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의 낮은 아름답다

까치

아하누가 2024. 6. 26. 00:19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데 옆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던 선배가
무슨 말을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혼자서 중얼거리는지 가만히 들어보니 ‘까치, 까치, 까치....’를
연신 반복하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어 소변기 앞을 보니
조그마한 광고 스티커가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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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관광호텔 나이트 클럽 웨이터 까 치
입구에서 찾으시면 남녀 부킹 책임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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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건물 화장실이라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고 스티커였지만
선배는 뭐가 그리 관심이 많은지

유심히 뚫어지도록 그것을 쳐다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선배가 나이트 클럽을 즐겨하는 성격은

더더욱 아니었기에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이었다.
한동안 생각하다가

무언가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그 선배의 성격을 생각해내고는
곧 잊어버리고말 것이라 여기며

나 또한 그 일을 쉽게 잊어버리려 하고 있었다.

 

 

 

                  *          *          *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한 친구의 결혼식 날이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랑측, 신부측 하객들이 어울려 자리하고 있었고
이제 막 부부가 된 사람들도

신혼여행이 다음날 아침으로 계획되어 있었기에
양측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있을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얘기로 자리를 즐기던 가운데

 갑자기 선배가 나이트클럽을 가자고 나섰다.
우리 모두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 선배를 쳐다 보았다.
나이트 클럽하고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았을뿐더러 자신이 직접 앞장서서
무슨 일을 하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던 까닭이었다.
일행 모두는 선배가 앞장선다는 사실이 궁금하기도 했고,
또한 마땅히 갈만한 곳도 없었기에

모두들 근처에 있던 XX관광나이트클럽을 찾게 되었다.
역시 그것도 그 선배가 앞장을 섰다.

 

입구에 이르자 검은 양복을 입은 커다란 덩치의 지배인인 듯한 사람이
우리 일행을 앞장서 가고 있던 선배에게 물었다.

 

 

“아시는 웨이터 있습니까?”

 

 

 

                  *          *          *

 

 

 

그렇다. 이제 알 것 같았다.
선배는 얼마전 화장실에서 본 광고 스티커를 기억해 낸 것이다.
저렇게 당당히 앞장을 서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선배는 기억력이 형편없다는
평소의 자신의 이미지를 이번 기회에 바꾸겠다는 듯
당찬 각오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곁눈질로 본 선배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당당했다.
평소처럼 뒷줄에 서서 남의 눈치보는 일도 없었으며

조그마한 결정도 망설임 없이 당당하게 내리고 있었다.

아마 선배는 오래전에 보아둔 화장실의 웨이터 광고 스티커를
기억해 낸 자신이 스스로도 감동적이였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의 그런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선배의 멋진 대답을 기대하고 있던 그 순간,

선배는 당당하다 못해 잔뜩 거드름까지
섞인 목소리로 아는 웨이터 있냐고 묻는 지배인인듯한 사람에게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야! ‘설날’ 나오라 그래!”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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