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칼럼-인저리타임

축구전쟁

아하누가 2024. 7. 8. 01:06


축구는 전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는 최고의 스포츠임에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고 있다. 

도대체 사람들은 어느 정도 축구에 열광할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에 가장 적절한 역사적 사실은 1969년에 있었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축구전쟁일 것이다. 

이미 세상에 알려진 자료를 근거로 당시의 상황을 시간별로 정리해보자.

 

1969년 6월 7일.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

월드컵 예선 최종전을 위해 원정온 엘살바도르 선수들의 숙소앞에서 온두라스 응원단이 

밤새도록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깡통을 두드리는 등 소란을 피움. 

결국 경기는 온두라스의 1:0 승리. 

TV로 경기를 보던 엘살바도르 소녀가 충격에 못이겨 권총으로 자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각료가 모두 장례식에 참석했고 장례식은 전국에 중계.

 

1969년 6월 14일.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

온두라스 팀이 묵고 있는 숙소밖에선 엘살바도르 국민들이 유리창을 깨고 

죽은 쥐를 던지는 등 난동에 가까운 소동을 일으킴. 

결국 경기는 엘살바도르의 3:0 승리. 

경기장에선 양측 응원단이 싸움을 벌이고 온두라스 응원단 차량 150대가 불타고 2명 사망.

같은 시간. 온두라스에서는 국내에 있는 수십명의 엘살바도르인들이 

온두라스인에 의해 살해. 약탈 방화로 일어난 피해 2000만 달러. 

이후 온두라스 정부는 엘살바도르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

이에 엘살바도르는 세계인권위원회에 온두라스 만행을 제소.

 

1969년 6월 23일.

두 나라 국교 단절.

 

1969년 6월 27일. 

중립지역 멕시코에서 최종전 열림. 

관중보다 경찰이 많았고 경기는 내내 난폭하게 진행. 2:2 동점으로 끝나 연장전 돌입. 

연장전 엘살바도르의 결승골. 결국 이 득점은 전쟁의 신호탄이 됨.

 

1969년 7월 14일.

엘살바도르 비행기가 선전포고와 동시에 온두라스 네 개 도시를 폭격. 

탱크를 앞세운 보병부대는 온두라스 국경을 넘어 25마일이나 진격. 

온두라스는 낙하산 부대를 엘살바도르 후방에 투입해 교란작전 시도. 

전쟁은 나흘간이나 계속 됨. 100시간 전쟁이라고도 불림.

 

1969년 7월 18일. 

이웃나라의 중재로 정전에 들어감.

 

결과 

이 전쟁으로 3000명이 죽고 1만2000여 명이 부상했으며 15만 명이 집을 잃음.

땅덩어리가 온두라스의 6분의 1에 불과한 엘살바도르는 전쟁에도 이기고 축구에도 이김.

 

 

축구가 원인이 되어 전쟁까지 유발하게 된 역사적인 사건이지만 

이 전쟁의 내면에는 양국간의 오랜 원한이 바탕이 되었다. 

1950년대∼1960년대에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약 30만 명 엘살바도르 농민들이 국경을 넘어 온두라스에서 무단거주를 했고, 

1969년 온두라스 정부가 새로운 농지개혁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엘살바도르 난민 수만 명을 추방하자 두 나라 사이의 감정이 악화되었다. 

 

이러한 배경이 축구를 통해 유발된 전쟁으로 두 나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피해를 입었다. 

숫자는 적으나 엘살바도르에서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던 온두라스인들은 

전쟁 중에 온두라스인에 의해 살해되거나 쫓겨나야 했기에 온두라스 경제는 휘청거렸고, 

이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경제에 도움이 되었던 엘살바도르 역시 

커다란 경제적 위기를 맞게 되었다. 

결국 두 나라 모두 전쟁으로 인해 최빈국으로 전락하는 등 서로 깊은 상처만 입은 셈이다. 

그렇게 해서 월드컵에 나간 엘살바도르의 성적은 조 예선 3전 전패. 

 

이후 양국은 1980년 평화협정에 서명했지만 

국경문제 중재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의뢰하는 등 갈등은 계속되어왔다. 

 

 * * *

 

그런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축구전쟁이 37년만에 종지부를 찍는다. 

2006년 4월 18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양국 정상은 이번주에 회담을 갖고 

375km에 달하는 국경의 경계를 확정짓는 문서에 서명한다고 한다. 

축구전쟁이 있은지 37년만의 일이다. 

오랜 앙금을 털고 두 나라가 좋은 라이벌로 또 좋은 경제적 동반자로 성장하여 

세계 평화의 상징이 되기를 기대한다. 

 

지도를 펼치고 세계 각국을 살펴보자면 공통적인 사실이 한가지 드러난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두 나라 중 사이좋은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친하긴커녕 앙숙처럼 지내는 게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들이 가진 공통적인 특징이다. 

아마도 터키와 그리스, 인도와 파키스탄 등의 국가들은 한국과 일본처럼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앙숙 국가일 것이다. 

이들 국가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축구전쟁의 해당 국가인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도 

만만치 않은 감정을 가진 앙숙 국가였음이 분명하다. 

 

현재 축구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스포츠로, 

세계인을 하나로 묶는 평화의 전도사 역할을 해내고 있다. 

특히 어느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축구가 전쟁을 억제하는 대체수단으로도 

그 효과가 상당하다고 하니 축구야말로 평화의 메신저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전쟁이 없어지고 세계의 평화가 유지되는 것은 축구팬들만 아니라 세계인 모두의 바람이다. 

바로 그 중심에 축구가 있다. 축구는 세계 평화유지에 공헌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축구에 열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