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머리가 터질듯이 아픈 일이 생긴다.
그 일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손해와 이익이 오가는 일도 아니요
인간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애정과 증오의 갈등도 아니다.
그저 아무런 상관없는 일에 괜히 끼어들게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는 상황에 놓이는 일로,
가장 골치 아프고 짜증나며 속 뒤집어 진다.
잘 해결되어봐야 본전 그대로요 잘 해결되지 않으면
분명 잘못한 일도 없는데 엉뚱한 책임을 뒤집어 써야 하는 일이
되어 버린다. 정말 이럴 때 도망가고 싶다.
그럴 일이 눈앞에 펼쳐지자 무언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번뜩 떠 올랐다.
“이봐, 전화로 거기서 날 찾으면, 거기 알지? 골치 아픈데.
나 없다 그래 응? 아니, 없다는 정도로는 안되고
아예 ‘잠적’했다고 얘기해줘. 잠적, 그거 좋네”
내말을 듣던 후배직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는다.
“꼭 잠적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리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없다고 해요”
후배는 예리하게도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을 한번에 두가지나 했다.
하긴 뻔히 눈앞에 있는 사람을 없다고 말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 직원 또한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일에 얽히여
머리가 깨질듯한 고통을 맛보는데 일부러 동참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개인의 경우로 본다면 당하는 자기 자신의 머리가
가장 아프겠지만 지금의 사무실 상황으로 보면 아픈 것도 정도는
반드시 있게 마련이고 그 순위에 따라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냥 그렇게 좀 해줘 응?’
앞뒤 정황으로 미루어 후배직원은 자신이 이마저 거부할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아니면 불쌍한 놈 하나 도와주자고 생각했는지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미안하지만 한번만 도와주라. 너야 뭐 그 사람 볼일 있냐?
내가 괴로워서 그러지.
“그 대신 꼭 ‘잠적’이란 단어로 표현해야 해!”
자리에 없다는 것도 여러가지가 있다.
화장실 갔을 수도 있고 밥 먹으러 갔을 수도 있고
다른 일로 밖에서 업무를 볼 수도 있다.
그런 이유들은 전화를 안받는 이유중에 너무도 자연스럽지만
‘잠적’이라는 범상치 않은 단어를 굳이 고집하는 이유는
전화를 한 사람 때문에 당사자가 몹시 짜증을 내고있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뉘앙스 때문이었다.
그렇게 오묘한 뜻을 가진 ‘잠적’이란 단어를 생각해낸 자신이
스스로 대견하여 고개를 빳빳이 들었지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은 아직도 입이 한뼘이나 나온 후배직원 뿐이었다.
‘에라, 알아서 하겠지’
속편한 생각으로 사무실 구석에 있는 소파에 드러누웠다.
가끔 그런 액션도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하며
내게도 이런 고급 처세술을 이용할 줄 아는 잔대가리가 있다는 생각에
몹시 흐뭇해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벨이 울린다.
묘한 직감은 그 전화가 나를 찾는 전화라는 사실을,
그리고 내가 잠적해 있다고 대답해야 할 바로 그 전화라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고 있었다.
벌써 전화를 받은 후배직원 얼굴이 찌그러 진다. 거봐... 맞다니깐.
소파에 비스듬이 누어있는 나를 흘낏 쳐다보던 후배직원은 대화를 이어갔다.
“저기요.....”
그냥 한 호흡에 말해버리면 될 일을 후배는 당황했는지 아니면
긴장도를 높여 표현의 효과를 극대화 하려는지
잠시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후배의 말.
“지금 잠...들었는데요......”
. . . . . . . . . . .
앞으로는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연습을 시키기로 했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