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의 낮은 아름답다

아하누가 2024. 7. 2. 01:15


 

유난히 흥분을 잘하는 동료가 있다.
오늘도 그는 무언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혼자 투덜거리고 있다.

 

"아니, 이게 말이니 되는 겁니까?"
"뭔데 그래?"

 

관심을 아예 안 가지는 것이 편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더 큰 투덜거림이 나올까봐
일단 대충 마무리하고자 하는 의미로 누군가가 대답했다.
투덜맨의 얘기인즉, 안해도 되는 거래처의 일을 도와줬는데 고마워 하기는커녕
아예 마무리까지 해달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는 또 흥분했다.

 

"이거 원....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보따리도 꺼내달라는 식이잖아"

 

 

그의 말이 맞다.
안해도 되는 일이지만 서비스 정신으로 해줬더니

거래처에서는 나머지 일까지 염치없게 부탁했다.

하지만 세상 일에는 여러가기 '경우'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사회에서 일을 하다보면 자주 듣는 소리 중에 하나가 '갑'과 '을'에 대한 구분인데
갑은 주로 일을 주문하는 부류, 즉 돈을 주는 분류의 성질이다.
당연히 을은 일을 받아서 하는 부류, 또는 일을 해주고 돈을 받는 성질이다.
제일 위의 갑과 제일 밑의 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업체는
갑과 을을 병행해야 정상이건만 어찌된 일인지 갑은 항상 갑이고
을은 항상 을인 것만 같다.
사람 위에 사람 없다지만 을 위에 분명 갑은 존재하기 마련인가 보다.

 

"그래서?"

 

흥분한 그에게 누군가 물었다.
그 물음은 그래서 니가 어쩔꺼냐는 질책도 포함되어 있었고
쓸데없는 생각말고 '갑'이 기분 나쁘지 않게 잘 하라는 무언의 지시도 있었다.

 

"어쩌긴 어째요? 그냥 못한다고 해야지. 내가 그런 것까지 해야 하나요?"

 

투덜맨은 여전히 특유의 투덜거림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주변의 사람들은 으레히 드는 생각이고 저 시간이 지나면
사회의 원리와 구조를 알게 될 것이라고 담담해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투덜맨이 섣부른 정의와 패기를 앞세워 섣불리 사회구조를 들먹이며
강한 반발을 하고 나설까봐 내심 불안한 마음이 교차되고 있었다.

마침 전화가 울린다.
투덜맨이 말한 그 거래처다. 전화를 바꿔든 투덜맨의 목소리를 모두 긴장하며 듣고 있다.
자칫 여기서 투덜맨이 실수라도 하면 거의 마쳐가고 있는 일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격이요 다 쓴 일기에 컴이 다운되는 경우다.
전화를 바꾸자마자 목소리가 달라진 투덜맨이 열변을 토한다.

 

 

"헤헤헤. 그럼요. 그거 마저 해드려야지요. 하하하. 아이고. 힘들긴요.
그런 일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는 김에 하나 더 해드릴까요?

예 걱정 마십시오. 즉시 작업에 들어가겠습니다......"

 

 

*********

 

 

"한번 뒤집어 엎는다며?"

 

 

모두들 그러리라 예상했지만 그래도 안도의 한숨을 한번씩 내쉰 뒤
예의 모습으로 돌아가 그전처럼 농을 건넸다. 머쓱하게 웃던 투덜맨이 정색을 하고 말한다.

 

 

"물에 빠진 사람이 갑이면 얼른 뛰어 들어서 보따리도 건져와야지요^^"

 

 

 

 

녀석.... 잘 살게다. 그나저나 나는 언제나 '갑' 해보나.

 

 

 

 

 

 

아하누가

요즘 갑, 을 관계가 사회 이슈로 등장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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