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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씨름

“어때? 내일 같이 갈 수 있겠어?” 부지런히 방바닥을 닦고 있는 아내에게 물었다.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아내는 어려울 것 없다는 투로 그러겠다고 한다. 내일은 회사에서 자전거 하이킹 가는 날이다. 회사의 공식적인 행사는 아니고 다만 내가 소속된 부서에서 공휴일을 이용해 통일로에 나가자는 것이었다. 모이는 장소인 구파발은 우리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어서 어렵지 않게 갈 수 있기에 신혼인 나는 부부 동반으로 가려는 것이다. 내일 행사를 준비하다가 문득 아내가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는 금방 심각해졌다. 분명히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할 텐데 걱정이다. 그 육중한 몸무게를 어떻게 감당하며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준단 말인가? 몸무게 40㎏의 미모의 20세 아가씨가 아닌 이상 그건 불가능..

자동차를 처음 사던 날

“정말 창문은 자동으로 열리는 거죠?” 나만의 자동차를 계약하던 역사적인 날, 나는 별다른 조건도 묻지 않은 채 자동차 회사 영업 사원에게 이렇게 물었다. 대다수 사람들에겐 자동차를 선택하는 일반적인 기준이 있겠지만 나에게는 남들과 다른 쓰라린 과거가 하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씩은 그런 생각을 하듯이 나 역시 내 자동차를 가지고 싶었다. 사무실에서 업무용으로 오며 가며 아주 가끔씩 운전 연습 삼아 타던 차가 있긴 했지만 내 소유가 아니어서 정작 중요할 때는 이용을 못하는 커다란 불편함이 자꾸 신경쓰였다. 뿐만 아니라 그 차에는 또 하나의 커다란 단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창문이 손잡이를 돌려야 열리고 닫힌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그 자동차를 타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그 장치는 불편하기..

골목길의 참변

아침부터 뭔가 불길한 예감에 사로 잡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불상사를 피하고자 서둘러 일을 마치고 집에 일찍 들어왔다. 아침에 세수를 하고 오랜만에 거울을 들여다 보다가 벽면의 타일에 금이 간 것을 보고 하루 종일 느낌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아침에 깨진 그릇이나 유리 종류를 보면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공통적으로 느끼는 불안한 것이니까. 세수하려고 욕실에 들어서니 아침의 일이 또 생각났다. 다시 한번 금이 간 문제의 욕실의 벽면 타일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아침에는 안경을 벗고 있어서 잘 몰랐지만 자세히 보니 세로로 금이 간 타일의 가운데에는 모기 한마리가 죽은 채 이미 화석처럼 굳어버려 있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죽은 모양으로 보아 빠른 속도의 타격과 충격에 의한 ..

조건반사와 무조건반사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어찌된 일인지 나는 항상 욕실에서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빨래통에 넣는 것이 아니라 변기를 향해 던져버리는 것이다. 그것도 가끔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하루도 빠짐없이 벌어지는 일일 행사다. 외부 자극에 의한 사람의 반응에는 세 가지의 일차적인 반응이 있다 한다. 무릎을 때리면 발길질을 하는 무조건반사와 먹을 것을 보고 침을 흘리는 조건반사, 그리고 밥 먹을 때마다 종소리를 들은 강아지가 종소리만 듣고도 밥을 주려는 줄 알고 꼬리를 미친듯이 흔들어대는 학습이란 것이 있다. 그러니까 평소 나의 행동을 자세히 구별해 보면, 지하철에서 조금 예쁘다 싶은 여자가 서 있으면 어느새 그 옆 자리로 자리가 옮겨져 있는 것은 먹을 것을 보고 침을 흘리는 것과 같은 조건반사임이 틀림없고, 술..

마루타

오랜 시간의 비행을 거쳐 드디어 아프리카에 도착했다. 내 여행 계획으로는 50대가 되어서야 갈 수 있을 것만 같던 아프리카에 예상보다 훨씬 일찍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케냐의 대평원 한복판에서 뛰어다니는 기린과 사자, 그리고 좧동물의 왕국좩을 통해 미리 익혀 두었던 하이에나와 코요테, 톰슨 가젤 등을 직접 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과는 달리 전혀 즐겁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행하고 떨어져 홀로 아프리카 초원의 미아가 되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코끼리 떼가 몰려온다. 황급히 자리를 옮기던 나는 마치 예정된 순서의 영화 장면처럼 발목을 다쳐 꼼짝없이 누워 있게 되고 그 위로 거대한 코끼리 한 마리가 지나간다. 코끼리 발이 내 배 위로 올라온다. 숨이 막힌다. 몸이 터져 버릴 것 같다. 이대로 죽을 ..

피서지에서 생긴 일

“여보! 빨리 서둘러야 한번이라도 더 타욧!” 아내는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동네 놀이터에 놀러 나온 애들처럼 뛰어 다닌다. 여름 휴가를 맞아 모처럼 식구들이(식구라고 해야 아내와 나 그리고 젖먹이 아들 녀석뿐이지만) 강원도 홍천에 있는 스키장을 찾았다. 높은 산에 눈이 시원하게 쌓여 있는 모습을 보려는 나의 바람은 비참하게 깨어졌다. 눈이 없었던 것이다. 스키장이란 곳은 눈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뿌린다기에 계절에 관계없이 스키장에 가면 당연히 눈이 있으리라는 나의 우매함이 한편으론 에디슨이나 뉴튼에 버금가는 천재적인 사고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니 곧 창피함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름철엔 스키 대회가 없었다는 기억이 선명하게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내에게 미리 말하지 않은 ..

가득찬 밥상은 빈상보다 아름답다

“여보! 빨리 저녁 드세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에 들어온 어느 날 저녁,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저녁을 먹으란다. 보통 때와 달리 왜 이리 호들갑을 떠는지 이유를 물었더니 맛있는 디저트를 준비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제로 먹이다시피 두 공기를 먹게 하고는 디저트를 내온다.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쳐다보다가 난 그만 실색을 하고 말았다. 디저트는 과일도 아이스크림도 아닌, 국내 모든 요식업소에서도 디저트로는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냉면이었다. 그것도 분식점에 가면 세 그릇 정도를 만들 수 있는 양의. 잠깐 아내의 식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내는 힘이 센 만큼 음식도 무척 많이 먹는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만큼의 양을. 언젠가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 1개, 리브샌드 1개, 해시 포테..

말못하는 아기의 곤욕

“아니,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에 화들짝 놀라며 아내에게 물었다. “보면 몰라요? 아기 그네 태우잖아요?” “그래도 그렇게 세게 흔들면 어떻게?” “뭐가요? 아기는 좋아하고 있는데…….” 어린 자녀가 있는 집에는 대부분 방문 양쪽 벽에 고정시켜 매달아 놓은 어린아이용 그네가 있다. 우리 집에도 그네가 있어 아직 돌이 되지 않은 어린아이를 돌보기에 아주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힘센 마누라가 흔들어주는 그네는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천장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일 정도로 앞뒤로 흔들리는 폭과 속도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마치 놀이공원에서 볼 수 있는 바이킹과 청룡열차를 섞어 놓은 탄력과 파워라고나 할까? 바이킹이나 청룡열차는 직접 타지 ..

성공한 테러는 정당화 될 수 있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전혀 못 마신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술과 거리가 멀다. 힘센 아내는 그런 내가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답답한지 가끔씩 술 얘기를 하곤 한다. 나 역시 혹시나 술도 한잔 못하는 소심한 사람이라는 소릴 들을까 봐 술은 안 마셔도 술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너그러운 것처럼 말하고 또 행동하곤 했다. * * * 직장에 다니는 아내가 어느날 자정이 가까워서야 집에 들어왔다. 회사에서 회식을 했다는데 상태를 보니 어지간히 마신 모양이었다. 연락도 없이 늦은 데다 술까지 잔뜩 마시고 들어온 아내를 보니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쉽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평소에 늘 여자라고 직장에서 술자리에 빠지지 말고 회식 자리가 있으면 2차, 3차라도 끝까지 남자 사원들하고 자리를..

올림픽의 비극

나에게는 힘센 아내가 있다. 키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조금 크고 덩치는 보통의 사람들 보다 많이 나가고 손발의 크기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엄청나게 크며, 거기에서 비롯된 힘은 보통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7.2Kg 용량의 세탁기를 가볍게 들어 옮기며 3단 서랍장을 이방 저방으로 옮겨 놓는다(참고로 우리집의 사랍장은 서랍이 빠지지 않는 슬라이딩 방식이다). 게다가 어느 누구와 싸움을 해도 지지않는 깡다구마저 있으니 그 능력은 신비하고도 놀라울 따름이다. 다만 그것이 우리 가계에 도움이 될 경우에는 더없이 좋은 아내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지만 나와 적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간혹 끔찍한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 * * 몇 해 전인가. 올림픽 열기가 한창인 일요일이었다. 매주 일요일이면 아침에 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