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무실 문이 그렇겠지만 내가 일하는 사무실 문도
들어올 때는 밀어야 열리고 나갈 때는 당겨야 열린다.
가끔 당길 때 민다던가 밀어야 할 때 당기는 일도 있지만
그거야 이사온 초반에나 잠시 헛갈려서 그런거지
두어달만 지나도 그런 실수는 하지 않게 된다.
더욱이 우리 사무실 문은 나갈 때 밀려고 하면 문이 부딪히는
큰 소리가 나기 때문에 금방 실수를 깨닫게 되고
사무실 안에 있는 사람도 그 큰 소리를 모두 듣게 된다.
따라서 그 사무실에서 일하는 누구도 들어오고 나갈 때
문의 열고 닫음을 실수하는 일은 없다.
다만 사무실에 찾아온 손님들이 들어오거나 나갈 때 열고 닫음을
실수해서 문이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들릴 때가 있을 뿐이다.
이 평범한 문에 얽힌 전설이 하나 있는데 그 사건의 전말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 *
이미 사무실에 이사온 지 2년이 넘은 어느 겨울.
한 동료가 사무실에서 밖으로 나가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문을 밀고 말았다.
큰 소리와 함께 문이 부딪히자 안에서 일하고 있던 동료들이
모두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놀란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문이 부딪히는 소리에 놀란 것이고 또 하나는 2년이 넘게 왕래를 한 사람이
아직도 문을 제대로 열지 못하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그 뒤로 그 동료를 우리는 '닭대가리'라 부르기 시작했다.
닭대가리-
용대가리도 아니고 뱀대가리도 아닌 닭대가리.
이름만 들어도 치욕스럽기 그지 없는 이 시대의 충격적인 속어다.
먹을 것을 주면 배가 터지는 줄도 모르고 계속 먹는다는 바로 그 닭.
닭장 앞에 놓여진 돌부리에 100번 지나가면 97번 걸려 넘어진다는 바로 그 닭.
그것도 3번은 실수로 안 넘어진다는 바로 그 닭.
그런 닭의 대가리에 빗대어 사람을 지칭하니 이런 치욕적인 말이 어디 있으랴.
그런 치욕적인 저주의 별칭을 얻느니 차라리 퇴사를 하는 것이
낫다고 알려진 그 무서운 그 닭대가리.
그런 별칭을 얻게 된 동료는 온갖 수모를 참으며 세월을 보내왔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변 사람들이 닭대가리에 비교해서 폄하시킬 때도 그는 참아왔다.
문을 당겨야 열린다는 그 간단한 사실을 잠시 잊은 죄로
겪어야 하는 혹독함치곤 너무도 잔인한 세월들이었다.
그러나 그가 견딜 수 있었던 유일한 희망은 반드시 빠른 시간내에
또 한사람의 실수가 나올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그렇게만 되면 그동안에 뒤집어썼던 닭대가리의 오명은
다른 누군가에게 말끔이 물려줄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 잔인한 놀림과 처절한 상황을 지켜본 다른 동료들은
사무실 문을 열 때만은 몹시 신중을 기하기 시작했고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문을 나설 때는 누구보다 침착해졌다.
이런 현실에서 닭대가리의 오명을 쓰고 있는 사람의 희망은
점점 절망으로 바뀌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는 새로운 논리를 가지고 나타났다.
"이봐, 닭의 아이큐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
뜬금없이 던진 그의 질문에 잠시 동료들은 동요했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글쎄? 그거 조사하기도 힘든 거 아냐?"
질문을 던진 그 닭대가리는 환희 가득한 미소로 스스로 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답은 유창한 생물학적 지식으로 연결되었다.
"닭의 아이큐는 8이라네. 8. 재밌지? 근데 더 웃긴 건
붕어 아이큐는 2라는 거야. 그러니 매일 낚시꾼들에게 잡힌다나?
재밌지? 그러니 붕어대가리가 더 바보라니깐~"
닭대가리보다 조금 더 머리가 나쁜 모델을 발견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닭의 우수성을 인식시켜 자신이 들어야 하는
닭대가리라는 소리를 다소나마 미화하고자 하는 발상은 갸륵했으나
그것은 혼자만의 달콤한 생각이었고 잠시 기억에서 잊혀졌던
닭대가리만 다시 화제가 되는 더욱 끔찍한 사태로 번져갔다.
닭보다 못한 모델로 제시한 붕어대가리는
이 시대의 가장 치욕적인 속어로 자리잡았으나
그것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오히려 닭대가리의 위상만 더욱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 * *
그런 일이 있는지 또 2년이 지난 오늘.
닭대가리의 천하는 막을 내리고 새로운 붕어대가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2년전의 일과 똑같은 일이 생겼으면 붕어대가리로
한 단계 낮아지지 않은 기존의 닭대가리라도 해보려고 우겨볼텐데
2년전의 그것보다 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오던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사무실 문을 밖에서 당기고 말았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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