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동료 중에 노총각이 있다.
노총각 정도가 아니라 남이 보면 재혼하는 것처럼 생각이 들 정도의 총각이다.
그런 그가 최근 들어 소개로 알게 되었다는 동갑내기 노처녀(그 여자도 대단한
노처녀인 셈이다)에게 연락이 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평소 그답지 않게 별로 적극적이지 않다.
상대가 맘에 안드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건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음은 분명했다.
관심은 없는 것 같은데 여자쪽에서 적극적인 듯한 인상을 주니
주변 사람들이 놀리는 목소리는 더욱 커진다.
전화만 한번 와도 '결혼 해야겠네' 라던가 '그냥 확 결혼해!~ 뭐 어때?' 등등
자신과 아무리 관련이 없는 남의 팔자 문제를 스스럼없이 말하곤 한다.
노총각 동료도 워낙 성격이 좋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니 놀리는 말이어도
분위기는 늘 재미있고 유쾌하다.
그러던 오늘은 사무실로 문제의 여인으로부터 소포가 도착했다.
다들 궁금증에 못 이겨 포장을 뜯는 광경을 싸움 구경하는 것보다
더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포장을 풀자 안에 들어있던 고급(으로 보이는)시계가 나타났다.
한번씩 구경하고 돌아가며 차보기도 하면서 연신 '누구는 좋겠네'를 연발한다.
쑥스러운듯한 표정을 짓는 동료를 보며 그 놀림의 강도는 점점 심해져서
이미 모든 일이 다 끝난 사이처럼 확대되기 시작했다.
"에이~ 시계 하나 받은 거 가지고 뭘 그래요?"
동료가 별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하자
나를 비롯한 유부남 군단이 정색을 하며 반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에구 시계가 무슨 뜻인지 알고 그래? 나도 시계 받고 나서 같이 살잖아.
그게 결혼 시계였다나? 이래도 의미가 없어?"
한사람이 그럴듯한 반론을 역설했음에도 동료는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그래도 아무 의미없다며 쑥스러워 한다.
그러자 또 다른 누군가가 '코 꿴다'는 옛 속담과 결부시켜 상황을 확대해석하려 하자
동료는 '코꿰는' 일과는 전혀 무관하며
그렇게 확대해석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자 일명 코꿰론을 주장한 사람이 또 반론에 나섰다.
"아고... 이 사람아 그러니까 시계를 준다는 것은..음..........."
평범한 해설로는 자신의 주장을 설득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 코꿰맨은
잠시 적당한 표현을 찾는 듯 약간의 틈을 두었다.
그리고는 무엇을 발견한 듯한 밝은 표정으로 돌아와 말을 이어갔다.
"그게 시계가 아니고 수갑이여, 수갑......."
* * * *
표현은 멋졌지만 노총각은 어째 올해도 장가가긴 틀린 것 같다.
하긴, 장가를 누가 설득으로 가나. 팔자로 가는게지.
내년 월드컵엔 꼭 그 동료 부부와 동행할 수 있게 되길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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