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되셨나요?"
"?"
뭔 준비?
촬영에 들어가게 되면 계획은 일단 무시된다. 큰 계획만 존재하고 나머지 촬영은 그때 그때 상황을 보며 멋진 그림이 나올지 제작진의 감각으로 판단한다.
이번 방송의 첫번째 테마는 활화산으로 유명한 '마욘산' 등정이었다. 이것은 큰 프로젝트여서 치밀한 기획과 준비가 필요했다. 이틀 후에 출발하기로 잠정 계획하고 그 이전에 필요한 영상으로 모으고 작은 에피소드들을 촬영한다.
화산 지형을 둘러보는데 강가에서 사람들이 강 모래를 퍼내고 있었다.
들소를 이용해 모래를 퍼올리는 작업에 뛰어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강물은 바닥이 전혀 보이지 않는 먹물 색이고, 주변 냄새로 썩 좋지는 않다. 아마 저기에 들어가면 며칠간 온몸이 간지러울 것만 같았다. 어지간하면 안들어가고 버티려고 했는데 이미 카메라맨은 이런 내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발을 신은 채 물속에 들어가 있다.
시키는대로 강물에 뛰어들어 모래퍼내는 작업에 동참했다. 생판 처음본 외국인이 옷도 안벗고 뛰어들어 옆에서 일을 돕고 있으니 일하던 사람들도 황당했을 게다.
"몸개그 한번 하셔야죠?"
사전 미팅 때부터 만나서 이제는 제법 친해진 PD의 농담같은 지시다. 일 돕는 척하다 과감하게(?) 물에 빠졌다. 상당히 뛰어난 연기력이라고 스스로 감동했는데, 이후 방송에 보니 예상치 못한 나의 몸개그를 카메라맨이 놓쳐서 반쪽 짜리 연기가 되고 말았다. 이럴 때는 참 아쉽다.
때아닌 목욕이다. 원치않는 강물의 목욕이다. 그것도 커다란 소와 함께 하는 목욕이다.
다음날 화산 등정을 앞두고 가벼운 몸풀기 정도로 생각하며 촬영에 임했다.
내일이 걱정이다.
2015년 9월. EBS 세계테마기행 촬영중. 필리핀 루손섬 남부 마욘산 부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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