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면 간혹 물고기를 잡거나 사냥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정말 실제로 잡는 건지 궁금할 때가 있다. 진짜는 어떨까?
사냥 장면이 매우 중요한 방송이라면 당연히 실제 상황으로 촬영하겠지만, 단지 다른 주제 속에 지나가는 장면이라면 실제로 잡는 장면을 촬영하기란 매우 힘들다.
일단 사냥이라는 것이 잡혀야 잡히는 것이니 시간 예측이 너무 힘들고, 날씨와 지형 등 변수가 많아 예상대로 되는 경우가 드물다. 분명 조금 전까지 잘 잡히던 물고기도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지기 일수다. 그래서 대부분 미리 잡은 사냥감을 '잡은 척'하는 걸로 대체하는 경우가 잦다. 알고나면 조금 싱겁겠지만, 뻔뻔한 거짓말은 아니고 실제로 잡은 것이거나 실제 잡히는 것이니 배신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마욘산 등정을 앞두고 화산지형을 둘러보던 중 화산재 가득한 시커먼 강물에서 낚시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죽음의 땅으로 보이던 강물에 생물이 산다는 스토리 만들기 좋은 상황이었으니 제작진은 얼른 내게 낚시를 같이 하라고 권했다. 얼른 다가갔다. 그저 낚시도 한다는 장면을 보여주려는 의도였고, 마침 잡아둔 물고기도 있었으니 적당한 그림이 나왔다. 세계테마기행의 컨셉대로 나는 당연히 낚시대를 빼앗듯 받아서 낚시하는 시늉을 했고, 카메라 감독은 열심히 찍고 있었다. 낚시라곤 해본적이 없고 이런 열악한 도구와 조건에서 어느 멍청한 물고기가 내게 잡히겠나 싶었다.
그런데 정말 입질이 왔다. 조심스럽게 끌어당기니 작은 물고기 한마리가 낚시줄에 딸려왔다. 정말 멍청한 물고기거나 눈이 먼 물고기인 듯싶었다. 카메라 감독도 흥분해서 한발 더 다가와 근접촬영을 시작했고, 방송용 멘트를 해야 하는 나는 그만 흥분한 나머지 잔뜩 상기된 얼굴로 크게 외쳤다.
"이건 실제 상황입니다!~"
방송을 본 사람들은 저 멘트가 뭘 의미하는 지 몰랐을 것이다. 연출하지 않고 실제로 벌어진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첫번째 사냥에 리얼상황에 성공한 나는 무언가 잡는 일, 그리고 그것을 촬영하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후 나는 박쥐, 게, 참치잡이에 나서게 되지만 시쳇말로 '개고생'만 하게 된다.
EBS 세계테마기행 촬영중
2015년 9월. 필리핀 루손섬 남부 레가스피
실제 물고기를 잡았다고 지나치게 흥분했다. 방송에서도 실제상황을 두어번 강조했으니까. (EBS 세계테마기행 방영 장면 캡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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