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테마기행 촬영 에피소드

EPISODE-03_드론이 날아오른다!

아하누가 2024. 7. 9. 23:42


"얼른 돌아오세요!"

"빨리 뛰세요!"

 

멀리서 스탭들의 아우성이 들려온다. 등산 가방에 등산 모자를 쓰고 한가하게 관광지를 걷던 나는 육군훈련소 선착순마냥 정신없이 뛰어간다. 

촬영 현장의 생생한 모습이다. 

 

 

* * *

 

 

촬영이 시작되면 다양한 장비가 동원된다. 이중에 제일 흥미롭고 모양새 나는 것이 항공촬영기(드론)이다. 방송촬영용으로 사용되는 드론은 크기도 상당히 크고 소리도 크게 난다. 소리가 요란하니 촬영만 시작되면 동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모여 든다. 촬영비용 내라는 동네 자치단체도 있다. 시골일수록 시장바닥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찍은 화면은 방송을 통해 전해진다. 방송에서 보면 근사해보이고 뭔가 멌있어 보인다. 그래서 요즘 방송에 드론이 빠지면 왠지 섭섭할 정도다. 

그럼 드론으로 촬영하는 장면에 출연하는 사람의 입장은 어떨까?

 

항공촬영용 드론은 그 크기와 무게 때문에 오랫동안 비행할 수 없다. 고작 10분 남짓이다. 여기에 몇가지 조정과 세팅이 필요하니 실제 촬영 시간은 더 줄어든다. 날씨의 영향도 상당히 많이 받는다. 따라서 짧은 시간에 원하는 장면을 잡아야 하니 실수없이 진행해야 하고 이에 따른 긴장감은 더 늘어난다. 부상의 위험도 있다. 실제로 촬영 10여일이 지났을 무렵 운전을 담당했던 현지코디가 드론 날개에 뒤통수를 살짝 스쳤는데 무려 30여 바늘을 꿰매는 치료를 받기도 했다. 

 

드론이 하늘을 날기 시작하면 스탭들은 긴장한다. 출연자도 마찬가지다. 주로 멋진 풍광에서 걸어가는 장면을 찍을 때 사용하는데, 출연자는 멋진 모습으로 걷다가 스탭의 CUT 사인이 들리면 우사인 볼트 처럼 원래 자리로 뛰어와야 한다. 그래야 드론이 떠 있는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촬영할 수 있다. 화면으로 볼 때는 여유롭고 한가로운 발걸음으로 보이지만 그 화면 밖에는 궁상맞게 헐떡이며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이 숨어있다. 스탭들과 거리가 멀어지면 사인이 전달되지 않아 정처없이 걸어간 적도 있다. 드론이 떠 있으니 뒤돌아볼 수도 없고 어색한 동작을 취할 수도 없으니 무조건 걷는 수밖에. 드론 소리가 사라지고 잠잠해지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다본다. 이미 지나치게 많이 걸어서 아무도 안보일 때도 있다. 난감해진다. 

 

촬영을 마치고 밤이 되면 스탭들은 그날 촬영한 내용을 모니터하고 백업을 받아둔다. 가끔 출연자도 함께 보면서 다음 촬영에 대한 회의를 할 때도 있다. 이때마다 항공촬영 부분이 참 인상적이다. 방송용 화면으로 보기에는 멀쩡히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CUT 싸인과 함께 부리나케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내 모습이 생생하게 찍혀있다. 이걸 방송하는게 더 재밌을 거라는 농담에 스탭들과 함께 큰 소리로 웃곤 했다. 

 

그리고 나는 방송을 보면서 근사하게 걸어가는 내 모습에 남모를 웃음을 짓곤 했다. 

 

 

2015년 9월 <EBS 세계테마기행> 촬영중

 

마욘산 화산을 등정하기전 드론으로 촬영한 장면. 노란 바지가 내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