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의 낮은 아름답다

참을 수 없는 입의 간지러움

아하누가 2024. 7. 8. 00:43



나는 농(弄)을 좋아한다. 

적재 적소에 어울리는 유머는 대화의 진행을 매끄럽게 할 뿐 아니라 

말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더 함축적이고 인상적으로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중요한 순간은 물론이고 시도 때도 없이 유머 섞인 표현들을 하곤 하는데 

아직까지 약간은 경직된 우리 사회는 그런 부분을 이해시키는데 약간은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뭐 어떠랴 내가 좋아서 하는 말들인데. 

 

* * * 

 

얼마전부터 어느 거래처와 사업 관계가 매끄럽지 않게 돌아간다. 

우리가 하는 디자인이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고 책임자는 항상 입을 잔뜩 내밀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아주 훌륭하다만 불행히도 그것은 나만의 생각인지 

항상 불만이 섞인 얼굴을 하곤 한다. 그럴 때는 별 수 없다. 극약처방을 시도하는 수밖에. 

 

"먼저 디자이너는 납품하는 배달 담당으로 한 단계 강등시켰습니다" 

 

오늘은 아예 그전에 디자이너를 좌천시키고 

새로운 디자이너를 전담으로 배치했다고 말했다. 

그전에 하던 놈이 마음에 들지 않게 일을 했으니 그 죄(?)값을 물어 

하위직으로 쫓아냈다고 하면 상대방도 우리의 그러한 성의를 조금이나마 

이해해줄 수도 있다는 앙증맞고도 가증스러운 생각이었다. 

내가 일하는 조그만 회사에는 운전만 전담하는 직책이 있을 리 없다. 

그리고 디자이너가 한가롭게 책상 머리에 앉아 디자인만 할 수도 없는 

열악한 구조를 가진 회사다. 그러니 먼저 디자이너를 강등시킬 환경도 못되고 

그럴 일도 없다. 내가 밤 새워 일하고 낮에 가져가 잘하는 디자이너들이 한 것처럼 

폼 잡고 있을 뿐이다. 그래야 조금 큰 회사처럼 보일테지. 

물론 디자이너를 새로 전담시켰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얘기다. 

그냥 조금 다른 디자인으로 밤을 새워 작업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침에 들고 들어가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 리가 없는 거래처에서는 나의 극약처방이 통했는지 

오히려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되묻는다. 

 

"아이구. 그렇다고 그전 디자이너를 운전기사 시키면 어떻게 해요...." 

 

상대의 약한 모습을 간파한 나는 조금 더 강경한 말투로 말했다. 

 

"그냥 쫓아내려다가 가정도 있는 사람이고 해서 그냥 거래처 관리나 하라고 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그래도 그렇지요...." 

 

그렇긴 뭘 그런가. 그거 디자인한 사람도 나요, 새로 바뀐 디자이너도 나요, 

또한 운전해서 납품하는 사람도 나인걸. 

제법 극약처방이 잘 먹혀드는가 싶었는데 새로운 시안을 펼쳐든 거래처 책임자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어째 그동안의 표정보다 더 실망이 역력한 모습이다. 

원래 모든 일에 있어 칭찬이 인색하고 트집을 우선적으로 잡는 성격이긴 하지만 

그래도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언제나 그런 일은 불쾌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회적인 관계가 어디 그런가. 불쾌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입장의 사람이 있고 

불쾌해도 유쾌한 척해야 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지 않은가? 

 

"그럼 이 시안은 누가 디자인 한 건가요?"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던 책임자가 내게 묻는 바로 그 순간. 

아, 나는 거기서 그만 참아야 했어야 하는 말을 참지 못할 입의 간지러움 때문에 

내뱉고 말았다. 

새로 디자인한 시안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아 불만이 잔뜩 서려있는 얼굴로 묻는 책임자에게 

기껏 대답한 나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렇다고 운전기사까지 짜를 수 있나요......." 

 

 

 

 

사장님 죄송합니다. 

이번 계약이 성사되지 못한 내면에는 이러한 사연이 숨어 있었답니다. 

 

 

 

 

 

 

아하누가

 

 

'샐러리맨의 낮은 아름답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컴맹, 넷맹 그리고 폰맹  (0) 2024.07.08
닭대가리  (0) 2024.07.08
현장검증  (0) 2024.07.08
아홉개의 피자 쿠폰  (0) 2024.07.08
부시와 김03  (0) 2024.07.08