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은 상당히 크다.
마징가 제트로 대변되는 TV 애니메이션 분야도 대단하지만
단행본으로 출판된 만화 역시 상당한 수준을 갖추고 있다.
40대의 아저씨 아줌마들도 아직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캔디'라는 만화도 그렇고
이후 드래곤볼, 슬램덩크, 짱구는 못말려 등
각 세대별로 성장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줄 만큼 재미도 있고 완성도도 높다.
이미 만화 문화와 만화 산업이 발달한 일본의 만화는 구성도 탄탄하고 소재의 분야도 다양해서
우리나라에도 많은 매니아가 있다.
이러한 일본 만화가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원인은 우선 소재의 다양함이다.
황당한 우주공간이 등장하는 비약적 배경도 그러하고,
도무지 스토리로 이어질 것 같지 않은 생활의 작은 분야도 만화의 훌륭한 소재로 등장한다.
이렇게 등장한 소재들은 섬세한 심리묘사로 꾸며져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작가의 매니아적 기질은 성의없는 다작의 양산이 아니라
한 작품을 꾸준히 지속함으로써 그 내용을 더욱 충실하게 한다.
이러한 부분은 한국 작가들이 생각도 할 수 없는
훌륭한 사회적 인식과 배경이 그 원동력이 되고 있다.
두터운 매니아층은 작가로 하여금 한 작품에만 평생을 투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작가 역시 주제에 대해 더욱 심층적인 연구와 분석을 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그것이 결국 일본만화의 힘이요 또한 사람들이 만화를 찾게 만드는 비결이다.
최근 들어 일본 만화의 새로운 경향이 나타난다.
주인공이 누군가와 비장하게 기량을 겨루는, 이른바 '배틀형식'이다.
드래곤볼에서도, 슬램덩크에서도 그리고 미스터 초밥왕에서도 이러한 형식은
전체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형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물론 주인공이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이 주제다.
그러기 위해서 주인공이 가지는 만화적 특징이 있어야 하는데
이 대목에선 절묘하게도 대부분의 만화가 똑같은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일단 주인공은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만화의 주제가 어떤 분야든 관계없이
주인공은 그 일에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하고 또 도전한다.
모든 주인공은 주제 분야에 재질은 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인 초보자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미 갖추어진 천재성과 성실성은 하루가 다르게 그 능력을 변화하게 한다.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도 주인공은
성실과 노력, 그리고 약간의 행운을 타고 한단계씩 올라간다.
여기에 도전하는 모든 강적들은 피를 흘리고 뼈를 깍는 비장한 훈련으로 무장했지만
주인공의 온화한 성품과 천재적 기질, 그리고 이어지는 행운을 뛰어 넘지 못하고
주인공에게 무릎을 꿇게 된다.
모든 승부는 초반엔 주인공이 불리하다가 후반부에 들어
천재성이 돋보이는 반전으로 난관을 극복하며 승리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일대일로 겨루는 배틀형식이면서도
주인공은 패자의 기량을 높이 인정하고
이에 패자는 승자의 능력을 흔쾌히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절대로 대결 이후 철천지 원수가 되는 일은 찾을 수가 없다.
이것이 최근 일본만화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형식, 배틀구조다.
아무 것도 모르지만 천재적인 소질이 있는 초보자 주인공,
한단계식 고비를 넘기며 놀라운 기량을 갖추게 되는 주인공,
주변에 있는 적도 아군으로 만들어버리는 친화력,
도저히 그 끝이 어딘지 예상할 수 없는 주인공의 무한 잠재력.
이것은 요즘 일본 만화의 주인공들이 갖추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비록 일본만화이긴 하나 이러한 주인공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가만히 살펴보자니
한명의 한국 사람이 떠오른다. 축구선수 박지성이다.
* * *
비유의 억지가 있을 지 모르나
박지성 선수의 인생행로는 요즘 유행하는 일본 만화의 주인공을 보는 듯하다.
기량은 있으니 신체적으로 부족한 축구 선수.
집요한 노력으로 부족한 부분을 넘어서는 축구 선수.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대학진학도 힘들었던 선수가 차츰 차츰 두각을 나타내면서
한단계식 올라갔다.
올림픽 대표팀의 연습경기 파트너로 뛰다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
이어 성인 대표팀에 발탁 후 일본 프로축구 구단에 스카우트.
월드컵 주전 선수로 활약하며 온국민의 숙원인 16강 진출을 결정짓는 결승골 성공.
네덜란드 리그로 진출하여 부상과 슬럼프로 인해 홈팀 응원단의 야유를 받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나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노력으로 이를 극복,
1년만에 야유를 찬사로 바꾸어버렸다.
이후 믿어지지 않는 세계 최고의 팀에 입단,
도저히 경기에 나설 수 없을 것 같은 커다란 무대에 한발한발씩 도전하여 주전으로 도약.
그것도 모자라 라이벌일 것 같은 동료들을 친구로 흡수하고 있다.
도무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박지성 선수의 행로는 일본 만화의 주인공 그 자체다.
얼마전에 박지성 선수가 출간한 책을 읽었다.
누구나 예상하듯 쉽지 않은 도전과 대결에서 박지성 선수는 의지와 노력으로 이를 이겨냈다.
언제나 경기장에 나가기전 그는 마음속으로
'내가 이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중에 제일 뛰어나다'는 다짐을 수십번씩 한다고 한다.
이 대목은 감동적이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노력과 근성을 마지막으로 꽃피워줄 수 있는 자신감을 그는 스스로 만들줄 알았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그들이 원하는 이상적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것을 수많은 만화의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듯하다.
만화를 통해 드러나는 일본의 문제점은 지나치리만큼 세밀한 분석이다.
그것이 그동안 경제적 성공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을 지 모르나
때로는 필요 이상의 세밀함은 큰 줄기를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우리네 국민성은 일본의 그것과는 다르다.
세밀함이 부족하여 문제가 되긴 하지만 전체의 큰줄기를 놓치지 않는 사고는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더욱 필요한 성공의 덕목이 될 것이다.
박지성 선수의 성공은 겉으로 보기엔 일본 만화의 주인공 같은 과정을 거지고 있지만
그 힘은 세밀함이 아니라 큰걸음으로 걷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우리에게는 너무나 훌륭한, 살아있는 만화주인공이 있다.
이러한 주인공이 어느 단계까지 발전할 수 있는지 지켜보는 것도 더불어 얻게 되는 행복일 것이다.
박지성 선수의 끊임없는 도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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