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떤 대학교수가 재산상속을 이유로 아버지를 살해한
충격적이고도 패륜적인 살인 사건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또 세상을 한탄하기도 했던 사건이었다.
당시 그 사건의 장소는 내가 근무하던 회사 근방이어서,
신문기사에 나온 A호프집과 B횟집은 형식상 A,B로 표기 했던 것이 아니라
정말 ‘아마데우스’와 ‘바다횟집’이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먼 곳도 아닌 주변에서 그런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자 직장에서는 단연 그 사건이 화제였고
한술 더 떠서 떠오르지도 않는 기억을 더듬어 가며 그 사람을 본 것 같다는
얼토당토 않은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무튼 내가 지내던 곳에서 일어난 일이어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며칠 뒤 신문 기사를 주의 깊게 읽어보던 나는 바로 그날 그 장소에서
현장검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장 검증이니 당연히 그 호프집이나 횟집도 들릴테고, 또한 그곳은 바로 사무실 앞이니
구경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현장검증 시간을 보니 한참 일하고 있을 시간이어서 어떻게
부장님과 직원들 눈치를 보고 그 시간에 그 현장에 가 있어야 할지 고민되기 시작했다.
항간에 화제가 되었던 사건이긴 하지만 그래도 월급받는 직장인이 정의를 부르짖으며
그 현장에 있다 해도 잘했다고 말하는 간부들은 하나도 없을 것이고
또한 꼬박꼬박 월급에서 떼이는 갑근세를 삭감해 주지도 않을 것이다.
더욱이 그곳은 사무실과 가까운 곳이니 업무로 오가는 간부들 눈에 띄였다가는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물론 한동안 뜸했던 지각에 대한 잔소리도 다시 시작할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고민 몇가지가 떠오르니 점점 더 그 현장검증을 보고픈 생각이 간절해졌다.
결국 그럴듯한 핑계를 찾아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제법 먼 거리에 있는 관련 회사에 업무차 외출을 하겠다고 했다.
그 일은 누군가는 언젠가 해야 하는, 무척이나 귀찮은 업무였는데 내가 하겠다고
발벗고 나서니 마치 대신 매라도 맞아 줄 사람들이 나타난 것처럼
사람들이 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희생정신이 강한 사원이라는, 입에 침도 안 바른
형식적인 칭찬 또한 빠지지 않았다.
나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듯한 동작을 몇번 취하는 척하다가 황급히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 * *
이미 현장 검증 장소에는 많은 사람과 취재진이 몰려 있었다. 얼굴이라도 좀 보려고
발뒤꿈치를 높이 들고 앞사람의 고개 넘어 쳐다보기를 10여분.
드디어 현장검증을 마친듯한 피의자가 밧줄로 몸을 두른채 취재진의 카메라 세례에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흥분한 몇 아주머니들이 욕을 하기 시작했고
덩달아 흥분하기 잘하는 나 또한 이에 질세라 분위기를 파악하며
이런 저런 소리를 떠들고 있었다.
“저런 나쁜 놈이 있나? 앙!”
그러자 뒤에 있던 사람이 맞장구를 쳤다.
“그럼 나쁜 놈이구 말구...”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는 대충 그런 말이 나와야 함은 당연한데도 마치 많은 사람들이
내 말에 동조하는 듯한 환상에 빠져 계속 신이 나고 있었다.
그러다가 뒷사람에게 또 한번 동의를 구했다.
“아주 능지처참해야 하는 사람이지요?”
그러자 뒷사람은 묵묵히 대답했다.
“그래도 거래처는 가야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몹시도 낯익은 얼굴이었다.
“어라라? 부장님이 여긴 어인 일이십니까?”
부장님뿐만 아니라 부서 전직원이 뒷줄에 있는 군중들 틈에 서서
현장검증을 구경하고 있었다. .
* * *
지하철로만 무려 1시간 가량되는 거리에 있는 거래처를 쓸쓸히 다녀왔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내가 황급히 사무실을 나가자마자 부장님께서 직원들에게
잠깐 나가서 그 사건의 현장검증을 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너무도 억울한 나머지 얼마 동안을 멍한 얼굴로 있다가 다시는 업무시간에
잔머리 굴리지 않기로 했다.
또한 살인사건의 현장검증이 아니라 에로배우의 누드촬영 현장이라도 나가지 않고
주어진 일에만 열중하기로 했다.
나의 이 자그마한 결심이 굳게 지켜지기 위해서라도 다시는 그런 비극적이고
패륜적인 사건이 우리 주변에서는 영원히 일어나지 말아야 할텐데......
아하누가
'샐러리맨의 낮은 아름답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닭대가리 (0) | 2024.07.08 |
---|---|
참을 수 없는 입의 간지러움 (0) | 2024.07.08 |
아홉개의 피자 쿠폰 (0) | 2024.07.08 |
부시와 김03 (0) | 2024.07.08 |
커피믹스 (0) | 2024.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