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칼럼-인저리타임

듣보잡

아하누가 2024. 7. 8. 01:10



네티즌의 영향력이 사회 전반으로 번져나가면서 생활 곳곳에서 

여러 가지 변화를 맞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우리 언어에 대한 파괴, 변질 등 

이른바 네티즌 언어의 급속한 파급이었다. 

하지만 일부 기성세대의 우려에 반해 이런 신종 언어의 유행은 점점 더 확산되고 있고 

더욱이 단순 홍보와 계몽 이외에는 이를 막아낼 방법이 없는 것 또한 현실이었다. 

그러다보니 네티즌 용어는 점점 더 사회적으로 자리잡고 있고 

때로는 이 용어만이 표현할 수밖에 없는 절묘한 상황이 발생함으로써 

이제 일부 네티즌 용어는 사회적으로 당당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언어의 순수성 관점에서 보자면 슬픈 일이겠지만 

언어의 사회성 관점에서 보자면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네티즌 언어가 사회 전반에 중요한 소통 도구로 자리잡고 있는 요즘, 

눈길을 끄는 단어가 있다. 듣보잡이란 신종 단어다.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 단어가 사용된 문장의 앞뒤 맥락으로 비춰볼 때 

아마도 ‘듣도 보지도 못한 잡종’ 정도로 해석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걸 간단하게 줄여서 ‘듣보잡’이라 칭했겠지만, 

어감 자체만으로 이 단어가 가진 뜻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을 일컫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가볍게 느껴진다. 

어감에서 인정받은 단어의 의미가 사용자의 뇌리에 깊이 박힌 경우일 듯 싶다. 

이런 단어들은 언어의 생명력이 짧아 오래 사용되진 않지만 

유행할 당시 만큼은 상당한 파괴력을 지닌 것이 또한 이런 단어만의 특징이다. 

 

이렇게 알게 된 듣보잡, 이 단어를 보면서 문득 생각나는 일들이 있다. 

바로 축구 국가대표 감독 선발에 대한 상황과 결과다. 

지난 2002년, 우리는 히딩크라는 명장의 지휘로 

역사상 다시 일어나기도 힘든 엄청난 결실을 맺었다. 

그 뒤로 외국인 감독은 우리 국가대표 축구팀의 상징처럼 되고 

많은 축구팬들은 그것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외국 감독이 필요한 이유는 선진 축구를 배우고, 세계 축구계의 흐름을 쫓을 수 있고, 

학연 등의 인맥으로 선수를 선발하는 구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축구 대표팀은 히딩크 이후로는 

족보를 내세울만한 경력이 없는 감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더 웃기는 사실은 그런 감독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감독 선임과정을 보자. 

공석이 된 감독직으로 놓고 엄청난 지명도를 가진 감독들의 이름이 난무한다. 

내막을 잘 아는 축구팬들은 여기서부터 기가 막힌다. 

알만한 유명한 축구 감독 이름은 다 나온다. 

그리고 2~3명으로 후보가 좁혀진다. 여기까지도 참을만 하다. 

어떤 경우엔 그 2~3사람 중에 한사람만이라도 와준다면 

쌍수들고 환영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결국 선임된 감독은? 

10여명의 후보군은커녕 마지막 2~3명의 후보군에도 없던, 

어디서 들어본 적도 본적도 없는 감독이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 ‘듣보잡’처럼 확실한 표현이 어디 있겠나 싶다. 

갑자기 본프레레가 튀어 나왔고, 듣보잡은 아니라고 해도 마찬가지 과정을 통해 

아드보카트도 등장했다. 하지만 모두 다 듣보잡의 경우다.

 

이것이 히딩크 이후 우리나라 국가대표 감독이 선임되는 과정이었다. 

한마디로 요란한 선임과정과 듣보잡의 출현으로 정리할 수 있는 쪽팔리는 과정들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은 변화가 없고,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세력들은 변함이 없다.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책임을 뒤집어쓰고 사임할 수 있는 감독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 * *

 

현재 축구협회는 공석중인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 감독을 선임중에 있다. 

향후 약 4개월간 빅매치가 없어 여유롭긴 하지만 그 과정 또한 불안하다. 

처음엔 이름만 들어도 가슴 속에 절절히 감동이 솟구치는 명장들 이름이 오갔다. 

현 포르투갈 감독 스콜라리도 있고, 심지어 얼마전 첼시를 그만 둔 

무리뉴도 리스트에 있었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섭외능력인가? (참고로 무리뉴의 연봉은 

내가 아는 바로는 약 90억원이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거장 올리에 감독도 있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올리에 감독이 온다면 나는 버선발로 달려나가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그 올리에에게 의사나 제대로 전달했을지 조차 궁금하다. 

이건 시작부터 확률이 10%밖에 안되는 섭외 아니었던가? 

 

결국 대표팀 감독은 또 하나의 듣보잡인 아일랜드 출신 ‘매카시’로 좁혀지고 있는 듯하다. 

나름대로 강단도 있고 유명세도 있지만, 보여준 건 하나도 없는 ‘듣보잡’류다. 

아일랜드 대표팀을 맡아 한국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는 등 

강팀과의 대결에서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불행히도 체력을 앞세운 뻥축구로 일관했다. 

우리나라 축구팀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그 ‘뻥축구’의 달인이다. 

굳이 매카시라면 외국인 감독이 왜 필요한 지 

서두에서 말한 세가지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듯 싶다. 

 

더욱이 그가 감독을 맡았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선더랜드는 2부로 강등되었고, 

2002년 월드컵 당시 그와 사이가 좋지 않아 대표팀 합류를 거부한 로이킨이 

공교롭게도 선더랜드 감독을 맡아 팀을 2부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시켰으니 

참 아이러니컬한 얘기다. 

그나마 매카시라면 다행이겠다. 

어디서 또 하나의 듣보잡이 불쑥 나타날 확률도 만만치 않으니까. 

 

 

대표팀 감독 선임의 단면에서 나타나듯 우리나라 축구에서 가장 먼저 개혁해야 할 곳이 

있다면 바로 축구협회일 것이다. 

이러한 팬들의 외침과 요구가 허공에 맴돌지 않도록 무언가 

자극적인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각성을 하고 정신을 차리던지 아니면 싹 갈아엎던지.... 

 

이런 상황이라면 한국 축구의 미래는 상당히 어둡다. 

경기력에서가 아니라 행정력에서 모자라니 더 안타깝다. 

그래도 축구를 좋아하는 내가 더 안타까운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