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무척 좋아하지만 커피 타는 일은 무척 싫어한다.
커피 타는 일이 싫은 이유는 물론 귀찮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는
다방커피, 자판기 커피 그리고 커피믹스의 세가지인데
저 세가지의 확실한 공통점은 주로 누군가 타주는 것이며,
설령 내가 타더라도 최소한의 노동력과 최소한의 상식으로 탈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커피가 따로 있고 설탕이 따로 있고 크림이 따로 있으면
그때부터 커피 마시는 일은 고역이 된다.
아무리 연구를 해서 잘 만들어도 내가 말한 세가지 커피 중
어느 하나와도 비슷하지 않은 묘한 맛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커피를 마실 때도 위의 세가지 커피가 아니라면 마누라가 타주는 커피,
장모님이 타주는 커피, 누나가 타주는 커피 등을 각각 따로 기억한다.
그래서 누가 타주는 커피가 제일 맛이 있고 없는지를 생각하지
내가 그런 맛을 내려고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 * *
어느날인가 사무실의 커피 시스템이 확 바뀌었다.
예전처럼 커피 믹스가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병에 들은 커피와 설탕,
그리고 크림이 제법 큼직한 숟가락과 함께 놓여 있다.
제 손으로 커피 타먹는 것도 귀찮아하는 내가 그 시스템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종전의 시스템으로 복귀시킬 열의는 없다. 그러니 현실에 적응하면서 사는 수밖에.
계속 커피를 잘못 만들어 고생하다 대략 한달 정도가 지나니
이제 숟가락에 어느 정도의 양을 담아야 원하는 맛이 나는지 알게 되었다.
인간의 학습 능력이란 몹시 무한한 것이어서 숟가락에 들어가는 커피와 설탕의 양을
계량기를 가져와 눈금으로 표시하지 않아도 눈대중으로 정확히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횟수의 반복으로 인해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몸과 눈으로 익힌
소중한 재산이라 생각하니 커피 마시는 일이, 더불어 커피 타는 일이 즐거워졌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러한 나의 행복과 포만감은 3일만에 막을 내렸다.
이제 커피를 맛있게 탈 수 있다는 나의 기쁨이 무참히도 깨어진 것이다.
그래서 세상 일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어르신들이 말을 자주 하는 모양이다.
이제 또 한달을 어떻게 보내야 한담?
아침에 출근해서 커피 한잔을 타려고 보니 천신만고 끝에 겨우 익혀두었던 숟가락이
다른 크기의 것으로 바뀌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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