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유철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매우 뛰어난 순발력과 출중한 재치로
주위 친구들의 상상을 불허하는
탁월한 발상을 자주 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오래전 김유철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친구를 문병간 적이 있었습니다.
입원해 있던 친구는 큰 병은 아니었고
교통사고에 따른 보험금 문제로 할 수 없이 입원해 있던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문병이라는 말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게
병실 분위기는 화기애애함이 지나쳐
묘한 퇴폐적 분위기마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사건은 그 병실에서 시작됩니다.
2
입원해 있던 친구는 무척이나 겁이 많던 친구였습니다.
특히 주사를 무서워 했습니다.
당연히 링거주사도 맞기 싫어 했습니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한 놈이 자기가 싫다는 이유로
링거주사를 안 맞을 수 있나요?
하는 수 없이 날라리 환자인 그 친구는 링거주사를 팔에 꼽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이때, 바로 이때. 김유철의 잔혹하고도 엽기적인 행동이 시작됩니다.
김유철이 환자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야! 너 그거 아니? 링거병에 든 주사약이 다 떨어지면 공기가 들어가거든?
그러면 사람에게 치명적이래.”
“야 임마! 그런게 어딨냐?”
“너 임마, 토끼공기주사 몰라?”
“......?”
여기서부터 김유철의 잔혹함은 시작됩니다.
김유철은 ‘토끼공기주사’라는 말도 안되는 신논리를 만들어
환자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김유철이 말하는 토끼공기주사라 함은
토끼에게 주사액이 들어있지 않은 주사기로 귓볼에
공기만 조금 주입시켜도 토끼가 괴성을 지르며 오도방정을 떨다가
비참하게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토끼가 죽어가는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했습니다.
쥐가 봤으면 무척이나 통쾌한 웃음을 지었을 것이고
정말 토끼가 봤어도 등골이 오싹했을 연기였습니다.
환자인 친구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조금씩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힐끔 곁눈질로 링거병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때 김유철은 한술 더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링거병이 높은 데 있을수록 압력이 높아져
공기가 몸으로 들어갈 확률이 높대....”
김유철의 부연 설명에
환자인 친구 녀석은 조금전에 못 믿어하던 표정은 이미 없어지고
얼른 링거병을 낮은 곳으로 내렸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링거병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아직도 한참이나 남아있는 주사액이
다 떨어지는 순간을 체크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의 얘기는 듣지도 않았습니다.
눈빛도 아까의 흔들리던 눈빛이 아니라 집요한 눈빛으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김유철이가 또 사고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너 링거주사를 잘 맞으려면 어떻게 하는지 알아?”
“뭔데?”
“잘 봐! 이렇게 하면 링거가 잘 들어간데....”
그리고 김유철은 링거병을 잡고 카리브해를 배경으로 나오는 한 영화 장면속의
술집 바텐더 같은 자세로 마치 칵테일이라도 만들듯
링거병을 ‘쉐이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한 노래도 흥얼거렸습니다. 제법 휴양지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누워있던 친구는 조금전의 집요한 눈빛은 어느덧 없어지고
벌겋게 충혈된 토끼눈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상황을 감지한 김유철은 더 광적으로 링거병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유철…아… 그만…하…지…”
팔에 링거주사를 꽂고 있는 친구는 자존심 문제로 강하게 말릴 수는 없었고
약간의 읍소와 처량한 모습을 섞어
김유철의 광기어린 행동을 중지시키려 했습니다.
“음… 그러지 뭐~”
김유철도 광기어린 행동을 중단하고
링거병을 링거병 거는 곳에 걸어두었습니다.
잠시의 광란이 지나고 병실에는 평화가 찾아오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3
링거병을 흔들다보니 병속의 주사액에 거품이 생겼습니다.
그리고는 그 거품중 한방울이 링거주사의 대롱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김유철의 ‘토끼공기주사’ 학문이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공기방울 하나가 대롱을 타고 내려오자 환자인 친구는 광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색이 된 얼굴로 잠시 어찌할 줄 모르는 행동을 보이다
급기야 팔에 꽂혀있는 주사바늘을 스스로 뽑아 버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었습니다.
팔에 꽂힌 주사기는 바늘에 한번 대롱에 한번 테이핑을 하는데
급한 나머지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뺀다는 것이
대롱을 잡아 당긴 것이었고,
따라서 주사바늘은 팔에 꽂혀 있고 작은 고무호스같은 대롱만
쏙 빠졌습니다.
그랬더니 혈관에 꽂아둔 주사바늘에서
피가 꺼구로 솟아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침대 시트 몇부분이 피로 얼룩졌습니다.
겁 많은 환자는 괴성을 지르며 병실을 뛰어 다녔습니다.
피는 점점 더 여러 군데로 튀었습니다.
흡사 조직폭력배의 보스가 입원한 병실에
반대파 조직들이 나타난 장면 같았습니다.
그리고 병실은 난리가 났습니다.
의사가 오고 간호사가 오고 사람들이 구경오고…….
결국 김유철은 국내 문병 사상 최초로 의사의 명령에 의해 문병을 금지 당하는
초유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4
그 코믹잔혹극을 만들어 낸 김유철은 아직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습니다.
주변에서 복수를 노리는 수많은 눈길 때문에 아프지도 못한답니다.
하지만 난 김유철이가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김유철 뿐만 아니라
주변의 친구들이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병원에 입원한다는 것은 참 슬픈 일입니다.
식구들도 걱정하고 자신에게도 의지력이 약해지니 말입니다.
더욱이 김유철 같은 친구도 있으니까요.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