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의 낮은 아름답다

여자 이름, 남자 이름

아하누가 2024. 7. 8. 00:47



약 열흘간 미국에 있다 사무실에 나오니 읽지 않은 편지가 책상 한구석에 잔뜩 쌓여있다. 

한장한장 넘기다 매우 특이한 발신자 이름을 발견하고 웃음이 피식 나온다.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하거나 놀릴 생각은 없지만 매우 특이한 이름인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 발신자의 이름은 '김여자'였다. 

혹시나 내 말이 남을 놀리는게 되지 않는지 다시 한번 목소리를 가다듬고 

옆자리에서 일하던 후배사원을 불렀다. 

 

"이봐 이 이름 정말 특이하지 않아?" 

 

이름을 훑어본 후배는 조금전에 내가 그랬던 것과 거의 같은 웃음을 짓고는 

그 또한 이름으로 남을 놀리게 되지나 않을까 매우 조심스러운 말투로 내게 반문했다. 

 

"근데요.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이 혹시 '남자'일 수도 있겠지요?" 

 

얼핏 맞는 말이다. 이름이 여자라고 반드시 여자라고는 할 수 없다. 

그저 이름만 여자일 지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더 냉정히 생각해보면 

이름 끝자에 '자'자를 쓰는 것은 일본식 표현으로 오직 여자의 이름에만 붙이는 형식이다. 

 

"그럴 리야 없지. 여자는 분명 여자일꺼야." 

 

그냥 그렇게 대화가 끝나버리면 간단했을 일을 후배는 괜한 승부욕과 

쓸데없는 지적 열등감에 사로 잡혀 이름이 주인공이 남자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강하게 펼치기 시작했다. 

그의 주장은 이름만으로 여자라는 증거를 확보할 수 없다는 상황의 특성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본격적인 우기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이게 논쟁의 대상이나 주제가 되기에는 너무도 미미한 것이지만 쓸데없는 일에 

흥분하는 좋지 않은 습관을 고치고자 

아까 생각해두었던 '여자 이름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논쟁 아닌 논쟁에 마침표를 긋는 회심의 질문을 던졌다. 

 

"아는 남자중에 이름이 '자'자로 끝나는 사람 있으면 말해봐!" 

 

질문을 들은 후배의 매우 당황한 표정을 바라보며 

적재적소에 가장 효과적인 제안을 할 수 있는 나의 신비한 능력에 스스로 감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리함에 꼬리를 내릴 줄 알았던 후배는 의기양양하게 말문을 열었다. 

 

"왜 없어요! 많지요." 

 

그리고는 한사람 한사람씩 이름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공자, 맹자, 노자, 장자......" 

 

여기서 내가 졌다고 두손을 들어야 할지 아니면 사무실 밖으로 끌고 나가서 

몇대 쥐어박아야 하는지 잠시 갈등하다가 욕이나 잔뜩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의 틈에서도 내가 말문을 열고 처음 꺼낸 말은 이러했다. 

 

"한비자도 있잖아!" 

 

 

나도 참 순진한 놈이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