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가장 극한 환경에서 가장 처절하게 일하는 직업은 무엇일까?
직업별로 각각 애로점이 있으니 어떤 직업이 제일 어렵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해본 세계에서는 방송 카메라맨이 가장 극한 직업일 듯싶다.
이 사람들, 정말 극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고 그러면서도 또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정적이다. 출연자 입장에서는 힘들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몸을 불사른다. 가끔 촬영 중 물에 들어가야 하는 순간이 있다. 피디는 물속에 빠지길 요구하고, 출연자인 나는 다른 일정을 고려할 때 탐탁치 않은 일이어서 어떻게 해서든 그 상황을 피해보려고 핑계를 찾게 된다. 하지만 결국 피디의 요구대로 촬영에 응하게 되는데, 그 결정적인 원인은 이미 물속에 빠진 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카메라맨이다. 출연자 입장에선 정말 잔인할 정도로 자기 역할에 충실하다.
사진 속의 나는 우아하게 4륜 구동 산악오토바이를 타고 폼을 잡고 달린다. 그럼 카메라맨은? 스테빌라이저(흔들림 없이 찍을 수 있는 촬영 장비)를 든 채 내가 타고 달리는 오토바이 옆을 함께 뛰어간다. 주변도 안보고 촬영 파인더를 보고 뛰니 당연히 넘어질 수밖에. 그러면 어느 새 다가와서 미안하다며, 다시 한 번 달려줄 수 없겠냐고 제안한다. 오토바이로 왔다갔다 하는 나야 몇십 번이라도 달릴 수 있지. 하지만 카메라맨이 어디 그런가? 결국 카메라맨은 서너번 넘어지는 위험한 행위를 반복한 뒤에 원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은 듯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미 무릎팍은 넘어진 상처에 의해 피가 흐르고 있는데도 말이다.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고산지대에 사는 원주민 부족을 만나러 가는 길.
사진에 나온 길은 공사중이어서 반듯해 보이지만 한쪽 끝은 천길 낭떠러지다. 내셔널 지오그라피 같은 방송에서 자주 보는, 버스 두대가 아슬아슬하게 교행하고 옆으로는 천길 낭떠러지가 보이는 바로 그런 길이다. 그런 길을 걸으며 촬영이 진행된다. 걷고 있는 내 입장에서야 별로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지만 카메라맨은?
그들은 뒷걸음질 치며서 나를 촬영하고 있다. 촬영하는 카메라맨을 보면 정말 눈을 질끈 감고 싶을 만큼 아찔해진다.
포장된 길은 그나마 쉬운 길이다. 포장이 끝나고 비포장 산길이 나오고 그 산길을 한 시간 이상 올라가야 하는데, 역시 카메라맨은 뒷걸음으로 촬영하고 있다. 힘들다는 소리가 입안으로 쏙 들어가게 하는 상황이다.
나와 함께 촬영한 스탭들이 EBS 방송의 <극한직업>을 촬영한 적이 있다고 했다. 방송의 주인공은 하나같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주인공들이 항상 카메라맨을 보면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신네들이 가장 극한 직업이구만?"
이렇게 흘린 땀과 이들의 열정이 모여 만들어진 멋진 화면을 우리는 방에서, 거실에서 편하게 본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역할이 있으니 누가 특별히 고생하며, 누가 특별히 공이 크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방송에 출연하고 나니 이들의 열정과 고생이 사뭇 진지하게 다가온다.
만들어진 모든 것에는 누군가의 땀이 들어있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2015. 9
EBS 세계테마기행 촬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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