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부 속의 두 한국인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2005~2006 시즌 35라운드. 

런던의 화이트 하트레인 경기장에는 명승부가 벌어지고 있었고 

그 경기장에는 두 명의 한국인이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과 토트넘 핫스퍼의 이영표 선수. 

두 사람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기둥선수이자 각 팀의 붙박이 주전 선수로 맹활약하는 선수들이다. 

특히 이번 프리미어 리그 35라운드 경기는 지난 맨체스터 홈에서 열린 1차전과 경기와 달리 

박지성이 오른쪽 윙 포워드로, 이영표가 왼쪽 윙백으로 출전함으로써 

경기 내내 이들이 맞대결을 펼치는 장면이 연출됐다. 

특히 전반 끝무렵 토트넘 수비진영의 이영표 선수의 실책으로 공을 빼앗겨 

결승점으로 이어져 홈팀의 패배했으며, 하필이면  그 공을 빼앗은 선수가 박지성이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장면도 있었다. 

 

이 경기를 중계한 한 케이블 티비 방송사는 현장에 중계팀을 파견했으며 

현 국가대표 감독인 아드보카트 역시 이 경기를 직접 경기장에서 관전하고, 

경기시간 또한 한국시간 오후 8시 45분에 킥오프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이 경기를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현지에서도 리그 2위와 4위의 격돌로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관심이 집중된 이 경기를 본 한국 축구팬들의 기분은 그리 밝지 않은 듯하다. 

물론 이영표 선수가 결정적인 실수로 결승골을 허용했다는 점이 

그런 감상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겠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는 스포츠 선수들이 해외의 큰 무대에 진출하여 

뛰어난 활약을 보는 것으로 생활의 활력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보듯 박지성, 이영표 두 선수는 

경기의 중심에 서지 못한 채 주변만 맴돌고 있었다. 

특히 토트넘의 이영표 선수는 전반전의 실수를 의식이나 한듯 

상당히 주눅이 든 모습 마저 보여주었으며, 

동료 선수들 또한 지독하리만큼 이영표에게 패스를 하지 않았다. 

이러한 장면들을 보면서 갈수록 커져가던 기대치는 어느 사이에 현실을 직시하게 되고 

그런 면에서 많은 축구팬들이 소외감과 허탈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안타깝지만 우리 축구팬들은 그동안 고무되었던 감정을 가라앉히고 

눈높이를 조금 조절해야 할 때가 왔다. 

우리 선수가 해외의 빅리그에서 해트트릭을 하는 등 맹활약을 펼친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도대체 프리미어 리그가 어떤 리그고 맨체스터가 어떤 팀인가? 

세계에서 축구를 가장 잘한다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며 

그중에서도 가장 잘한다는 선수들이 모인 팀이 맨체스터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아직까지는 열악한 축구환경에서 성장하여 

저런 무대에서 뛰어난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 싶다. 

안타깝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우리의 축구환경은 아직 큰 무대를 휘저을 선수가 나타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오히려 척박한 환경에서 천재선수가 나타나 축구계를 착각에 빠트리게 한다면 

축구발전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역효과만 불러 일으킬지도 모른다. 

우리는 박지성, 이영표 선수가 처음 네덜란드로 진출할 때를 상기하면서 

두 선수가 조금씩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으로 

기대치를 되찾아야 할 시점이다. 

 

우리의 축구 선수들이 차츰차츰 기량이 발전하고 

해외에서 활동하는 좋은 선수들이 점차 많아질 때 

우리도 세계를 흔들 수 있는 선수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아직 우리 축구계에서 할 일이 너무 많다. 

너무 먼 것만 바라보고 기대치만 높이게 된다면 

축구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의 명승부 현장에서 바라본 두 한국인 선수를 통해 

그점은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