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회나 그렇듯 큰 대회가 열리면 당연히 모든 화제가 집중된다.
크고 작은 경기에서 팬들은 영웅을 만들고 언론은 드라마를 만들기도 한다.
유로 2008 대회도 마찬가지다.
유럽축구의 변방국이라 할 수 있는 터키와 러시아의 약진이 대회 내내 화제였고
극적인 승부도 팬들의 이목을 집중하기에 충분히 등장했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화제는 주인공에제 집중되는 법이다.
하지만 그런 드라마틱한 화제 속에 가려진 채 쓸쓸한 모습으로
팬들의 기억속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축구 천재가 있어 다시한번 기억을 더듬어 본다.
우리는 그를 오랫동안 기억해야 한다. 그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 * *
세상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선수는 누구일까?
아마도 이런 질문은 매우 엉뚱하고 몰상식하게 생각되지만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질문이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기도 하며
또 저마다의 생각대로 자신의 견해를 말하기도 하는, 아주 흥미로운 질문이다.
축구란 포지션별로 그 역할이 있고, 팀의 강약에 따라 선수의 능력이 발휘되거나
혹은 그렇지 못한 일들이 아주 당연하게 일어나는 스포츠이다.
이런 질문에 의거하면 많은 사람들은 전설의 축구스타인 펠레와 마라도나
혹은 베켄바우어나 요한 크루이프의 이름을 들먹이곤 한다.
전성기 시절 이들의 플레이는 이런 찬사를 받기에 충분한 능력과 소질이 있었고
수많은 챔피언 트로피를 만들어냄으로서 객관적으로도 그 능력을 증명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단체 경기인 축구의 특성상 이러한 기준 또한
그 역할에 따라 또는 보는 사람의 취향과 관점에 따라 당연히 다를 것이다.
누군가 내게 이런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주저할 것 없이
세상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선수로
스웨덴 출신의 스트라이커 ‘헨리크 라르손’을 손꼽는다.
유렵의 축구 강국이긴 하나 빅리그도 없고 화려한 플레이어도 없는 나라 출신이므로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안아본 경험은 당연히 없을 테고,
그렇다고 유명 빅클럽에서 화려한 축구경력을 쌓은 일도 없다.
그런 그를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선수로 꼽는다는 게
어울리지 않을 듯하지만 헨리크 라르손은 축구에서 말하는,
축구 뿐 아니라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 분야의 ‘고수’를 말함에 있어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닌 가 싶다.
헨리크 라르손은 축구 천재라기 보다는 축구 고수다.
남들보다 한 수 높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바로 운동장에서 보여주는 선수다.
이런 축구 고수가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헨리크 라르손은 1971년생이다.
우리나이로 아직 현역이 2008년 현재 38세.
축구선수로는 환갑 진갑 다 지난 나이다.
이 선수가 유로 2008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과연 이 선수를 처음 본 것이 언제였는지
가물거리는 기억을 되살려보니 놀랍게도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월드컵에서 스웨덴은 뛰어난 기량과 안정된 경기력으로 3위를 차지한다.
긴 레게 머리를 휘날리며 운동장을 누비던 젊은 선수가
지금 머리가 빠지고 그것도 모자라 면도기로 박박 밀어버린 채 운동을 누비고 있는
바로 그 헨리크 라르손이다.
이후 헨리크 라르손은 유럽 최강은 아니지만 안정된 전력을 갖춘
스웨덴의 일원으로 매번 월드컵에 참가했고
언제나 그렇듯 기복없는 플레이로 제몫을 했다.
소속 클럽으로는 유럽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자국 리그에서 뛴 경험과
나름대로 명문인 스코틀랜드 정상팀인 ‘셀틱’에서 7년간 뛴 것이
그나마 이름있는 팀에서 뛴 경험이다.
그의 기복없는 플레이는 그의 나이 35살에도 여전히 인정받아
결국 04-05 시즌엔 빅클럽인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스카웃돼 2시즌을 뛰며
팀을 우승시키는데 공헌한다.
하지만 기복이 없는 그의 플레이는 화려하지 않다는 이유로
일등 공신으로 대접받진 못하게 된다.
그리고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 고향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한다며
스웨덴의 ‘헬싱보리’팀으로 복귀한다.
이러한 그의 축구행보로 볼 때 축구천재라는 말은 그리 어울린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분명 축구 천재의 칭호에 손색이 없는 선수다.
그러한 축구에 대한 그의 천재성은 놀랍게도 그가 37살이 되던 해에
비로소 세계 축구팬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된다.
* * *
스웨덴이란 나라는 지역의 특성상 한겨울에는 축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래서 매년 1~3월엔 자국 리그도 휴식기를 갖는다.
바로 이 3개월 휴식 기간에 우리에겐 너무도 잘 알려진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 알렉스 퍼거슨은
그를 3개월 임대 선수로 데려온다.
졸지에 환갑이 지난 선수가 세계 최고의 명문 클럽 팀에서 뛰게 된 순간이다.
그것도 우리나라의 박지성 선수와 같은 팀에서 뛰게 된 것이다.
맨유의 팬들도 그의 임대에 대해 반대론이 무성했다.
3개월간 팀에 뛰면 동료와 적응하기도 힘든 시간인데 무얼 얻겠냐는 것이 대세였다.
과연 그 이후 헨리크 라르손은 맨유에서 어떤 플레이를 했을까?
약 2개월간 있었던 맨유에서의 플레이를 보면
그가 과연 축구 천재로서, 또는 축구에 과한 최고수라는 칭호를 듣기에
전혀 손색이 없음을 알게 된다.
불과 팀에 합류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이 ‘고수’는
마치 10년 이상 손발을 맞춰온 선수인 양 동료들과 전혀 무리없는 호흡을 맞췄고
보는 사람들도 ‘과연 저 선수가 엊그제 처음 팀에 합류한 선수인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는 완벽하게 팀에 융화되었다.
늘 그렇듯 그는 자신의 팀이 승리할 수 있는 최선의 위치를 찾았고
최고의 플레이를 했으며 결국 팀을 승리로 이끄는 데 일등 공신이 되었다.
천재가 아니라면, 고수가 아니라면 상상도 못할 능력을
그는 전세계의 팬들 앞에서 실제로 보여준 것이다.
헨리크 라르손으로 인해 축구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조직력’도
개인의 탁월한 능력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정체성의 혼돈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팀의 조직력이 부족해 오랫동안 합숙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도
다 부질없는 변명으로 들릴 정도로
그의 플레이는 단 하룻만에 팀에 철저히 녹아들었으며 팀을 더욱 강하게 했다.
타고난 기량과 성실함, 오랫동안 기량을 유지할 수 있었던 철저한 자기관리,
팀을 승리로 이끄는 방법을 알고 있는 놀라운 경기 운영 능력
이것이 바로 그를 천재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그가 가진 이유다.
* * *
유로 2008에서 스웨덴이 히딩크 신드롬에 희생되며 8강 진출에 실패함으로서
더 이상 세계무대에서 헨리크 라르손을 보기는 힘들어진 것 같다.
9월이 되면 세계 유수의 클럽들이 리그를 시작하겠지만
역시 헨리크 라르손의 모습은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축구 선수로서의 놀라운 능력과 경기를 보는 시야는
그가 축구 천재로서, 축구 고수로서 축구 역사에 길이 남는데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튀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팀을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축구 천재 라르손.
그야 말로 진정한 축구선수이고 천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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