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시작해서 하루종일 거래처에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인연이 없는 관공서였지만 일을 하는데
장소 따질 일 있나. 그냥 하면 하는 거지.
회의실에는 4명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3명은 이전에 본 사람들. 대장이 한사람 있었고 두 사람은 사무관,
나머지 한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준비해간 디자인 시안을 꺼내 이런 저런 설명을 하는데
그전 회의할 때 없었던 사람이 목소리를 높이며
몇 가지 트집을 잡고 있었다.
별로 트집 잡힐 부분이 아닌데 괜시리 불쾌한 생각이 들 그때였다.
"어허, 김과장 의견도 맞긴 한데 이거야 보는 사람마다 다르지 않나?"
그중에 제일 대장이 한 말이다.
비교적 회의를 생산적으로 진행하려는 모습으로 보아
대장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 것은 김과장이라는 호칭이었다.
가만있자?
그러니까 겨우 과장이 큰 소리를 친다 이거지?
나도 어디가면 과장 소린 안 듣네.
허허, 이거 말이지 여기 사무관들도 가만히 있는데 감히 과장이?
몹시 광분했다.
조금 전에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차분히 설명하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물에는 물, 불에는 불, 칼에는 칼, 컴에는 컴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으로 강경하게 대응했다.
이건 다 연구하고 조사한 과정을 거쳐서 나온 디자인이다.
지금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지 저것이 아니다.
그럼 이것도 저것도 안돼..... 라는 식으로 강경 단어들을 동원하며
유창한 설명을 일갈하고 있었다.
그 내용 중에는 다른 높은 분들도 가만히 있는데 감히 과장이 나서서
그러면 안된다는 준엄한 경고도 포함되어 있었다.
표현이 심하고 말투도 다소 흥분했는지 같이 자리한 옆자리 동료가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알아, 안다구. 하지만 이건 말도 안되는 경우니 말리지 말라구.
그리고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중간에 그만 두면 안돼!
되돌아온 과장의 질문에 아까보다 강경한 어조의 일장연설을
또 한번 시작했으며 내 말투에는 아까의 그것보다 더 거만함이
배어있었고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상대의 약한 모습을 본 터라 용기는 이미 백배해 있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말을 할 것 같은 비장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내 말에 순응해주는 사무관들과
대화를 이끌어 가려고 했다.
자리에 함께 한 대장의 중재로 회의는 끝나고 함께 간 동료와
건물 입구에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이봐, 김형! 뭐 믿고 그래?"
"아~ 아까? 뭘 믿긴 뭘 믿어. 다른 사람들은 가만 있는데
과장이 나서잖아. 그거 내가 그냥 못넘어가지"
그러자 동료는 매우 측은한 표정을 지으며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얼굴은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난민을 쳐다보는 눈빛과도
흡사했으며 홍수로 인해 물에 잠긴 집을 쳐다보는
이재민의 눈빛과도 흡사했다. 그 눈빛으로 동료는 말을 이었다.
"공무원은 과장이 캡이야. 다른 사람 아무 것도 아니라구.
여기서 과장이면 무시무시한 직책이여~"
".......?"
진작 말하지. 에구에구. 난 망했다. 과장이 그리 높은 직책이었나?
이를 어쩜 좋으냐.
잉잉~ 누가 나 좀 도와주~~~~~~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