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의 낮은 아름답다 46

시계

사무실 동료 중에 노총각이 있다. 노총각 정도가 아니라 남이 보면 재혼하는 것처럼 생각이 들 정도의 총각이다. 그런 그가 최근 들어 소개로 알게 되었다는 동갑내기 노처녀(그 여자도 대단한 노처녀인 셈이다)에게 연락이 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평소 그답지 않게 별로 적극적이지 않다. 상대가 맘에 안드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건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음은 분명했다. 관심은 없는 것 같은데 여자쪽에서 적극적인 듯한 인상을 주니 주변 사람들이 놀리는 목소리는 더욱 커진다. 전화만 한번 와도 '결혼 해야겠네' 라던가 '그냥 확 결혼해!~ 뭐 어때?' 등등 자신과 아무리 관련이 없는 남의 팔자 문제를 스스럼없이 말하곤 한다. 노총각 동료도 워낙 성격이 좋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니 ..

별명

거래처에 갔다.이런 저런 일을 보고 있는데 그곳에서 무슨 사고가 생긴 모양이었다.분주하고 급박한 모습으로 이리저리 뛰고 있는데 가만히 얘기를 들어보니얼마전 내 동료직원이 어디선가 보았다는 그것과 관련이 있었다. "그거 우리 직원이 용산에서 봤다는 데요?" 중요하면 알아서 새겨 들을테고 아니면 흘려 들을테니아무 부담없이 툭 내뱉은 말이었지만마치 메시아의 구원의 목소리로 들렸던지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된다.그리고는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라나?나야 뭐 어려울 것 하나 없는 일이고 몹시 아쉬워 하는 눈빛들을 보니그것도 참 재미있는 일이었다.그 사무실 전화를 써도 되지만 거만하게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사무실에 전화했다. "그래? 확실하지?" 전화를 마치니 아까보다 더 희망섞인 표정으로 모두들 내 입을 주시하고 ..

유난히 흥분을 잘하는 동료가 있다.오늘도 그는 무언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혼자 투덜거리고 있다. "아니, 이게 말이니 되는 겁니까?""뭔데 그래?" 관심을 아예 안 가지는 것이 편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더 큰 투덜거림이 나올까봐일단 대충 마무리하고자 하는 의미로 누군가가 대답했다.투덜맨의 얘기인즉, 안해도 되는 거래처의 일을 도와줬는데 고마워 하기는커녕아예 마무리까지 해달라는 얘기였다.그리고 그는 또 흥분했다. "이거 원....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보따리도 꺼내달라는 식이잖아"  그의 말이 맞다.안해도 되는 일이지만 서비스 정신으로 해줬더니거래처에서는 나머지 일까지 염치없게 부탁했다.하지만 세상 일에는 여러가기 '경우'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사회에서 일을 하다보면 자주 듣는 소리 중에 하나가..

까치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데 옆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던 선배가무슨 말을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무슨 말을 혼자서 중얼거리는지 가만히 들어보니 ‘까치, 까치, 까치....’를연신 반복하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어 소변기 앞을 보니조그마한 광고 스티커가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XX관광호텔 나이트 클럽 웨이터 까 치입구에서 찾으시면 남녀 부킹 책임 보장’--------------------------------------  그저 건물 화장실이라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고 스티커였지만선배는 뭐가 그리 관심이 많은지유심히 뚫어지도록 그것을 쳐다 보고 있는 것이었다.그렇다고 해서 그 선배가 나이트 클럽을 즐겨..

맞춤법

사무실에서 동료 몇명이 맞춤법 문제를 가지고 열띤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우리말을 똑바로 사용하자는 의미에서맞춤법을 가지고 설전을 벌인다는 사실은 무척 바람직한 일일 수 있으나그것도 어느 정도 기본적인 것을 가지고 설전을 벌어야지이건 초등학생도 알만한 내용을 가지고서로 자신의 말이 맞는다고 흥분하고 있는중이었다.  분쟁의 내용은 ‘~읍니다’가 맞느냐, ‘~습니다’ 맞느냐는,한마디로 어처구니 없는 내용을 가지고치고박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듣다 못해 중간에 끼어서 ‘~습니다’가 맞는 표기라고 말해주자‘습니다’쪽의 동료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이미 대세가 기울어진 ‘읍니다’파는 말도 안되는 생트집을 잡으며끝까지 포기의 의사를 비추지 않고 있었다. 그가 주장한 생트집은 ‘습니다’가 맞는다는 정확한..

이쑤시개 폭탄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하루에 한번씩 시간 맞춰 찾아오는       고민거리가 있으니 바로 점심식사 메뉴를 선택하는 문제다.       매일 그 시간이면 밖에서 식사를 해야 하니 그 음식이 그 음식이고,       어느 것을 골라도 성에 차지 않으며       입맛 또한 맞을 리 없으니 고민일 수밖에.                오늘도 거리의 음식점 간판을 번갈아 쳐다보며 적당한 집을 찾던중       오래전에 자주 가던 음식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한동안 잘 가던 곳이었는데 일년 정도 발길이 뚝 끊어진 집이었다.       바로 '이쑤시개 폭탄' 사건 때문이었다.                이쑤시개 폭탄!        말만 들어도 처참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그 이름도 얼마나 잔인한가. ..

국민감정

밤늦은 시간까지 급한 일을 마치려고 허둥대고 있었다.      옆자리의 동료직원은 뭐가 계속 불만인지      욕을 섞어가며 뭐라고 투덜거리고 있다.         "이거 이렇게 많은데 이게 여기 어떻게 다 들어가?"         계속 투덜거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일하는 내용중에 각 국가별 전화번호를 안내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정해진 지면은 너무 작고 담아야 할 내용은 너무 많았다.        "어디 보자.... 뭐 대충 필요한 나라만 골라내야 하지 않겠어?"       "어떤건 빼고 어떤 건 넣으라는 거야?"         동료는 아직도 불만이 많은지 계속 투덜거리고 있다.      늦은 시간까지 집에 못 가고 일해야 하니 짜증도 났을테고      날씨마저 올해 들어 가장 더운..

잠적

가끔씩 머리가 터질듯이 아픈 일이 생긴다.      그 일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손해와 이익이 오가는 일도 아니요      인간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애정과 증오의 갈등도 아니다.      그저 아무런 상관없는 일에 괜히 끼어들게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는 상황에 놓이는 일로,      가장 골치 아프고 짜증나며 속 뒤집어 진다.             잘 해결되어봐야 본전 그대로요 잘 해결되지 않으면      분명 잘못한 일도 없는데 엉뚱한 책임을 뒤집어 써야 하는 일이      되어 버린다. 정말 이럴 때 도망가고 싶다.            그럴 일이 눈앞에 펼쳐지자 무언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번뜩 떠 올랐다.          “이봐, 전화로 거기서..

과장님, 과장님

아침 일찍 시작해서 하루종일 거래처에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인연이 없는 관공서였지만 일을 하는데      장소 따질 일 있나. 그냥 하면 하는 거지.                   회의실에는 4명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3명은 이전에 본 사람들. 대장이 한사람 있었고 두 사람은 사무관,      나머지 한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준비해간 디자인 시안을 꺼내 이런 저런 설명을 하는데      그전 회의할 때 없었던 사람이 목소리를 높이며      몇 가지 트집을 잡고 있었다.      별로 트집 잡힐 부분이 아닌데 괜시리 불쾌한 생각이 들 그때였다.             "어허, 김과장 의견도 맞긴 한데 이거야 보는 사람마다 다르지 않나?"        ..

기억력의 대가

점심식사 전 핸드폰이 울린다.      걸어주는 이가 많지 않아 잘 울리지 않는 핸드폰인데      그나마 발신자를 보니 기억에도 없는 번호다.      대개 그런 전화인 경우는      뭐 사라거나 밀린 카드 값 빨리 내라는 전화밖에 없다.         "여보세요? 나 누군지 아슈?"         상대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또한 매우 싸가지 없다.      주로 그런 전화는 철저히 무시하는 성격이라 일방적으로 끊을 심산으로      매우 점잖게 대답했다.      그랬더니 다소 경직된 내 목소리에 조금 놀랐는지 순순히 정체를 밝힌다.         "나요, 나. 강부장!"       "......!"        한 10년전이었을까?      아니 5년은 분명 넘었고 10년이 채 되지 않은 오래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