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우리에게 준 커다란 선물은 4강 신화만은 아니다.
온 국민이 축구라는 것에 대한 무시무시한 위력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
축구팬의 입장에서는 4강 신화에 버금가는 선물인 셈이다.
그토록 많은 국민이 흥에 겨워 거리로 뛰쳐나온 일이 8.15 해방 말고 또 있었을까.
이제 이러한 축구의 위력을 깨닫기 시작한 많은 사람들은 축구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어린 학생들이 축구를 보며 꿈을 키우고,
성인들도 축구의 매력에 빠져 건전한 취미로, 건전한 매니아로 남게 되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얘기겠냐만 불행히도 축구를 다시 보기 시작한 사람들은 이들이 아니다.
바로 경제인과 정치인이다.
경제인들은 나름대로의 수완을 발휘하여 축구마케팅에 들어갔다.
TV상업광고에 요즘처럼 축구선수를 자주 보는 일도 없었다.
우리나라 대기업 광고를 가슴에 붙이고 뛰는 세계적인 팀도 생겼다.
경제야 그렇다 치자. 언제나 이들은 사회변화와 흐름을 쫓기 마련이니까.
얘기가 여기까지 오면 다음 얘기는 말하지 않아도 뻔한 내용이 나온다.
바로 축구를 이용하려는 정치인 얘기다.
축구가 이토록 무시무시한 위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정치인들은
이를 어떻게 이용할지 지금 머릿 속이 빙글빙글 도는 모양이다.
어떻게 해야 시선을 모으고 인기를 얻어 표로 연결시키는지,
아니면 그놈의 정치판에서 조금이라도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지금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중이다.
월드컵 전사들의 출신지에는 이미 기념관 하나씩 들어섰고,
어떤 도시는 도로 이름까지 명명했으니
일단 할 수 있는 것들은 하나씩 하고 있는 모양이다.
거기까지도 좋다.
국민들이 모두 열광했던 추억이 있으니 기념관 하나 남겨두는 일이 뭐 어떠랴.
이제부터 심각한 문제로 들어간다.
축구와 정치, 별로 어울리지 않는 두개의 단어지만
이것을 기필코 연결시키려는 사람이 있으니 그게 문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뭘까? 당연히 남북관계다.
여기서부터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오늘 스포츠서울 기사 내용을 보니 참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단기사를 볼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한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이
4일 브라질 출신인 주앙 아벨란제 전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남북단일팀과 브라질의 친선경기 추진 방안이 논의됐다.
김 회장과 아벨란제 전 회장은 2006독일월드컵 이전에 이 경기가 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남북단일팀-브라질전 프로젝트는 지난 5월 청와대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처음 거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브라질이라고 하면 누구든 축구를 떠올리는 만큼
남북단일팀과 브라질의 친선경기가 남북 화해를 위해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다.
그러나 말 만큼 경기 성사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축구협회 대외협력국은
"남북단일팀과 브라질의 친선경기 논의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가 단순히 협회 차원에서 논의될 성질은 아니다"고 말했다.
브라질과 경기를 추진하기에 앞서 남북한이 단일팀을 구성하는 문제가 선결돼야 하고
남북 단일팀은 언제나 그랬듯이 고도의 정치적인 논의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협회 관계자는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지고 나면
남북한 축구협회와 브라질 협회가 서로 일정을 맞추고 실무적으로 일을 추진하겠지만
지금 단계로서는 일단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후략)
뉴스의 요지는 남북한이 단일팀을 만든다는 것이고,
또 그 단일팀이 세계최강인 브라질과 친선경기를 한다는 내용이다.
뭐 좀 이상한 생각들지 않나?
별 이슈가 아니라 대한체육회장이 전 피파회장하고 만나서 얘기한 내용이 전부다.
얼핏 듣기엔 뭔가 이목을 끌만한 이슈인 것 같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단지 이벤트에 불과할 뿐이고 그나마 성사 가능성도 매우 희박하다.
축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대표적인 사례며
축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축구를 매개체로 삼아 무슨 일을 추진하면
엉뚱한 방안이 나온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사례다.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바로 남북관계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이다.
축구가 가진 매력 중 우리가 느껴야 할 가장 커다란 매력은
'축구는 남북통일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민간차원에서의 최고의 대안'이라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축구를 통해 섣부른 남북교류는
가장 좋은 방안이 정치적 목적으로 인해 소실되어
통일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소중한 기회만 놓치게 되는 셈이다.
그럼 축구로 남북교류를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당연히 경평축구의 부활이다.
자꾸 정치가들은 남북한과 축구의 관계를 국가간의 대결로 몰아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정녕 우리가 원하는 것이 통일이라면 남북한 축구에 있어서 '국가간의 대결'은 없어야 한다.
도시와 도시의 대결이어야 나라안에서의 행사가 되고,
그것이 같은 나라라는 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축구인들이 아닌 정치꾼들은 조금이라도 이를 통하여
개인적인 목적을 달성시키려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딱하고 안타까운 일인지 모르겠다.
축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말은 축구의 순수성을 지키자는 말이 아니라
축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정치적으로 실패한다는 사실을 준엄하게 경고하고 있는 말이다.
다시 한번 축구를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에게 엄중히 경고한다.
또한 축구협회는 이것저것 계산하지 말고 경평축구를 추진하라.
남북축구는 민간차원에서 해야 하고
반드시 국가간의 대결구도가 아닌 도시간의 대결로 추진해야 한다.
경평전이라 함은 특정한 도시의 교류가 아니라
국가안에서 이뤄지는 도시간의 교류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축구가 남북을 통일 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축구는 남북의 거리를 조금 더 가깝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것은 다른 스포츠에서는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힘이다.
그 힘이 엉뚱하게 쓰여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축구는 축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비로소 그 힘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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