서,      지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라는 특이한 소재가     정작 나 자신에게는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이상하게도 나는 남들이 별로 가지지 않은 부분에 관심이 많다.     범상치 않은 주제에 관심이 많다면 사람도 비범한 사람이 되어야     당연하겠지만 불행하게도 나 자신은 너무도 평범한 사람에 머물고 있어     얼핏 비범한 척 하는 자신이 가끔 불쌍하게 생각 들기도 하니     이 또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나라 여성듀엣 가수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우선 '듀엣의 대가' 은방울 자매로부터 이어져 온 '시스터스' 스타일과    ..

어느 커피숍의 창가

군대에서 제대하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을까.         바쁠 것도 없이 지내던 어느 여름이었는데 비가 많이 내렸다.     많이 내린 정도가 아니라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퍼부었다.     군대에 있을 때는 그런 비를 보며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커피숍의 창가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쳐다보면     매우 운치 있을 것이라는 앙증맞은 상상을 했었다.              지금이라면 비로 인해 또 다른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생기니     그런 상상이야 하지 않았겠지만 군대라는 폐쇄적 사회가 가져다주는     상상의 변화로 인해 아주 철없이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제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그때 역시 마찬가지여서     그런 생각을 아무 거리낌없이 하고 있었다.    ..

리메이크

1 ‘리바이벌’이란 말을 처음 듣게 된 것은어렸을 때 좋아하던 라디오의 팝송 프로그램이었습니다.좋아하던 몇 노래가 예전에 누가 부른 건데 누가 리바이벌 했다는 소리를듣게 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그래서 리바이벌이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훗날 시간이 많이 지나서 ‘맹구’로 이름을 날린 어떤 개그맨이‘난 목에 칼이 들어와도 리바이벌은 안해!’라는 말이 우스꽝스러운 몸짓이 나오는 코미디 프로를 통해 한동안 전국을 강타한유행어가 되기도 했습니다.그 프로를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열기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시간이 흘러 이번엔 ‘리메이크’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단순히 반복하는 리바이벌의 차원을 넘어약간의 수정 및 변형을 가미한 것 같았습니다.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리바이벌이란 말..

어느 병실의 코믹 잔혹극

1 김유철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이 친구는 매우 뛰어난 순발력과 출중한 재치로주위 친구들의 상상을 불허하는탁월한 발상을 자주 하던 인물이었습니다.오래전 김유철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친구를 문병간 적이 있었습니다.입원해 있던 친구는 큰 병은 아니었고교통사고에 따른 보험금 문제로 할 수 없이 입원해 있던 상태였습니다.따라서 문병이라는 말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게병실 분위기는 화기애애함이 지나쳐묘한 퇴폐적 분위기마저 흐르고 있었습니다.그런데 문제의 사건은 그 병실에서 시작됩니다.  2 입원해 있던 친구는 무척이나 겁이 많던 친구였습니다.특히 주사를 무서워 했습니다.당연히 링거주사도 맞기 싫어 했습니다.하지만 병원에 입원한 놈이 자기가 싫다는 이유로링거주사를 안 맞을 수 있나요?하는 수 없이 날라리 환자인 그 ..

수영장

"오늘 후연이 수영장 간데요.       수영복하고 간식 챙겼으니 빨리 데려가요!"      아직 잠이 덜 깨어 꿈인지 현실인지 비몽사몽중인데 출근하는 아내는     내게 이런 말을 던지고 사라졌다.         수영장?     벌써 수영장 갈 나이가 되었나?     후연이가 우리나이로야 6살이라곤 하지만 11월 26일생이니     한 살은 엉터리로 먹은 거고,     그러니 외국식으로 따지면 4살 8개월밖에 안되었는데 수영장을 간다니     기분이 야릇하다.     우선 수영장 갈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이 기분을 야릇하게 했고     또 한가지는 수영장에서 생길 수 있는 불의의 사고가     불현듯 떠오른 사실이었다. 잠이 확 달아났다.     머릿속으로 그려본 놀이방 지도선생 숫자와 학생수를     ..

요쿠르트와 독립기념일

아내보다 출퇴근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와     아침이면 큰아들 후연이를 놀이방에 데려다준다.     아침에 함께 하는 아들과의 이 시간은 매우 소중한 시간이어서     손을 꼭 잡고 거리를 걸으면 언제나 상쾌한 아침의 기분을 느끼곤 한다.           놀이방 가는 길 몇 군데에     둘이 흥겹게 장난치며 놀만한 이벤트를 만들어두어,     멀지 않은 길이지만 놀이방 가는 후연이가 지루하지 않게 해두었다.             맨홀 뚜껑을 둘이 깡총 뛰어 넘는 것도 그렇고     작은 냇가에 돌멩이 10개를 힘껏 던지며 가는 것도 그것이다.     그리고 중간에 작은 구멍가게에 들러 요구르트를 마시고     놀이방 50미터 전에서 달리기를 하는 것으로     놀이방 가는 즐거운 이벤트는 완벽하게 끝..

할아버지 할머니도 춤을 춰요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니     아내는 뭔가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생긴듯 얼른 내게     방안으로 들어오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방안에 들어가니 제법 볼만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둘째 아들 의연이가 드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들이, 어린 아이가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냐만     춤을 추고 있는 그 꼴을 보노라면 정말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상투적으로 잘 써오던 표현 중에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 같은 날은     우쭐한 마음에 이런 표현을 하곤 했다.     ‘오늘 밤 일기에 써야지....’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등..

원복

어느날 아침. 큰아이 유치원 보내려고 주섬주섬 옷을 입히는데     녀석은 잘하지도 못하는 말로 내게 말한다.     "오늘 원복 입고 가야 대에~"          태어난 지 4년하고 8개월 되었으니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말투며     발음이지만 이상하게도 '원복'이란 말은 몹시 선명하게 들렸다.     학'교' 학생이 교복을 입듯 유치'원' 어린이가 입어야 하는 것이     원복이라는 것을 잠시 생각하고야 알게 되었지만     우리 나이로 겨우 6살 아이가 말하기에는     제법 어려운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녀석은 유치원에서 라는 연극인지 인형극인지     무언가 보려고 가야 하는 날이었고,     일찍 출근한 아내가 코디해둔 의상은 분명 원복이 아니었는데     평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