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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시상영, 그리고 비디오

누구나 한 때는 영화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시기가 있다.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여서 기성세대의 한켠으로 다가서기 전에는영화에 많은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물론 유명한 감독이 되어보겠다는 생각이나 또는멋진 영화 주인공이 되어보겠다는,무리하고도 발칙한 발상은 시작도 한 적이 없었고다만 무언가 멋있는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을 뿐이었다.돌이켜보면 꽤 오랜 일이다.              *          *          *  군에서 제대하고 얼마되지 않은 무렵, 이른 아침부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영화보러 가자는 얘기였는데 아침에 가야 500원이라도 싸게 본다는 것이그 친구의 설명이었다.그에 대해 나는 ‘백수가 아침 일찍 하루 일과를 시작하면하루가 무척 길다’는 백수 입장의 의견을 ..

어느 추석 밤에 생긴 일

1추석이다.남들은 귀향이다 관광이다 여러모로 바쁜 때지만친척도 거의 없고 가족들도 먼 나라에 살고 있는 입장에서는그리 분주할 것도 없다.더욱이 유일한 방문지가 될 처가집이라고 해야 바로 위층이니이거야말로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는 처량한 신세가 아닌가? 사정이 이렇게 되다 보니 매년 명절이면고향가는 길이 20시간도 넘게 걸렸다는 주위 사람의 얘기가인디아나 존스가 탐험을 하는 듯한 동경의 세계로 들려질 정도여서이게 행복한 건지 아니면 몹시도 불행한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정말로 20시간이 걸려 고향에 다녀온 사람이 이 얘기를 듣는다면‘네가 죽든 내가 죽든 한번 집 바꿔서 살아보자’며 눈을 부라리겠지만딱히 잘한 것도 없는 내 입장이니 맞짱을 뜰 수는 없고....  올 추석도 그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집에서..

어느 빵집

오래전 집 근처에 빵집이 하나 생겼다. ‘빠리..’로 시작하는 이 빵집은이름만 들어도 모두들 알만한 꽤 유명한 체인점이었다.빵을 유난히 좋아하는 식성 때문에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늘 그곳에 들러조금이던 많던 자주 빵을 사곤 했었다.이름에 ‘빠리...’가 들어간다는 비애국적 명칭에 대한 양심적 가책을국제화가 필요하다는발전적 사고로 전환시키며 그 집을 늘 애용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IMF가 터져국가적으로 커다란 경제적 위기에 몰리게 되고갑자기 범사회적으로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운동이 일어났으며,또한 각 기업들도애국심에 호소하는 상품들을 앞다퉈 내놓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때 그 빵집에도 눈에 띠는 현수막이 하나 걸려 있었다.하얀 천에 여러가지 빵으로 태극기 모양을 만들어 인쇄한 광고로밑에는 선명하게 ‘빠리..

텅빈 운동장

새 천년 첫 설날 연휴의 마지막 날 아침.마침 일요일이어서 늘 하던대로 축구하러 집을 나섰다.간밤에 눈이 너무 많이 온데다명절기간이어서 상식적으로는 축구하러 가지 못함이당연한데도 무리해서 집을 나선데는 이유가 있다.연휴 2일간 하루 평균 20시간을 방바닥에 누워 있었더니방바닥이 몸인지 몸이 방바닥인지 구분이 가지 않게 되어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혹시나 운동장을 찾았지만 예상했던대로 텅빈 운동장은아무도 밟지 않은 설경을 뽐내며 나를 맞아주었다.하긴 어느 미친 놈이 저렇게 많은 눈이 오는 것을 알면서축구하러 나왔겠는가.그래도 혹시나 같은 팀 동료들이 올 지 모른다는 희망 섞인 생각으로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잘 쌓여진 눈에 제법 습기마저 적당히 있어 눈사람은 잘 만들어졌다.하지만 그런..

야설

얼마 전 친구 한 녀석이 사무실에 찾아왔다.       친한 친구라 주변 눈치볼 것도 없이 성큼성큼 들어와 한자리 차지하고 앉는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녀석답지 않게 슬금슬금 눈치를 보기       시작하더니 이내 한참이나 참고 있었던 듯한 말문을 연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녀석의 얘기는 이렇다.              녀석은 성경험과 관련된 진솔한 얘기를 나누는 사이트에 가입했다고 한다.       일단 거기까지 얘기를 들은 나는 조금의 틈도 없이 대꾸했다.             "주소 불러!"                녀석이 불러준 주소로 간 뒤 로그인을 하니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었다.       비교적 민망스러운 듯한 내용도 서슴없이 ..

주변환경에 의한 수면시간 조절법

잠을 잔다는 것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본성이어서      잠에 대한 갈망은 누구에게나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정신이 멀쩡한 시간에 그런 얘기를 하거나 들으면      얼핏 이해가 되지 않지만 잠이 쏟아지는 늦은 밤 무렵이나      또는 잠에서 깨어야 할 아침 무렵이면 잠의 욕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처절하고 잔인한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렇듯 잠이라는 것은 날마다 반복되는 욕망의 연속이지만,      나이가 점점 들어갈수록 그 욕망을 채우기에는      너무도 열악해진 주변환경을 깨닫게 된다.      잠이란 것은 육체적, 정신적 피로도에 따라 다르지만 주변환경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주변이 잠자기에 적합하면 잠도 잘 오는 법이고      ..

화장실과 핸드폰

"응...괜찮아, 지금 회의 준비하는 중이라 시간 있어~"                갑자기 이게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오후에 사무실 화장실에 앉아 행복한 시간을 보내려는데     옆 칸에 자리잡은 놈이 전화기에 대고 하는 소리다.               요즘 핸드폰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똥 사는 상황에서도     핸드폰으로 통화를 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도 각박하게 느껴졌다.     그것만해도 이미 불쾌한 기분인데     전화 내용을 들어보니(원치 않아도 들릴 수밖에 없다) 그 내용 또한     몹시 가증스러운 것이라,     똥 싸는 놈이 회의고 뭐고 마치 화장실에서 똥 싸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식적인 말투가 몹시 귀에 거슬렸다.     모처럼 행복하게 똥을 싸야 하는 시간..

추위가 싫은 남자

사람마다 체질적인 특징이 있게 마련이다.     굳이 사상의학이라던가 또는 다른 의학적 부연 설명을     곁들이지 않더라도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다는 것은 모두 다 아는 얘기다.     이렇게 모두가 아는 얘기를 거창하게 서두에 끄집어 낸 것은     유난히 주위를 싫어하는 나의 체질적 특징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나는 추위를 몹시 탄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게 무엇이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단호한 목소리로 '추위'라고 한다.     그렇다.     추위는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추위를 얼마나 타기에 이렇듯 오도방정을 떨고 있는지     그간의 행적을 더듬어 보자.     글의 특징에 어울리게 일기 형식으로 정리해본다.   ..

영어회화

스무살 때나 지금이나 계속 주변에서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단어 하나가 바로 '영어회화'다.     내 또래의 사람들이라면 테이프 한질 산적 없는 사람이 없을테고,     학원에 등록 한번 안한 사람이 있으랴.     남의 말인데로 열심히 목숨 걸 듯 배워야 함이 안타깝다.     하지만 그것도 수 차례 과열되고 너도나도 하고 있고     또 여기저기서 '영어회화'라는 단어가 들려오고 반복되니까     안 그래도 될 일이 더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쉽게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인데     주변에서 '쉽게 배우는 영어회화' 류의 제목들이 범람하니     오히려 시작부터 주눅이 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문득 영어회화 책을 읽다 좋은 문장이 있어 소개한다.    ..

모포터는 소리, 휴일이 가는 소리

군대에서도 일기를 쓰게 한다.     부대마다 그 정도는 다르지만 내가 생활하던 부대에서는     이라는, 문맥도 안 맞는 것 같고     군인다운 유치함이 철철 넘치는 제목의 일기를 쓰도록 했다.     가끔 내무검사 때나 일석점호 시간에 검사를 하기도 해서     생활하는 부대원들에게는 여간 골치 덩어리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부대원들은 내무반 책장에 꽂혀있는 이라는     문고판 책을 순서대로 베꼈으며     그것도 하기 귀찮을 때에는 노래가사를 적곤 했다.     하지만 군대에서 시간 때우기에 좋은 것을 찾던 내 입장은     제법 다른 일에 비해 취향도 맞고 하기도 어렵지 않은 일 같아     제대로 된 일기를 부지런히 썼다.              하루가 가는 의미도 있었고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