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축구가 가지는 장점과 축구 속에 감추어진 묘한 매력을 소개한 글을 쓴 적이 있다.
한두편의 장점과 글이 아닌, 무려 100편의 장점으로 이루어진 글이었다.
기간은 무려 10개월이 걸렸고 글을 쓰면서도
타 종목과의 비교에 의한 비하나 폄훼를 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게 굳이 100가지 장점을 정해둔 이유는
마지막 100번째 편에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전에 등장한 축구의 장점과 매력을 대충 살펴보면,
인체공학에 딱 맞게 어우러진 90분이라는 황금의 경기시간대라던가,
본능에 가장 가까운 스포츠,
여행지에서 만난 유럽사람들과의 끊임없는 화제를 양산할 수 있었고,
경기가 끝나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훈훈한 장면 등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축구의 장점이 있었고
이를 100번째 이유로 삼기 위해 어쩌면 나는 그 긴 시간동안 글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글의 마지막 편인 축구의 100번째 장점과 매력은 이것이었다.
"축구는 통일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민간차원의 최적 대안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다른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환경에 처해있다.
다행스럽게도 축구라는 스포츠는 남북한의 분단과 상관없이 모두 좋아했으며
또한 다양한 역사를 안고 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의 선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의 4강 신화 등
남북한 모두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축구는 남북통일의 중요한 매개로 활용할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추진되어야 한다.
정부와 축구협회 역시 이러한 점을 인정하여 그동안 많은 친선경기를 치르긴 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통일이나 민족화합과는 크게 상관없는 한시적 이벤트였을 뿐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가끔씩 벌어지는 남북축구다.
한민족 한국가의 개념으로 통일을 지향하는 축구경기를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경기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을 외치면서 웬 국가대표팀????
가장 좋은 방법은 오래전에 있었던 경평축구의 부활이다.
최근에 있었던 남북통일축구 역시 남측 대표와 북측 대표의 경기로 벌어졌다.
당시 남측의 서울엔 축구팀이 없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칼럼을 통해 서울 대신 부산이 출전하고,
북측에서도 평양팀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부산이라면 서울을 대신하여 남측을 대표하는 데 모자람이 없는 도시다.
이렇듯 앞으로 벌어지는 남북한 축구경기는 도시대항으로 이어져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든 도시마다 축구팀이 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 * *
최근 남북 정상회담 소식이 들리고 햇볕정책 이후
남북한의 거리가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거리가 가까와졌다는 것은 전쟁의 재발 가능성이 낮아진 것이고,
따라서 외국자본의 투자 환경 안정, 북쪽으로의 사업 진출 등 다양한 이점이 있다.
그리고 한민족으로서 공생공존하는 초석을 다듬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축구팬으로서 뜬금없는,
그러나 나름대로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제안을 한가지 하고 싶다.
지금은 우리에게도 많이 개방된 개성시에 축구팀을 창설하고
이 팀이 우리나라 프로축구리그에 참여했으면 한다.
리그가 발달된 지역의 인근 국가에서도 큰 리그에 참여하는경우가 종종 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 리그에도 캐나다 도시인 토론토, 몬트리올 등이 있고
프랑스 리그의 명문팀 AS모나코도 인근 국가다.
개성이라면 현재 남측에도 잘 소개되어 있어 친숙하고
거리도 가까와 원정 경기에도 문제가 없다.
구단 스폰서는 개성공단에 투자한 기업이어도 좋고 아니면 다른 기업이어도 상관없다.
선수들은 북한 선수들로 구성하되 외국인 조항에 맞춰
남측 출신도 정해진 쿼터 안에 구성이 가능하도록 하면 된다.
경기장도 크게 문제없을 것이다.
분명히 개성시에도 축구장이 있을 것이니 그곳을 개보수하던가,
그렇지 않다면 신축도 고려했으면 한다.
당연히 개성 경기에는 개성 관중들만 입장하겠지만
차츰차츰 남측에서 개성에 축구보러 가는 절차가 간편해질 것이다.
처음에는 축구장 입장만 가능한 노선을 만들고 차츰차츰 개방되어야 한다.
그것이 축구가 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의무다.
개성시민들도 가까운 고양 국민은행이나 FC 서울,
서울 유나이티드 경기를 보러 올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통일의 물꼬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동반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 * *
축구협회가 많은 축구팬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 데는 한가지 이유 밖에 없다.
축구 말고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축구팬들이 원하는 것은 세계대회에서의 좋은 성적이 아니라
제2의 차범근, 박지성이 나올 수 있는 건전한 풍토 조성,
미래를 내다본 설계와 이를 원칙대로 지켜가는 뚝심행정이다.
어떠한 행정과 제도가 축구발전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이용된다면
축구팬들의 지지도 못받는 것은 물론 이땅의 축구발전은 저멀리 날아가게 된다.
축구는 민족의 정서와 국민의 생활과 호흡을 함께 하고 있다.
축구가 통일 또는 민족화합의 첨병 역할을 하는 것이
어떠한 행정적, 정치적, 가시적 행사보다 훨씬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경평 축구의 부활도 좋고, 개성 축구팀의 창단과 K-리그 참여도 좋다.
다른 아마추어 클럽팀간의 교류도 좋다. 그러나 큰 욕심 내지 말고 축구만으로 시작하자.
어느 노동자 단체에서, 어느 종교단체에서, 어느 학생 단체에서
남북한 축구경기를 주선한다면 사절이다. 그건 축구 이외의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역할은 축구협회가 하는 것이 옳다.
과연 축구협회는 남북화합에 사심없이 대의를 쫓아 큰 역할을 할 의지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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