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일하는 친구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밥 먹고 이런 저런 얘기하다 아무래도 요즘의 화제는 모두 인터넷으로 통하는 시대니
자연스레 인터넷 얘기를 하던중 친구가 인터넷뱅킹을 개설했다고 자랑하기 시작했다.
개설한지 얼마 안되었는데 그것이 무척 신기했던 지
여기저기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화제로 삼고 있는 듯했다.
친구는 아주 신이 나서 인터넷뱅킹에 대한 얘기를 늘어 놓는다.
나는 아직 한번도 안 해봤으니 해본 친구는 신기할 수도 있겠지.
"야, 우리 사무실에 여직원이 하나 있거든. 어려. 스무너댓살 되었을꺼야.
근데 내가 인터넷 뱅킹을 개설하는 날 재미로 그 여직원에게 계좌번호 좀 불러보라고 했어.
왜긴 왜겠어. 인터넷으로 돈이 오가는 시대로 합류했으니 기분 좀 내려 그랬지.
한 2만원 송금해주려고 말야. 그런데 그 아가씨가 뭐라는 줄 알아?
계좌번호를 안 가르쳐 주겠다는 거야. 이유를 물었지.
그랬더니 이유가 참 기가 막히더라구....."
나는 아무 말도 물은 것이 없는데 친구는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혼자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면서 계속 신이 나 있었다.
계좌번호를 안 가르쳐주겠다고 한 여직원이 왜 그랬냐는 질문을 하기도 전에
친구가 먼저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아, 글쎄 계좌번호를 가르쳐주면 자기 통장에서 돈을 뺄 수도 있어서 그런다잖아.
하하하 안 웃겨?"
얘기를 들으면서 대충 뉘앙스가 남의 얘기를 뒤에서 하는 것 같아
웬만하면 따라 웃는다거나 또는 친구의 얘기에 동조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얘기가 너무 기가 막히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해도 웃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없어서 키득키득 웃기 시작하다 나중에는
큰 소리로 웃었다. 나이가 스물 너댓살이면 인터넷을 비롯해서
컴퓨터에는 무척 밝은 세대여야 하는데 이건 오히려 아무 것도 모르는 소리를 하며
남들에게 웃음을 주고 있으니 참으로 심각한 일이었다.
계좌번호를 알려준다고 돈을 빼낸다니 참.....
하긴 시대가 매일매일 변해가니
알아야 할 것도 많고 몰라서 망신을 당하는 일도 많은 요즘이다.
하지만 그렇게 시대가 변하다보니 상식이라는 기준과 내용도 달라진 것 같다.
이제는 계좌번호 알려준다고 남이 내 통장에서 돈을 빼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게
상식인 시대가 된 것이다.
나도 컴맹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오히려 컴맹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나보다도 더 무지한 젊은이도 있는 모양이다.
"참? 왕대가리 전화번호 바뀌었는데 알아?"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데 친구는 침묵을 깨며 화제를 돌린다.
"그래? 난 아무 연락 못 받았는데?"
"여기 있으니 적어."
"그래, 어디 보자....."
전화번호를 적으려고 가방 안에 넣고 다니는 조그만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랬더니 친구는 내가 꺼낸 수첩을 불쌍한 눈빛으로 한참이나 쳐다보더니 내게 물었다.
"그냥 핸드폰에 입력시켜. 언제 그거 다 적었다가 찾아서 전화하냐?"
"어, 난 핸드폰에 전화번호 입력해두지 않아."
"왜? 입력할 줄 모르는구나?"
설마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입력하는 방법을 모를까.
내가 핸드폰에 전화번호를 입력하지 않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이유 또한 남들은 이해 못하는 이유였는지
내 설명을 들은 친구도 매우 이해못할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핸드폰에 전화번호를 많이 입력시키면
밧데리가 빨리 소모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하누가
'샐러리맨의 낮은 아름답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0) | 2024.07.08 |
---|---|
여자 이름, 남자 이름 (0) | 2024.07.08 |
닭대가리 (0) | 2024.07.08 |
참을 수 없는 입의 간지러움 (0) | 2024.07.08 |
현장검증 (0) | 2024.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