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은 시간까지 급한 일을 마치려고 허둥대고 있었다.
옆자리의 동료직원은 뭐가 계속 불만인지
욕을 섞어가며 뭐라고 투덜거리고 있다.
"이거 이렇게 많은데 이게 여기 어떻게 다 들어가?"
계속 투덜거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일하는 내용중에 각 국가별 전화번호를 안내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정해진 지면은 너무 작고 담아야 할 내용은 너무 많았다.
"어디 보자.... 뭐 대충 필요한 나라만 골라내야 하지 않겠어?"
"어떤건 빼고 어떤 건 넣으라는 거야?"
동료는 아직도 불만이 많은지 계속 투덜거리고 있다.
늦은 시간까지 집에 못 가고 일해야 하니 짜증도 났을테고
날씨마저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이었다니
어쩌면 짜증내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해도 되겠지 뭐.
나라 이름이 생소할 정도면 빼도 되니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자네 기준으로 생소하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빼도록 해"
그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뭔 나라들이 그렇게 많은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나라 이름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런데 전화할 일 없으니 빼도 된다.
동료는 아직도 투덜거림이 멈추지 않은 채 이번에는 혼자말로
계속 그 투덜거림을 이어가며 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가이아나? 이거 빼! 아르메니아? 이건 또 뭐냐? 너도 빠져! ...."
혼자서 중얼거리며 일하던 동료는 어느 순간 갑자기 침묵에 빠졌다.
옆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그가 투덜거려야 하는 일률적인 박자가
잠시 멈춰짐으로 보아 뭔가 고민을 해야 할 만한 나라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네덜란드?"
한 박자가 지나 그가 조용히 중얼거린 나라 이름은 네덜란드였다.
그가 고민할 만한 이유는 아무데도 없는 완벽한 '주요국가'다.
그런데 왜 그는 그 대목에서 고민을 했을까?
네덜란드 여자를 사귀다 헤어졌나?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럼 갑자기 이준 열사가 생각났나? 물론 그럴 리도 없다.
그가 아무 말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시간은
내게도 많은 궁금증을 가져왔다.
왜 그는 주요국가의 해당여부에 있어 아무런 선택의 여지가 없는
나라인 네덜란드에서 고민할까?
잠시후 그는 아까보다 심한 욕설과 함께 단호한 결정을 내렸다.
"에이! 네덜란드도 빼!"
잠시 뒤에 나는 그 이유를 알고는 히죽 웃고 말았다.
단순한 일에서도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는 그는 참 단순하고 순진한 동료다.
그나 저나 히딩크가 잘해야 할텐데.......
아하누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네덜란드인인 히딩크가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으로 선임되고
몇번의 평가전에서 상당히 치욕스런 성적을 올린 당시였을 것 같다.
모두 알겠지만 이후 히딩크는 영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