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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잘 알고 지내는 오선생이 막 성인이 되었을 무렵의 일입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밤늦도록 술을 마시다가 급기야 기생집 또는 매미집, 또는
방석집이라고 불리우는,
숙박이 가능하고 고맙게도 술까지 따라주는 여자도 있는
술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스무살 남짓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돈이란
그 비싼 술값과 기타 용역에 대한
대가를 치루기는 너무도 모자랐습니다. 모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미 거나하게 술자리를 벌인 일행 4명이 머리를 모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술값에 대한 대안을 마련했는데,
그 대안이란 어느 한 사람이 볼모로 그 술집에 남고 다른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구해
볼모로 잡혀있는 친구를 구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 뛰어난 방법을 생각한 당시의 젊은이들은
3차전까지 가는 치열한 가위바위보 끝에
볼모 역할을 담당할 사람을 결정했고
세계 납치사에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자작 인질극을 시작했습니다.
결국 한 사람의 인질 아닌 인질이 술집에 남고 나머지 세 사람은
사방 팔방으로 돈을 구하려 다녔습니다.
하지만 돈은 쉽게 구해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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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결국 그 무리는 다시 그 술집에 찾아와 세계 인질극사에 길이 남을
또 한가지의 사건을 만들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인질을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비정한 자본주의의 시장 원리도 철저한 인간존엄적인 사고로 응용하여
유지될 수 있다는 전례를 보여준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즉 성과 중심의 테일러시스템을 극복함으로써 인간 중심의 관리방법도
술집 운영 시스템에 매우 적당하다는 실증을 가져다 주기도 하여
향후 술집 경영 방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인질로 잡혀들어간 사람이 인질범(?)들에게 고문이나, 사역 또는
비인간적인 취조 등을 겪는 것이 아니라
졸지에 인질범이 된 술집 아가씨들과 같이 식사하고 또 담소하고
심지어 주방일도 거들어주는 화목한 분위기 속에 하루를 보냈다니
철저한 인간 중심은 말할 것도 없고 이야말로 인질치고는 자진해서 할만한
인질인 셈이었습니다.
이 소문이 알려지면서 돈을 구하러 다녀야 할 임무를 가진 친구들이
돈을 구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어서 빨리 자신의 차례가 되어 인질로 들어가기를
희망하는 바람에 밥값을 감당하지 못한 술집 주인 아줌마가
사정을 하며 인질을 풀어주었다고 하니
이 또한 당시의 훈훈한 인정을 보여주는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주 가끔, 한번쯤 있을까 말까한 이런 인질극도
세상에는 있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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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볼 때도 그렇고 가끔 해외 뉴스를 통해서 인질극에 대한 얘기를
접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과연 인질극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그런 의문을 가진 이유는
인질극을 예방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인류애적인 의도는
전혀 아니었고 잘 연구하면 인질극으로 성공할 수 있을 수도 있다는
아주 사악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보아도 그 방법이란 뾰족하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일단 인질을 풀어줘야 돈을 받을테고,
아니 인질이야 나중에 풀어준다고 해도
돈을 받거나 요구사항을 해결하는 방법도 문제입니다.
일단 인질극이라 함은 경찰의 포위망에 갇힌 상태에서 인질로 겁을 줘서
요구사항을 말하는 것인데
일단 그곳을 빠져나가는게 문제 아니겠습니까?
자동차를 타고 도망가는건 우리나라 도로상황 및 교통문제로 보아
10킬로미터도 못가고 정체구간 때문에 잡힐 테고
헬기를 탄다고 해도 가야 어딜 가겠습니까?
비행기를 타고 가면 그나마 갈데가 있겠지만 그러면 인질극도
활주로가 있는 곳을 골라가며 해야 하니 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결국 인질극을 통해 인질범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인도에 데려가 달라는 것 밖에는 없는데
무인도 가서 뭐하며 또한 무인도야말로 독안에 든 쥐꼴이 아닙니까?
내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질극으로는
어떤 것도 얻을 수가 없다는 결론이었습니다.
더 이상 생각할게 없고 나올 방법이 없는 단순한 머리여서
한편으로는 몹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인질극을 생각하는 인질범들이 이 책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인질극들은 우스개에나 어울릴만한 소재를 제공하는 일로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