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테마기행 촬영 에피소드

EPISODE-01_모자가 잘 어울립니다!

아하누가 2024. 7. 9. 23:34


<EBS 세계테마기행> 첫 촬영이 시작됐다. 

방송출연은 처음이라 사뭇 긴장됐고,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침착하자는 다짐을 몇번씩 반복했다. 그래도 카메라 앞에 서면 익숙치 않은 것이 일반인들의 똑같은 심정일 듯싶다. 

몇번의 카메라 세팅을 마치고 담당 PD는 내게 몇가지 주의사항을 줬다.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하라는 말을 반복했다. 주의사항을 되새기기도 힘든 상황에 자연스럽게 하라는, 당치도 않은 주문까지 더해지니 머릿속은 복잡했다. 

 

내게 제시한 첫번째 대사를 소화했다. 나름 훌륭하게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PD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카메라 감독과 모니터를 보며 심각하게 회의중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겐 길게만 느껴진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PD가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선생님, 모자가 참 잘 어울리시는 데요?"

"......?"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PD는 내게 등산용 모자를 써줄 것을 완곡하게 요구했고, 하라는대로 해야 했던 초보 방송인은 이후 촬영 내내 모자를 쓰고 다녀야 했다. 

잠시 쉬었다가 촬영이 다시 시작될 즈음이면 '촬영시작'이라는 구호 대신 촬영감독에게 외치는 PD의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오곤 했다. 

 

"선생님 모자 드려라!"

 

두번째 방송, 수영하다가 머리에 쓴 두건이 홀랑 벗겨지는 장면을 제외하곤 일정 내내 모자 쓴 모습으로 방송됐다. 

 

이렇게 <세계테마기행> 필리핀 루손섬 종단 편 촬영이 시작했다. 

 

 

2015년 9월. 필리핀 루손섬 남부 <레가스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