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긴 얘기

송선생의 인도여행

아하누가 2024. 5. 6. 21:11


1

 

얼마전 알게 된 송선생이 예전에 인도로 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입니다.
적잖은 나이의 송선생은 험난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홀로 외로운 일정을 강행하고 있었습니다.
말이 강행군이지 낯선 땅에서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아니나 다를까 처음의 계획과는 달리 송선생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한국 사람과 한국말이 그리워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한국식의 거나한 술자리가 그리워졌다는 얘기도 됩니다.
결국 가이드북을 보고 한국인들이 자주 모인다는 지역으로 행선지를 변경하여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를 얻어타고 싸구려 기차를 타고
무려 36시간이 걸려 이동을 했다니 술 한잔이 간절한 송선생의 의지도
보통은 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도착한 장소에 한국인은 없었고 끔찍한 소식만이 들려왔습니다.
그 끔찍한 소식이란 어제 모두들 새로운 행선지를 향해 떠났다는 얘기였습니다.
허탈한 송선생은 절망에 빠졌지만
불행중 다행히도 그곳에서 한국인 한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여행왔다가 그곳이 좋아 계획보다 더 오래 머물게 된 박선생이었습니다.
송선생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요.

마치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을 겁니다.


반갑게 만난 두 사람은 통성명과 신분 및 나이 확인 그리고 형, 동생으로,
시쳇말로 말을 까는 등등의 순수한 한국식 절차를 순식간에 마치고는
술을 마시러 술집에 가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송선생의 기행은 시작됩니다.

 

 


2

 

인도 사람들은 기후나 풍토 등의 특수한 환경으로 인해

술을 잘 마시지 못 한답니다.
기껏해야 맥주 한잔이 고작이라는데 아마 더운 나라의 환경상 많이 마셔도
좋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도대체 이런 나라에 술집이 어떻게 장사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송선생과 박선생이 찾아간 술집에는 건달 내지 깡패급으로 분류되는
인도 청년 세 사람이 이미 한쪽에 술판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말이 술판이지 그저 각자 맥주 한병씩 테이블에 올려놓고 있는 상태지요.
그러나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감히 ‘술’을 마시고 있다는 엄청난 자부심과
또한 동네 깡패다운 호기로

낮선 동양인의 등장을 가소로운 눈초리로 째려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자신이 서부영화에 나오는 악당이라도 된 양
테이블 위에 다리를 꼬아서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송선생과 박선생이 5병째 맥주를 주문하기 시작하면서
한쪽에 있던 인도 깡패들은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술집에 전시의 용도로만 진열되어 있던 양주를 달라고 하자
깡패들은 더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전에 다리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던 한 깡패는

슬그머니 다리를 내려 놓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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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왜 긴장을 하느냐? 이 문제는 이렇습니다.
세계 어느나라나 일어나는 공통적인 현상 때문입니다.
즉, 볼링장에 가면 볼링 잘 치는 사람이 짱이요, 나이트클럽에 가면 춤 잘 추는 사람이
짱이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술집에서는 술 잘 먹는 사람이 짱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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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들이 긴장하는 모습은 역력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더 황당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술에 대해선 ‘한 술’ 뜬다는 송선생과 박선생이
맥주잔에 양주와 맥주를 섞은 것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던 인도 깡패 세 사람은 차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한 사람은 오바이트를 하려는 자세를 잠시 취하기도 했습니다.
처음과는 달리 송선생과 박선생의 목소리가 그들보다 더 커져감에도
그들은 고개만 숙이고 있었습니다.
송선생이 맥주잔을 테이블에 내려도 그 소리에

모두들 움찔하는 동작을 보였습니다.

 

 

얘기는 간단히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 좋아하고 어울리기 좋아하는 송선생은 한쪽에 있던 깡패 하나를 불렀습니다.
쭈뼛거리며 다가온, 무리중에 대장격인듯한 깡패를 옆자리에 앉히고는
다정한 말투로 ‘프렌드’라는 단어를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무시무시한 폭탄주로 건배를 제의했답니다.
인도인인 지역 깡패는 갑자기 얼굴이 사색이 되었습니다.
자리를 옮기지도 못하고 방금 시집온 새색시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결국 입만 조금 대보고는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수근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말이 오갔답니다.

 


“저 시키들 분명히 오늘 죽던가 며칠간 못 일어 날꺼야...그치?”

 

 

 

3

 

송선생이 있던 그곳은 갠지즈강 유역으로 일출이 장관인 곳이었습니다.
그런 장관이 있는 곳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절대로 놓칠 리 없습니다.
다음날 새벽, 그곳에 정탐(?)나온 그 깡패들은

송선생과 박선생이 일출을 보러 나온 것을 보고

바로 아까 폭탄주에 쩔쩔매던 자신들의 보스에게 보고를 했답니다.

 

 

“형님, 저 놈들 아직 안 죽었는데요?”

 

 

그러자 보스가 말했습니다.

 

 

“일출보러 나왔을 뿐이야. 조금만 기다려봐!”

 

 

하지만 그날 저녁 깡패들은 아직 문도 열지 않은 술집 앞에서
문 열라며 술집 문을 두드리는 송선생을 목격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어젯밤에 양주 3병을 주문하고 갔다는

술집 주인의 말도 듣게 됩니다.

 

 


4

 

그날은 물론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송선생은 박선생과 함께
그 술집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술집이 문을 연 이래 한달 매상을 2일만에 올렸다는,
인도에서는 앞으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전설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후 그 깡패들은 우리식으로 번역하면
송선생을 ‘형님’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근처의 관광지도 안내하고 말동무도 해주었답니다.
며칠 뒤 송선생이 그 동네를 떠날 때도 그 깡패들은 자칫 있을 수도 있는
기차역 근처 불량배들의 접근에 대비해
기차역까지 20여대의 오토바이로 호위를 하며 환송했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술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나라 사람을 당할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게 무슨 자랑거리는 분명 아닙니다만

웬지 그런 얘기만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나 또한 우리나라 사람이기 때문일까요?

 

 

가끔 술 때문에 보기 싫은 장면이나 심하다 싶은 일이 생겨도 넓은 마음으로
눈감아 줍시다. 그게 가장 우리나라 사람 다우니까요.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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