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의 낮은 아름답다 46

피를 나눈 사람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한 어느 날 아침,일과에 들어가기 전 커피 한 잔 마시는 자리가 약간 소란스러웠다.무슨 일인가 했더니 전산과에 근무하는 한 여직원의 오빠가 백혈병에 걸렸다는안타까운 소식이었다. 모두들 이런저런 걱정 섞인 얘기로 안타까움을 주고 받다가 업무에 들어갔다.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후 업무를 시작하려는데 회사의 공식 협조 요청이전 부서에 내려왔다. 혈액형이 A형인 남자들의 도움을 바란다는,충분히 있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우선 A형인 사람들을 선별한 후 업무에 방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몇몇 사람들이먼저 병원으로 갔고 얼마 뒤 나를 포함한 6명이 2차로 병원을 가게 되었다.병원에서는 피를 꽤 뽑았다.그때까지 단 한 번도 헌혈을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참으로 새로운 경험이었는데…….  주사기로 약 ..

머릿말

출판사 편집부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그 회사에서 출판하는 책들은 일반 대중 서적이 아니라 학술 관련 서적이었기 때문에 교정을 보거나 편집을 하는 데 있어서 지루함을 쉽게 느끼곤 했다. 대부분의 책 제목이 ○○론이나 ××학이어서 업무가 쉽게 따분해지기도 하고 또한 많은 한자의 잦은 등장은 업무의 집중력을 자주 떨어지게 했다. 책의 편집이 거의 끝나갈 무렵 저자의 머리말이 도착했다. 평소에 우리가 책을 읽을 때는 머리말이라는 것을 잘 읽지 않은 채 본문부터 읽어 가는데, 편집을 하다보면 저자의 마지막 원고가 바로 이 머리말이어서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의 머리말이란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학술 서적답게 그 머리말 또한 딱딱하고 지루한 내용이어서 그리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은 없었다. 다만..

화류계의 거장

아침에 사무실로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손님이 왔다. 이런저런 얘기 중에 그 사람이 요즘 인터넷을 알게 되어 그 재미에 흠뻑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주변으로부터 일명 화류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사람으로, 인터넷이나 컴퓨터하고는 거리가 몹시 멀 것만 같은 사람이었는데 인터넷의 재미에 빠져있다니 새삼 놀랄 만한 일이었다. 정말 컴퓨터와 인터넷에 관심이 많았던지 컴퓨터를 보더니 평소에 궁금했던 여러 가지 궁금증을 한번에 쏟아 낸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문이나 질문 내용이 비교적 기초적인 것으로 보아 관심은 많고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여러 가지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이 아직 부족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는 사무실 컴퓨터를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다니던 중 그만 컴퓨터가 다운되고 말았다...

마이더스의 손

의뢰회사의 직원이 사무실에서 함께 일을 했다.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지고 있던 여직원이었다. 다만 신입사원이어서 의욕은 앞서고 업무능력은 따라주지 않아 가끔 실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로 실수하는 부분은 업무에 관련된 부분은 아니었고 또한 신입사원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부분으로, 그 여직원이 만지는 기계마다 고장을 일으킨다는 점이었다. 선풍기에 손을 대면 찌개 끓는 소리가 나고 컴퓨터로 일하면 여지없이 시스템이 다운되었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겠지만 그 일치점이 제법 평범하지 않아 모두들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또 그 여직원이 손댄 컴퓨터가 멈춰버리자 모두들 그 여직원을 신비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후 우리는 그를 이렇게 칭했다. "마이너스의 손" 아하누가

미들맨

의뢰 받은 일이 있어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분주하던 때였다. 여기저기 다니다가 그 일에 매우 적합한 느낌이 드는 어떤 회사를 알게 되었는데 사장이 인상과 느낌이 좋다. 모든 첫인상을 정확하지도 않은 스스로의 관상학에 의지하는 성격이고 보면 그 느낌은 매우 중요했다. 외국에 본사가 있어 영어를 한국말처럼 하는 사람이었는데 말끝마다 영어 단어가 많이 등장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지적 우월감을 과시하는 수준 낮은 예절을 가진 사람은 아닌 것 같았고 다만 그것이 생활화되어 말하기에 영어가 오히려 더 편하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러던 그 사람이 어떤 말인가 내게 한참을 설명하다 '미들맨'이란 단어를 썼다. 영어로 Middle Man 이라는 말인 것 같았지만 확실히 알 수가 없어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주차장에서 생긴 일

평소에 지하철을 타고 다니니 차를 타고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짐을 옮길 일이 있어 차를 가지고 출근했다. 차안에 약간의 짐을 둔 채 사무실 앞 주차장에 주차하곤 사무실에 올라가 일단 급한 일들을 처리했다. 그리고 나서야 차에 둔 짐이 생각나서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조금 전에 주차할 때와 다른 직원이 주차장을 관리하고 있었다. 차 키는 안에 꽂아 두었으니 성큼성큼 걸어가 짐을 꺼내는데 바뀐 큰 목소리로 직원이 소리친다. "그거 아저씨 차 맞아요?" "그럼 내차 맞지. 그리고 나 아저씨 아냐" 그럼 내 차니까 짐 꺼내지 다른 사람 차인데 내가 왜 짐을 꺼내나. 한눈에 보고 차 주인을 못 알아보는 걸 보니 그 직원도 주차장 직원으로 성공하긴 틀렸다. 그러나 자칫 주차장 직원으로 성공하지 않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