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마누라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골목길의 참변

아하누가 2024. 2. 21. 19:52

 

  아침부터 뭔가 불길한 예감에 사로 잡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불상사를 피하고자 서둘러 일을 마치고 집에 일찍 들어왔다.
  아침에 세수를 하고 오랜만에 거울을 들여다 보다가
  벽면의 타일에 금이 간 것을 보고 하루 종일 느낌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아침에 깨진 그릇이나 유리 종류를 보면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공통적으로 느끼는 불안한 것이니까.

 

 

  세수하려고 욕실에 들어서니 아침의 일이 또 생각났다.
  다시 한번 금이 간 문제의 욕실의 벽면 타일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아침에는 안경을 벗고 있어서 잘 몰랐지만 자세히 보니
  세로로 금이 간 타일의 가운데에는 모기 한마리가 죽은 채 이미 화석처럼
  굳어버려 있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죽은 모양으로 보아

  빠른 속도의 타격과 충격에 의한 뇌진탕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강한 힘에 못이겨 벽의 타일과 함께 압사한 것이 분명했다.
  죽은 모양이 하도 이상하여 나는 신문지를 몇번 둘둘 말아
  힘껏 벽을 내려 쳐 보았지만 얍삽한 소리만 내며 벽면을 튕길 뿐이지
  타일이 금이 갈만한 충격을 줄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잡지를 한권 말아서 내리쳐 보았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전화기로 내려쳐 보았다. 전화기만 깨졌다.
  그렇다고 망치로 내려쳤을 리도 없고.

  그렇다면 이는 분명 누군가가 무지막지한 손바닥으로

  잠시 앉아서 휴식을 취하던 모기를 가차없이 누르듯이 내려쳤다는 얘긴데.
  혹시 우리 아들 녀석이? 

 

 


  아니다. 절대 그럴리 없다. 아들 녀석은 아직 걷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아~ 그렇다! 나는 알지 말아도 될 것을 아무데도 쓸데없는 유추를 통해서
  기어이 알고야 말았던 것이다.
  모기를 향해 힘껏 내려친 힘으로 욕실의 벽면 타일에 금이 가게 할 사람은
  집안에 한사람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아내가 가진 힘이란

  무거운 것을 드는 것 뿐이라 생각을 했었는데.
  그날은 유난히 아내의 힘 자랑을 두려워 해야 했다.

 

 

 


               *          *          *

 

 

 

 

  밤이다.

  우리 집의 안방은 창문이 골목쪽으로 있어

  골목길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소리가
  듣기 싫어도 잘 들리게 되어 있다.
  골목길은 제법 으슥하여

  그런 곳을 좋아하는 데이트족들이 가끔 오기도 해서
  나는 항상 창문 밖의 상황에 민감하게 귀를 기울이곤 한다. 

 

 


  그러나 그렇게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가끔씩 문제가 생기기도 하는데…….
  그 문제란 바로 그 골목길이 술 한잔씩 걸친 사람들이

  볼 일을 해결하기에도
  매우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사방의 주변경계가 산만하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행여나 지나가는 행인이 쳐다보아도

  주요 신체 부위를 노출시키지 않도록
  주변의 조명을 최대한 이롭게 활용할 수 있으며,
  또한 자리잡고 있는 위치의 지형 지물이 다양하여

  소음을 최대한 줄이는 동시에
  벽을 튕겨 나오는 반사 작용을 가장 무력화할 수 있는

  각도를 잡을 수 있으며,
  흘러가는 물줄기의 흐름이

  발바닥을 지나지 않는 바닥의 고저 상태까지 마련된
  천혜의 지형으로 그 위치는

  바로 아내가 잠을 자는 머리 맡이였던 것이다.

 

 

  제법 밤이 깊어서 이제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인데도

  바깥은 소란스러웠다.
  나는 조금씩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술 한잔 걸친 사람들이 실례할 때는 엄청나게 중얼거리기 때문에
  그 소리에 잠든 아내가 깰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아내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잠에서 깰 경우 괴성과 함께
  엄청나게 포악해지는 심각한 증세가 있었고

  나는 이를 여러번 보았기 때문이다. 

 

 


  창문을 꼭 닫고 커튼도 쳤지만

  그 소음들을 막는다는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그날따라 여러 손님(?)들이 그곳을 거치고 있었고
  나의 눈물 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잠에서 깬 아내는 몇번인가 모른 척 하려다가
  드디어 몸을 일으켜

  다음 행동을 취할 자세를 갖추고 있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모른척 하려던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괜히 나서서

  술취한 사람들에게 봉변을 당할 아내가 걱정되었던 것이 아니라
  손도 쓸 수 없는 무방비 상태에서 망신을 당하고 심지어
  병원에 실려갈지도 모르는 그 손님들이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아내는 방문을 나섰지만
  나는 생각처럼 빨리 말리진 못했다.

  괜히 엉뚱한 화살을 맞기 싫어서다.
  하지만 저녁에 본 모기 시체의 흉칙함을 곧 생각해 내고는
  아내가 나선 방문을 나 역시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흥분해 있는 아내를 진정시키기 시작했고 몇번의 설득 끝에
  결국 아내는 내 의사를 받아들이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인내력으로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난 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몇 가정의 평화를 지키게 해주신데에 감사를 드린다고.
  또한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일이라는 생각도 밤새 들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몇번을 생각해도 그 다음에 벌어졌을 일이 너무도 끔찍하게만 여겨져
  쉽게 잠에 빠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방을 뛰쳐나간 아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뜨거운 물을 끓이는 일이었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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