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바이벌’이란 말을 처음 듣게 된 것은
어렸을 때 좋아하던 라디오의 팝송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좋아하던 몇 노래가 예전에 누가 부른 건데 누가 리바이벌 했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래서 리바이벌이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훗날 시간이 많이 지나서 ‘맹구’로 이름을 날린 어떤 개그맨이
‘난 목에 칼이 들어와도 리바이벌은 안해!’라는 말이
우스꽝스러운 몸짓이 나오는 코미디 프로를 통해 한동안 전국을 강타한
유행어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프로를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열기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시간이 흘러 이번엔 ‘리메이크’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반복하는 리바이벌의 차원을 넘어
약간의 수정 및 변형을 가미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리바이벌이란 말 대신 이 ‘리메이크’란 말이
비슷한 경우의 표현으로는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2
유머에도 리메이크가 있습니다.
분명히 언젠가 들었던 얘긴데, 또는 확실히 알고 있는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또 들어도 마냥 우스운 얘기들이 있습니다.
또한 그것은 말하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고, 말하는 주변 상황에따라
또 다른 느낌으로 웃음을 주곤했습니다.
역시 좋은 유머는 이렇게 생명력도 긴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몇년전 어느 통신사 유머란에서 있었던 생생한 실화입니다.
그 원문을 자세히 게재하는 것도 좋겠지만 어디까지나 주제가 리메이크인 만큼
변형적인 표현으로 그 때 사건을 다시 설명할까 합니다.
3
1998년 9월 30일. 유머란에 문제의 글이 하나 올라옵니다.
제목은 <국회의원과 개의 공통점>.
내용은 다소 억지가 있었지만 그런대로 수긍할만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소재야 있을 수 있는 일이려니 하며 지나가려는데
다음날 이에 반발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항의>라는 말머리로 올린 그 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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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들을 왜 개와 비교하십니까!! 개는 주인말이라도 잘듣지….
국회의원들은 주인(국민)말을 알아 듣지도 안잖아요!! 다음부턴 개하고 비교하지 마시길…
만약 비교하시려면… 쓰레기와 비교해보세요.. 그것도 폐기물 쓰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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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획기적인 글이었습니다. 획기적이다 못해 엽기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오히려 먼저 글보다 더 인기가 좋았고 추천도 더 많았습니다.
가만히 읽어보니 풍자도 더 강하고 유머다운 순발력도 매우 좋았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얘기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조금후에 이에 항의하는 다른 글이 올라왔습니다.
다음은 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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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체 무슨 말씀들이십니까? 개는 주인의 말을 잘 들으니 국회의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귀한 존재요, 쓰레기는 처리라도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국회의원들과는 비교함이 옳지 못합니다.
정히 비교를 하시고 싶으시다면 바퀴벌레는 어떠신지요?
잡아버리고 싶어도 더러워서 혹은 내 손에 때 묻을까봐 또는 다 잡았다 싶으면
다시 나타나는 바퀴벌레야말로
국회의원들과 비교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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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먼저 두글보다 더 반응이 좋았습니다.
쓰레기는 처리라도 하지만 국회의원은 그것도 못한다는,
유머 감각이 아주 돋보인 작품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보면서도 혀를 내두르며 감탄을 연발했지요.
그리고 나서 유머란은 커다란 돌풍에 휘말리게 됩니다.
아주 기발한 발상들이 연이어 나타나게 됩니다.
뒤이어 나온 말들을 조금 더 이어 보겠습니다.
- 아니? 국회의원을 바퀴벌레에 비교하시다니요?
바퀴벌레는 때려잡아 당분간 안보이게 할 수도 있지요.
그런 X같은 사람을 바퀴벌레에 비교하시다니요?
그 다음 글입니다.
- 아니? X이라니요? 비료에도 잘 쓰고 있는 X을 감히 국회의원 따위와 비교하시다니요?
이렇게 말꼬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져 갔습니다.
물론 아무 생각없이 지켜보면 그저 단순한 말장난이기도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정말 유머란 다운 발상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릴레이처럼 이어지는 이 논란에 몇명이 불만을 나타내긴 했지만 아주 수준높은 유머들을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어떤 분은 지겹다고 따지면서도 아예 한술 더 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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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은 잘못을 저지르신거 같습니다.. 아무리 유머란이 이렇다지만..
이곳에서마저 그런 입에 담지 못할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시다니.. 반성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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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머가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은 다시 들어도 웃을 수 있다는,
바로 리메이크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요즘도 가끔 오래전 게시판을 찾아가 그 글들을 다시 읽어보곤 합니다.
통신상의 글을 읽다 보면 가끔 불쾌한 느낌을 가지는 게시물들을 봅니다.
하지만 그런 글들은 모두 생명이 짧거나 또는 생명력이 없는 글이어서
다시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습니다.
결국 재미있는 웃음만 기억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나는 유머를 좋아하나 봅니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